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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Oct 09. 2020

바로크 음악가들 - 영국편(헨델 등)

 아래 포스팅에서 독일 바로크 음악가를 이야기할 때,  '음, 이 사람은 왜 안 나오지?' 하고 의구심을 갖는 분들도 계셨을거에요. 저희 남편도 '독일 바로크에 이 사람 안 나와?' 하고 물어봤으니까요 ^^

네, 바로 바흐와 동갑내기인 헨델(Handel, 1685~1759)입니다. ‘음악의 아버지’ 바흐,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란 애칭 때문에 헨델을 여자(!)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남자입니다 ^^ 이 시기까지 여성이 작곡가로 활동하는 예는 흔치 않았어요. 바흐와 헨델을 음악의 아버지, 어머니라 칭하는 이유는 그들이 현재 음악회에서 많이 연주되는 서양음악의 시작점,  바로크 시대 음악의 근간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교 음악실에서 종종 봤던 헨델의 초상화지요?


 헨델은 독일 출신이 맞습니다. 동갑내기 바흐가 평생 독일을 떠나지 않고 지역 음악가로 활동한 반면,헨델은 독일에서 유년기를 보내고 음악 공부를 한 후, 20대에는 3년간 이탈리아에 살면서 최신 이탈리아의 유행 양식을 섭렵했으며, 27살부터 평생을 영국에서 살았습니다.


 따라서 헨델의 75 남짓한 생애  가장 오래 살면서 음악활동을  지역은 영국 런던이지요. 게오르그 프리데릭 헨델이라는 독일식 이름보다  '조지 프리데릭 헨델'이라는 영국식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립니다.


 그는 독일에서 이발사이자 외과의사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습니다. 어릴 때 공부를 잘해서 아버지는 헨델이 법률가가 되길 원했다고 해요. 그러나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한 헨델은 함부르크에서 바이올리니스트 겸 오르가니스트로 일하면서 20살에 쓴 오페라 <알미라>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크게 벗어난 적이 없었던 동시대 음악가인 비발디, 라모, 바흐와 달리 헨델은 매우 국제적인, 코스모폴리탄적인 을 살지요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가서 당시 유행하는 오페라와 오라토리오 양식을 공부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공공 음악회가 발달하기 시작한 런던으로 가서 자리를 잡게 됩니다. 따라서 당시 최신 유행이던 음악양식을 섭렵했지요  음악 실력 외에 사업 수단도 좋아서 자본주의가 일어나고 있던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17세기 영국이 유럽에 음악적으로 가장  공헌을  것은 바로 '공공 연주회' 발달시킨 입니다. 입헌군주제를 하고 있던 영국은 의회의 힘이 강해서 프랑스 궁정보다 왕가의 재정이 빈약했습니다. 따라서 왕궁에서 음악가들을 충분히 후원할 수 없었지요

 반면 모직업과 무역을 통해 돈을 벌기 시작한 중산층은 자신들도 왕족이나 귀족처럼 음악을 듣고 싶은 열망이 컸습니다. 따라서 음악가들은 중산층을 상대로 '공공 연주회(public concert)' 열기 시작했습니다. 런던은 유럽에서 최초로 공공 음악회장이 생긴 도시입니다.

18세기 다양한 공공음악회가 열린 런던 외곽의 음악회장


 헨델은 독일과 이탈리아의 양식을 충분히 섭렵한데다 대중의 요구를  알고 있는 작곡가였습니다. 그의 인기는 매우 높이 치솟았고, 영국의 앤 여왕은 그에게 200파운드의 연봉을 지원합니다. 이는 바흐가 말년에 받은 월급이 2배였죠.


 이후 헨델은 600파운드까지 연봉을 받게 되며 부를 누리게 됩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고장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성실히 일했던 바흐와 달리 헨델은 자신이 태어난 독일을 떠나 런던에서  인기를 누리며 높은 수입을 보장받는 작곡가였습니다.

헨델은 평생 영국 군주들의 후원을 받게 되는데요, 영국의 앤 여왕을 위해 작곡한 오페라가 바로 '리날도'입니다. 리날도 중 '울게 하소서'라는 아리아는 대중적으로도 널리 알려졌지요.

https://youtu.be/LD--qGlNVlk

 당시에는 여성이 무대에 설 수 없었으므로 카스트라토(거세한 남성 소프라노)여성 소프라노 역할을 했습니다. 위의 동영상은 실존한 유명 카스트라토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파리넬리’의 장면입니다  

 헨델은 오페라와 오라토리오에서 가장 크게 성공하였는데요, 오라토리오라는 장르는 낯선 분들이 많으실 거에요. 사실 오라토리오 종교 개혁 시절에 만들어진 장르입니다.  신교의 공격을 받던 이탈리아의 카톨릭교도들이 반성의 의미로 모여서 기도 모임을 하였는데   성경의 내용을 가지고 노래극을 만들어 불렀습니다. 이것이 오라토리오의 시작으로 오라토리오는 원래 '기도실'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연주는  적이 없어도 제목은 들어보신 분들이 많으실 거에요. 메시아는 구약의 예언부터 예수의 부활까지를 다룬 내용으로 예수와 관련된 성경 전반을 다루는 내용의 오라토리오입니다.  

헨델 메시아의 포스터입니다. 종종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전후해서 공연을 합니다.


 오라토리오는 스토리는 있지만 무대의상, 연기를 하지 않고 합창단과 독창자들이 서서 노래합니다. 따라서 오라토리오를  때는 가사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자막이 제공되니 가사를 이해하며 보세요. 결국 오라토리오도 연기가 없는 노래극이니까요.

 헨델은 성경을 소재로 오라토리오를 많이 작곡했고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가 영국에서  인기를  이유 영국 사람들이 원래 합창의 전통이 강했던 데다가, 오페라에 나오는 그리스 신화나 로마 이야기보다 '성경' 스토리를  익숙하게 여겼고, 영어로 부를  있으니 이해하기도 쉬웠기 때문이죠.  제작자 입장에선 비싼 이탈리아 오페라가수를 섭외하지 않고 영국 기존의 가수들을   있으니 더욱 좋았고요.

 헨델의 메시아  가장 유명한 곡은 뭐니뭐니 해도 '할렐루야'지요.  곡을 듣던 영국 왕이 감흥에  벌떡 일어났기 때문에  곡이 연주될 때는 청중들이 지금도 일어서는 관습이 있지요.

https://youtu.be/IUZEtVbJT5c

 연주는 영국의 왕립 합창 협회입니다. 영국의 왕립합창협회는 매년 부활절 전날인  금요일에 영국의 대표 홀인 로얄 알버트 홀에서 헨델의 메시아를 연주한다고 합니다.


 이렇듯 헨델의 작품은 살아 생전부터 현재까지 영국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으며 지속적으로 연주되고 있습니다. 헨델은 영국에서 중요 작곡가로 인식되었고, 그가 죽었을  웨스터 민스터 사원의 장례식에 3천명이나 되는 조문객이 몰려들었다고 하지요.


 그럼 이번엔 진짜 영국 출신의 음악가를 한번 살펴 보죠. 영국 출신의 가장 대표적인 바로크 작곡가는 '퍼셀(Purcell, 1659~1695)입니다. 그는 36세의 젊은 나이에 죽었지만 엄청난 양의 작품을 남겼죠. 그가 관심있어했던 음악은 노래극, 연극 음악 등입니다.

 당시 영국은 이탈리아 오페라보다 원래 영국에 있었던 노래극을  좋아했지요.  노래극을 '마스크(masque)'라고 불렀어요. 기악음악, , 노래, 합창, 의상, 무대 장치  오페라와 비슷한 형태였지만 여러 사람들이 공동작업으로 음악극을 작곡하는 것이 특징이었죠.  영국의 마스크를 한층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퍼셀입니다.

퍼셀의 오페라는 규모가 작은 편이에요. 시간도 1시간 정도이고요. 대표작은 <디도와 에네아스>라는 오페라입니다.


 트로이의 왕자 에네아스와 카르타고 여왕 디도는 사랑에 빠집니다. 트로이를 재건하라는 제우스 신의 명령을 받고 디도를 떠나는 에네아스를 보며 디도는  노래를 부르며 스스로 목숨을 끊죠. 마지막으로 디도가 부르는 '내가 땅속에 묻힐 '라는 이 가장 유명해요. 아주 아름답고 라디오 방송에도 자주 나옵니다. 영어 가사로 되어 있어요. 원제는 <when I am laid in earth>입니다.

디도는 연인을 보내고 단을 쌓아 자결합니다.


아래 동영상으로 노래를 들어보세요. 죽음을 앞둔 디도의 비장함과 슬픔이 느껴집니다. 영어 가사로 좀더 친숙한 느낌도 들고요

https://youtu.be/PeB4cpRq16M

 그럼 다음 시간에는 비발디를 낳은 이탈리아, 그리고 이름이 좀 생소하지만 프랑스 발레에 큰 공헌을 한 프랑스 작곡가 라모까지 바로크 음악가들을 더 살펴보겠습니다! 즐거운 한글날 휴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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