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어쩔 수 없는 알록이달록이입니다
누군가 취미를 물을 때 당혹스러웠던 적이 있다. 취미라고 하면 조금 있어 보여야 할 것 같은 느낌에 글쓰기나 책 읽기라고 대답했다. 취미는 여가 시간에 즐기는 것들이어야 하는데 그냥저냥 나를 위로하는 것들이 마침 있어 보여서 그걸로 둘러댔다. 지금 생각하면 내 취미는 SNS탐방이나 ‘테레비’ 시청이다.
내 진실한 취미들은 내게 있어 보이는 것들을 요령껏 잘 소개해준다. 이를테면 11월의 크리스마스 감성을 미리 준비하는 거라든지. 나는 당장 다이소로 달려갔다. 좁디좁은 자취방에 따스한 크리스마스 감성을 담고 싶었다. 그러려면 주황빛 단색의 전구가 필요했다. 집 가는 버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 나는 후다닥 전구를 집어 들었더랬다. 정말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불을 켜보니 촌스러운 4색이 열심히 자리를 빛냈다. 마스킹테이프로 고정한 모루는 시도 때도 없이 후드드 떨어지고, 머리가 무거운 별장식은 내 발등을 찍었다.
붙였다 뗐다를 수십 번 반복한 뒤에야 화딱지가 나서 다 뜯어버렸다.
모루만 겨우 고정시킨 뒤 쿠킹호일로 별을 붙였는데 어이가 없고 웃겼다. 그리고 남은 이 요상스러운 크리스마스 전구를 던져버릴까 하다가 침대 맡에 붙였다. 지쳐서 자려고 불을 다 끄고 누운 뒤 전구를 켰는데 어쩐지 크리스마스 같았다. 4색의 요란한 빛이 좁고 차가운 내 방을 가득 채우니 어찌나 안정감이 들던지.
문득 ‘내 인생도 이랬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파랗게 울적한 나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초록빛 같은 나도, 모든 일에 화가 나는 새빨간 나도, 우물쭈물하다 노랗게 멍한 나도 멀리서 보면 요란해도 꽤 괜찮은 삶이면 좋겠다.
지금의 나는 인생이나 감정의 기복이 너무나도 심해 멀미가 날 지경이다. 어떻게 하면 이런 내 인생을 얼른 파스텔톤으로 만들까 생각했는데. 여름 라이트톤이라 그래서 맘에도 안 드는 희끄무리한 색들만 입었는데. 나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요상하고 요란한 알록이달록이다.
그리고 소개팅에 나가면 내 취미를 당당히 말해야지.
“저는 테레비 보는 거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