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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채물감 May 20. 2022

어느 노인의 상처

사랑한 죄밖에 없는 바보, 사랑이 죄는 아니잖아...

당신은 늘 힘이 들었습니다

일찍 홀로 되어 아들 하나 잘 되기를 바랐으나

어찌된 일인지 아들은 늘 빈손이었습니다.  

그 손에 희망 한 줌이라도 채워주려

주름은 더 깊어지고 빛나던 머리칼은 날이갈수록 새어갔지요

나는 당신의 샌 머리칼마저 고와서

당신의 한숨이 그리도 애틋해서

내가 가진 것 전부를 모두 내어주고 싶었지요

모두 내어주고도 모자라

영혼까지 끌어모아 당신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나의 항아리는 비었으나

나의 가슴은 당신의 안도와 미소로 충만하여

속도 없이 마냥 행복하였습니다

그러나 왜일까요

당신의 자식은 다시 빈손이고

당신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고운 당신과 당신의 고운 자식은

나를 송두리째 파괴하고 말았습니다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당신을 벌하고 싶었습니다

당신이 사라지고 나의 한스러운 세월도 사라져

이제 나에게는 육신의 껍데기만 남았는데도

분노와 번뇌가 해탈로 위장이 되어갈 무렵

아홉 해 만에 마주친 당신은 병마에 싸여

나는 또 한없이 애처롭기만 합니다

당신을 보듬어 안아 죽음의 그늘에서 구해내고만 싶습니다

나를 피해 달아난 당신의 귀한 아들도 구하고 싶어집니다

나의 용서만이 길이 될 것이라

깊은 회한마저 다시 접어 넣습니다

당신이 내뱉는 거짓말이 모두 내게는 속삭임이 되고

껍데기조차 당신께 모두 바쳐야 하겠으니

이 못난 사랑을 어찌하면 좋을까요

사랑이라 부르도록 허락한다면

당신을 미워한 죄를 용서한다면

죄식자가 되어 당신의 모든 죄를 먹고

나 당신 곁에 머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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