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바지 스폰지밥”은 스티븐 힐렌버그가 제작한 미국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작품으로 최근 용산에 “스폰지밥의 행복을 찾아서”라는 테마파크가 개장될 정도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물론 “네모바지 스폰지밥”을 보고자란 2030세대들의 지난 감성을 자극하는 애니메이션으로 한국에서 하청제작을 맡아 제작되었으며, 스폰지밥과 뚱이, 징징이 등 애니메이션 속의 인기 캐릭터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캐릭터들의 성격을 바꿔놓거나 원작보다 더 악랄하게 만들어놓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캐릭터들이 동성애를 표출하거나 성관계를 벌이고, 동전줍는 징징이 장면들이 나오기도 합니다. 오바마가 딸과 함께 보는 애니메이션이라 선전하는데, 스폰지밥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미국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을 풍자하는, 스폰지밥은 멕시코에서 국경을 넘어온 불법체류 히스패닉 노동자, 뚱이는 일을 하지않고 사회보조금으로 생계를 꾸리는 흑인, 징징이는 이상주의만 가득한 가난한 화이트 트래쉬, 집게사장은 악덕 백인 자본주의 업주, 진주는 철부지 재벌 2세, 다람이는 아시아에서 이민 와서 인종차별 당하는 공순이 동양인임을 표현합니다.
플랑크톤은 자본주의 집게사장과 싸우는 공산주의자, 캐런은 칼 마르크스, 퍼프선생은 지식인 계층, 인어맨과 조개소년은 참전용사 겸 퇴역군인, 맨레이와 악마방울 등 악당들은 파시스트 및 네오 나치, 누더기 선장은 부패한 정치인, 앵무는 언론, 래리는 철부지 욜로족, 유령선장은 미국의 종교 단체 및 개신교 세력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에게 사회풍자적 성격의 인식을 세뇌시키는 듯한 접근과 더불어 더불어 중요하게 지켜 보아야할 대목으로, 미국 버지니아 연구대학팀이 스폰지밥이 학습장애, 주의력 결핍을 단기적으로 일으킬 수 있는 연구결과를 가져온다는 논란을 제시하였다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어린이들을 3개 그룹으로 나누어 실험하였으며 한 팀은 스폰지밥을, 또 하나는 느리게 전개되는 애니 "까이유"를 보여주었고 나머지 한 팀은 그림을 그리게 했습니다. 9분 뒤 스폰지밥을 본 아이들이 나머지 두 그룹의 어린이보다 낮은 점수를 기록한 결과가 나오자 연구진들은 빠른 전개되는 애니메이션을 보게 된다면, 기억력과 주의력이 떨어진다는 결론을 내렸으나, 이에 대해 방송사측은 6~11세를 목표시청으로 한 프로그램이라면서 연구조사에 강하게 반발하였다고 합니다.
믿는 분들이라면 더욱 더 자세히 바라보아야할 부분이 있는데, 네모바지 스폰지밥 시즌 3 에피소드 42회에 등장하는 “소라고둥”을 기반하는 장남감이 출시되었다는 것입니다. 소라 모양의 장난감으로 고리를 당겼다가 놓으면 녹음된 문장 중 하나가 랜덤하게 재생되게 되어 있는데, 질문을 하면서 작동시키고, 그에 대한 대답을 듣는 식으로 점을 치면서 가지고 노는 장난감입니다. 토이스토리, 윔피키드에도 나왔었고, 스마트폰앱도 있는, 1950년대에 나온 장난감인 “Magic 8 Ball”의 패러디로 숫자가 쓰인 8번 당구공 모양의 장난감으로 질문하고 공을 흔들면 작은 투명한 창안에 "확실하다"라든지 "아마 아닐거야", "지금은 잘 모르겠다" 등 20여 가지 대답 중에 하나가 선택되어 나타나는 서양판 척척박사 모의상품화 버전입니다. 이 부분을 분석해 보아야함에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 모두는 다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특정한 영역이나 일에 대해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고민하는 누군가에게 단답형으로 답을 내 주기 위해 사용하거나, 또는 딱히 해야 할 명분이 없지만 자기가 하고 싶을 때 “마법의 소라고둥님께서 허락하셨다!”라는 식으로 명분을 만들기 위해 대용함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에게 있어서 인식과 사고의 경직성은 신앙의 자유함과는 대치되는 정말로 무서운 영역으로 인간들이 개/돼지로 취급될 정도의 심각성을 지니게 되므로, 자신이 소라 속에 들어가 있는 고동임을 자각 못하는 인식과 사고의 경직성은 교회생활을 오래한 사람들의 기본적 특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니라아니라 극구 부정하겠지만, “사도 목사님께서 허락하시었다”에 마취되어, 스스로의 인식과 사고의 경직성을 타파하거나 스스로의 관성을 깨부술 수 있는 자아의 객관화를 이루지 못함으로 유연한 수용과 차용을 이루는 자유함의 탄력적인 신앙을 이루어내지 못함을 미리 아셨기에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이끄심을 받아본 자로써 바라보면 교회생활이 오래 되었거나, 말씀을 줄줄 꿰는 자들 치고, 촉촉함이 느껴지므로 산뜻함과 깔끔함이 수용되는 것이 아닌, 뭔가 찜찜함을 유발시키거나 기분 나쁜 미끌거림과 끈적거림을 느끼게 됨은 저만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무조건적 사랑이라고 해서 죄악과 교회적으로 경직된 사소한 잘못까지도 포용해서는 절대 아니되며, 잘못이나 오류는 사랑의 회초리(징계)와 말씀의 잔소리로 다스려져야 될 것입니다. 표면적으로 우리들의 잘못됨을 용납하지 않으시지만, 그 깊은 속내로는 너무나도 좋은 것으로 가득 채워 주시고 영원히 함께하시고자 하시는 지극하신 사랑의 결정적 중심을 전해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