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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Oct 09. 2020

바로크의 음악가들-독일편(바흐,텔레만)

오늘은 익숙한 노래로 시작해보겠습니다^^

https://youtu.be/JvNQLJ1_HQ0

! 여러분도  아시는 파헬벨의 캐논입니다.
파헬벨(Pachelbel, 1653~1705) 우리가 오늘 다룰 독일 바로크 작곡가입니다. 캐논은 쉽게 말하면 '돌림노래' 같은 것으로 처음의 선율을  박자 후에 두번째 성부가 따라하면서 곡을 진행하는 것이지요.


 위의 동영상은 특별히 파헬벨이 살아있는 당시의 악기셋팅을 재현한 연주입니다. 이렇게 옛날 악기를 고증해서 당시의 방식대로 연주하는 것을 '고음악' 연주라고 하지요.

 당시 유럽은 30 전쟁(1618~1648)을 겪었습니다.  전쟁은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를 믿는 국가들 간의 싸움이었으며 유례가 없이 매우 격렬한 종교 전쟁이었다고 합니다

30년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독일의 모습


 30 전쟁의 주무대였던 독일은 전쟁  대부분 파괴되고 수많은 공국들로 나뉘었습니다. 프랑스처럼 절대 군주제가 발달한 것도 아니었고 영국처럼 자본주의가 발달한 상황도 아니었죠. 상대적으로 국토도 작고 도시도 프랑스나 영국보다 작았습니다.


규모면에서 프랑스를 따라갈 수는 없었지만 독일의 수많은 작은 궁정에서 음악가를 후원하였고, 도시나 교회도 음악가를 후원하였습니다. 동네마다 '도시 악사'라고 불리는 음악가들이 있었죠.

(독일 뉘른베르크의 도시 악사들의 모습입니다)


17~18세기 초반 독일 바로크 시대에 가장 중요한 작곡가라면 뭐니뭐니 해도 바흐(Bach, 1685~1750)이겠지요?  바흐가 태어나기 200 전부터 이미 바흐 집안은 50여명 넘는 음악가를 배출한 유명한 음악가 집안이었습니다.  바흐의 아버지도 위의 그림처럼  ‘도시에서 바이올린을 켜는 악사’였고요.

 바흐는 생전에 지금처럼 존경을 받고 유명했던 음악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고용한 사람들,  교회나 궁정의 요구에 따라 작곡을 해야했습니다. 초기에는 오르가니스트로 일했기 때문에 주로 오르간 작품을 썼고, 쾨텐 궁정에서 일할 때는 왕자님을 위해 주로 실내악과 여흥음악을, 후에 라이프찌히 교회 음악감독으로 일할 때는 교회음악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추구해서 때론 고용주들그의 음악은 ‘너무 복잡하고 시끄럽다며' 구박하곤 했어요. 생전에 화려한 경력과 부를 누린 작곡가는 아니었으나 독실한 신앙심과 화목한 가정 속에 성실히 작품활동을 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인정받는 음악가였죠.

 바흐는 고용주의 요구에 따라 굉장히 많은 작품을 생산한 작곡가였습니다. 라이프치히 교회 음악감독 시절에는 매주  개씩 칸타타를 작곡해야 했습니다. 칸타타란 오페라처럼 스토리가 있는 노래극이지만 길이 짧고 사람들이 의상을 입거나 연기를 하지 않고 합창단처럼 서서 연주합니다.  외에도 각종 기악곡도 작곡하면서 음악학교에서 학생들도 가르치고 오케스트라도 훈련시켜야했지요.

 이렇듯 많은 일을 해야 했던 바흐는 기존의 자신의 작품을 편곡해서 새로운 곡을 만들어내곤 했어요. 혹은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각색해서 자기 작품을 만들기도 했지요. 비발디의 바이올린 콘체르토를 오르간 곡으로 만든 것처럼요.

요즘 시대에는 이렇게 하면 '표절 시비' 붙겠지만 바로크 시대만 해도 다른 작곡가의 음악을 차용하거나 자신의 곡을 편곡해서 다른 곡을 만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관행이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바흐는 바이올린 소나타 1번에 푸가 악장을 만듭니다. 연주는 20세기의 대표적인 바이올리니스트  한명인 아이작 스턴입니다.

https://youtu.be/5MnlnQ3PZ8A

  

같은 곡의 오르간 버전입니다. 예전에 저는  곡을 오르간으로 배운 적이 있었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페달까지 쓰면서 여러 성부를 한꺼번에 연주했죠

https://youtu.be/f_xwlRSKxGI

같은 멜로디이지만 전혀 다른 느낌이지요?

 17세기에 이르기까지 독일이 유럽 음악의  중심이  적은 없습니다. 대신 독일 사람들은 외국에서 발달한 여러 음악 장르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르네상스 시대부터 발달한 네덜란드 지역의 다성음악, 이탈리아의 오페라, 프랑스의 관현악곡   외국의 모든 음악 장르를 받아들이고 연구했습니다.

이렇듯 다양한 양식을 혼합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있게  독일은 18세기부터 바흐를 비롯하여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수많은 음악가를 배출하며 유럽 음악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모차르트와 슈베르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독일어권에 속하는 음악가이지요.

이렇듯 양식을 절충하는데  재능을 보였던 음악가가 바로 텔레만(Telemann, 1681~1767)입니다. 텔레만은 바흐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살았던 음악가인데요, 당대 음악가들에게 최고의 작곡가로 여겨졌습니다. 바흐의 음악에 비해 음악이 간결한 느낌이 듭니다. 사실 19세기에는 텔레만의 음악은 너무 단순하다고 무시당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의 음악의 아름다움은 다시 각광을 받고 있지요.

 텔레만의 트럼펫 협주곡을 들어볼까요?  단순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듣기 편안합니다. 사실 금관 악기로 이렇게 연주를 하기는 쉽지 않은데요, 금관악기는 피아노처럼 건반이 많은 것도 아니고 벨브 몇개를 이용하여 숨의 세기를 조절하여 여러 음을 냅니다. 아주 어려운 악기지요.

https://youtu.be/ufGl19HiAC0

다음에는 바로크의 음악가들 -영국편(헨델 등)을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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