절대 기준에서의 방향성

by 잡학거사

글을 끄적거리며, 가까이에서 듣는 말로는 명료하지 않고, 두리뭉실하게 심오한 단어들을 나열하여, 깔끔과 명확하지 않다는 것으로, 미약한 인간으로써 성령의 인도를 받아 훈련받았던 지난 모든 시간 속에서의 것들을 통하여 장님 코끼리 만지는 것과 같이 더듬어내느냐 온 신경을 집중함에 대한 반증이 아닐까?를 생각해 봅니다. 그래도(Anyway) 저 스스로가 아닌, 남을 통헤 주님께서는 제 믿음을 점검해주시고 항시 동행하시며 강권적인 역사로 저를 포함하는 주변을 맑게 치유와 회복해 주심에 하루를 감사로 시작하여, 절대 헛한데 눈 돌리지 않으며 기도로 마감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기본적 형태에 있어, 어느 공동체 안에 속하여 형식적 종교생활의 절차를 잘 지키느냐의 유무보다는 절대자이신 주인의 음성을 잘 분별하며 그 섭리 안에 온전히 거하느냐가 주요한 잣대가 될 것입니다. 마지막 때가 무르 익어감에 따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섬기는 소수의 지하교회들이 속속히 늘어나며, 평신도 사역 측면이 강하게 부각될 것으로 유럽 교회들은 쇠퇴해 가는 것 같지만, 실상은 셀 단위의 교회로 분파되어 가정 교회화 되어가고 있다고 하는 유럽에서 오랜 선교활동을 하셨던 분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입니다.

성당과 교회가 맥주집과 커피숍으로 바뀌고 있지만, 오랜 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가정에서의 기름부음은 유구히 흐르고 있으며, 열 명 이상이 전도되면, 파생하여 다른 셀을 이루는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다시 오실 예수의 거룩한 장막 가운데에서 빛난 큰 보좌의 새 이름의 영광을 뚜렷이 드러내기 원한다면, 자신을 제대로 쳐서 주님께 순복함과 자복, 통회하는 마음으로 재위에 앉아 티끌을 머리 위에 뿌리며, 피 토하기까지 하는 간절한 깊은 심령으로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과연 몇이나 따르며 이룰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교만과 강팍함으로 흑암 세력의 뼈대가 가득한 가슴을 치라 하시는데, 이를 과연 이해할 수 있으며, 제대로 따를 자가 있으려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공포심을 조성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저 스스로에게 더욱 더한 두려움과 무서움으로 다가옴은 진노의 하나님으로써 세상의 선악과를 따먹은 범죄를 물으시는 대목으로 어린 양의 진노에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더불어 진리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 주리고 가난한 심령들과 목말라하는 자들이 영의 긍휼을 얻어 순종의 길로 나오게 하여야 하며, 온유한 자들을 돌아 보아야함을 지적하십니다.

첫사랑의 정절을 버리지 아니하며, 고난 가운데에서도 멍에를 짊어지고 핍박 가운데에서와 멸시 가운데에서도 인내하는 영이 되어야 한다고 하시며, 지금 이 순간이 생명들이 온전함으로 자신을 정리 정돈할 수 있는 시간들로 지금이야 말로 무엇보다도 더 영의 온전함을 양육시킬 수 있는 시간으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영광도 크게 빛날 수 있다고 하십니다. 본질(영)의 영역에서 주님과의 실질적인 교제 가운데 성령의 역사가 임하게 되는 것으로 육신의 어떠함과 상관없이 본질적 영역에서 성령님과의 실질적 관계를 맺어 가야만 하고, 본질적 영역에서 성령으로 거듭남을 이뤄 성령님과 연합되는 영적인 관계를 통하여 그 하나 됨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형식적인 종교적 틀에 갇히기 보다는, 자신의 본질적 영역에서 중심이 합당함의 여부를 확보하는 것으로 본질적 영역인 영적 차원에서 영과 진리로 찬양과 경배하여야 할 것입니다. 본질적 전제로 확고한 믿음과 참된 마음으로 신령과 진정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을 굳게 지켜나가며, 이 말에 쏠리고 저 말에 흔들려서는 절대 아니 됨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함에 해당하는 마음과 행위가 본질적으로 내포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절대 기준에서의 방향성의 전제를 기반으로 하는 영적인 본질을 바탕으로 성전에 모이기를 힘써야함에도 모이는 행위 자체만이 중요하며 그를 따르지 않는 자는 믿음이 미숙한 경우로 치부하는 경우는 주위에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이와 같은 비본질적인 행태들이 모여모여 강을 이르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며, 자신이 익숙한 그 자체가 신앙생활의 중심으로, 본질이라 우겨댐으로 내재하신 성령께서는 근심하시며 바로 잡아가길 원하시고 계실 것입니다. 본질적 신앙을 확보하고, 그에 따르는 행함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의 음성을 말씀과 다양한 채널을 통하여 확보하여야만 종교적 틀에 의한 신앙생활에서 익숙해진 인본적 관점으로 안도감과 평안함을 느끼며, 하나님의 섭리를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해 버리는 치명적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여 그 뜻대로 결단하고 행동하여야함이 이 마지막 때 요구되는 기본적 정서이기에 우리는 스스로 당연하게 생각되어지거나, 익숙함이 몸에 배여 있다고 하드라도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에 합당한 중심을 확보하기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이루어내야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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