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팀 사람들이 나를 I호소인 또는 패션 I라고 부를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얼마나 사람들이랑 부대끼는 걸 싫어하는데 내가 아니면 누가 I냐고요'
억울하지만 우리 팀원들이 보는 내가 확신의 E인 것도 이해가 간다.
여러 사람들을 모아놓은 회의시간에 시답잖은 농담을 하기도 하고, 부탁을 해야 할 때는 앓는 소리와 애교(?) 그 사이 어디쯤의 능글맞은 말투를 쓰기도 하고, 모두가 침묵을 유지하는 어색한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정적을 깨는 사람이니까. 뿐만 아니다. 팀에서 선택과 결정이 필요한 일이 있다면 누구보다 먼저 의견을 낸다.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솔직히 나조차도 '이게 내가 맞나?' 싶은 모먼트들이다. 무슨 동력으로 인해 이렇게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하냐 묻는다면, 나의 답변은.. 이거 PM특 인 듯요.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은 직무인 PM의 역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해서 일이 되게 해야 한다.
정치인도 아니고 역할이 무슨 설득하기인지 싶긴 하지만, PM이라는 직군을 두는 회사들의 조직구성을 보면 이해할 수 있다. 하나의 팀은 각자의 specialty가 있는 여럿의 개발자 혹은 디자이너와 PM 1명으로 팀이 구성되는데(목적조직일 경우), 유일하게 specialist가 아닌 PM은 다른 이들에게 '왜 지금 이 일을 해야 하는지'를 설득하는 것에 대한 강한 오너십을 가지고 있다.
다시 MBTI이야기로 돌아가서, 그래서 내가 E처럼 구는 이유. 결국, 잘 설득하기 위해서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딱딱한 분위기에서 데이터만 보여주는 것보다 농담 한마디를 보태는 게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 주변의 PM들을 봐도, 어떻게든 일이 앞으로 진행될 수 있다면 농담이든 부탁이던 결정이던 가장 먼저 나서서 할 수 있는 사람들 같다.
얼마 전, PM이라는 작자들의 외향성에 대해 감명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일 년에 두 번있는 부문 회식 날이었다. 조직은 묶여있지만 아무래도 각자의 일에 바빠 잘 모르는 사이들이었고, 이들이 다 같이 섞이게 되는 약간의 어색한 회식 자리였다. 일찍 출발한 우리 팀이 자리를 잡았고, 조금 늦게 도착한 옆팀 사람들이 우르르 식당에 들어왔다. 사람들이 듬성듬성 자리가 차 있는 테이블들을 보고 어디에 앉아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 찰나, 옆팀 PM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00, 00, 00는 이쪽 테이블 앉으시고요, 00,00,00는 이쪽으로 앉으세요!" 그러자 모세의 기적처럼 일사불란하게 사람들이 제자리를 찾아갔고, 회식자리는 금세 안정감을 찾고 화기애애해졌다.
놀라웠지만, 그 PM님도 I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