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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달빛 펜션 강사장

5.18.2022

by 류재숙 Monica Shim

한산도를 다녀와서 저녁은 달빛 펜션 숙소 주인장인 강사장과 치맥을 하기로 했다. 그동안 이 집의 아름다운 정원을 내 집 정원처럼 드나들게 하고 여러가지로 도움을 준 고마움에 감사 표시를 하고 싶었다.


강사장은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 통영 고향집에 내려와 살고 있다. 통영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 작은 집에 부모님이 살다 몇 년 전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혼자된 아버님과 함께 지내려 고향에서 살기로 했다 한다. 바쁜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에 내려오니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다고 한다. 집 옆에 작은 빌라 두 채를 지어 여행객들에게 빌려주고 어머니가 가꾸던 정원을 돌보고 닭을 키우고 직장일도 한다.

대도시에서 한창 진급에 실적에 열을 올리며 사는 친구들은 열심히 돈벌어야 할 젊은 나이에 은퇴같은 생활을 하는 강사장을 염려 한단다. 그러나 그건 걔네들이 모르고 하는 소리란다. 서울보다 생활비가 훨씬 적게들고 숙소운영이나 다른 사업으로도 은퇴준비를 할 수 있다 한다. 오히려 매일 운동할 시간이 나니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데다 취미생활까지 즐길 수 있다 한다. 성공에 집착해 매일 스트레스로 가득하던 서울 생활보다 훨씬 여유롭고 평화로워 만족도가 높단다.


강사장을 보면서 세상살기에는 한가지 방법 만 있는 게 아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만 보고 살 때는 이 길만이 살길 같아도 눈을 들어 돌아보면 또다른 방법이 보인다는 걸 젊을 때는 모르고 살았다.


이 집에서 부모님이 60여 년을 살았다 한다. 어릴 땐 언덕 꼭대기에 있는 집이 등하교 때나 마켓을 갈 때나 가파른 언덕을 수시로 오르내려야 해서 불만이 많았는데 이젠 집 앞으로 작은 찻길이 나서 편리해 졌단다. 예전엔 가난한 사람이 언덕 위에 살고 부자들은 평지에 살았는데 세상이 뒤바뀌어 언덕 위가 부자들 차지가 되었으니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란다.

아침마다 마주하는 달빛 펜션의 소박한 정원은 푸른 바다와 어울려 더 눈부셨다. 어머님이 손수 가꾸었다는 정원엔 작약에 붓꽃 철쭉 개망초 달맞이꽃까지 가득 피어 온 몸으로 봄을 맞이하고 있었다. 막 철 지난 동백은 꽃송이 채 떨어져 뒹굴고 있었다. 장독 모으기가 취미였던 어머님에겐 장독은 장만 담아두는 용기가 아니었나 보다. 정원 곳곳에 자리한 장독은 투박한 바위와 어울려 반짝이는 세련미를, 붓꽃 옆에선 수수한 시골 아낙의 모습을, 장독대에선 묵은 장을 묵묵히 익히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었다.


정원 한쪽에 백봉오골계란 닭을 열댓 마리 키우고 있었는데 깃털이 하얗고 벼슬은 붉으면서 볼에 푸른색이 도는 생김새가 어찌나 귀품스러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겉은 희나 속살이 검어 오골계란다. 수탉 수가 암탉 수의 배나 많았는데 수탉들이 수시로 돌아가며 꼬끼오 울어 재치는 통에 조만간 이 시끄러운 수탉들은 잡아먹힐 운명이란다. 보기에도 아까운 예쁜 닭들인데 다가올 운명을 알아 더 우는 건지 바라보는 내내 번갈아 꼬끼오 꼬끼오 울어댔다.


유튜브를 보고 강사장이 직접 만들었다는 닭장이 제법 근사하다. 이웃들도 탐내며 제작법을 묻는단다. 닭장 뒤편에 박스를 매달아 짚을 깔아 두니 닭이 그 자리에만 알을 낳는다. 뚜껑을 열면 바로 꺼낼 수 있게 되어있어 열어보니 껍질이 노란 알이 서너 개 있다. 오골계 알은 일반 계란의 반 크기로 작고, 처음 낳은 알은 초란이라 해서 더 작았다. 닭을 키우니 계란 사러 갈 일이 없어서도 좋지만 음식찌꺼기를 닭 모이로 쓰니 쓰레기까지 줄일 수 있어 일거양득이란다. 닭이 먹고 남은 음식과 닭똥은 퇴비 통에 넣어 썩혀 꽃나무 거름으로 쓴다 하니 이보다 더 알뜰할 수 없다.


강사장의 아버님은 교직에서 일하다 은퇴하셨다. 90대란 연세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귀가 어두운 것 외엔 건강하셔서 가파른 까꾸막을 너끈히 오르내리신다. 아침저녁 마주칠 때마다 인사드리면 수줍은 듯 조용히 웃으셨다. 자주 테라스에 나와 전용의자에 앉아 망원경으로 동네를 내려다보셨다. 아버님의 전용의자에 앉아보니 아래로 강구안과 동피랑, 멀리 한려수도가 훤히 보였다. 선글라스를 멋지게 끼고 매일 동네를 한 바퀴 순찰한 후 테라스에 앉아 망원경으로 동네를 지켜보는 모습이 마치 통영을 수호하는 장군님 같다. 아침마다 보너스처럼 만나는 아름다운 정원과 백봉오골계에 멋진 장군님까지 뵐 수 있어 행복했다.


강사장의 어머니는 시장 사람들이 어려울 때 돈을 빌려주곤 했는데 돈만 빌려주는 게 아니라 그 집 장사가 잘되게 이웃에 소개해주고 물건을 팔아주고 하며 물심양면 도와주었다 한다. 멸치잡이 하다 사업이 기울던 한 이웃은 어머니께 돈을 빌려 건어물 가게를 차리게 되었는데 어머니가 적극 도와주어 사업이 번창해져 집도 사게 되었다한다. 그후 어머니를 은인으로 여기고 가족처럼 지내오고 있다했다. 부모가 살면서 베푼 덕이 자식인 본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서, 사람을 귀히 여기고 도우며 사는 삶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부모님 삶을 보며 알게 되었단다. 나도 그 건어물 가게에서 양가 부모님 드릴 멸치를 싸게 샀다.


주인장과 술 한잔을 하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나도 통영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몇주일 지내는 동안 듬뿍 정이 들어버린 통영이 마치 고향처럼 느껴졌다. 관광차 잠깐 스쳐 갔다면 알지 못했을 통영의 속 깊은 모습을 달빛 펜션 강 사장을 통해,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치는 겉모습만 보는 관광이 아닌, 마음으로 만나는 여행을 하라는 말이 생각난다. 마음으로 만나려면 마음을 열고 다가가야 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수많은 아름다움이 우리가 마음의 벽을 허물고 다가오길 기다리고 있다. 알면 알수록 향기가 나는 인연이 있다. 통영과의 인연이 내겐 그랬다. 귀한 인연이란 인간 사이에만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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