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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텔라언니 Dec 12. 2020

아빠에 대한 기억 1


아빠는 올해 구순이 넘으셨다. 연세가 있으시니 몸이 여기 저기 편치 않으시고 신호를 보내온다. 늘 식사를 잘 하고 불과 몇년 전에도 한강을 하루에 세번씩 산책하던 정정한 모습은 어디 가고 요즘은 유동식만 드시고 엄마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으며 집에 계신다. 


며칠전 친정에 가서 물수건으로 아빠 등을 닦아드리는데 너무 말라서 순간 앙상한 아빠 등을 보며 울컥하였다. 새 내복을 갈아 입혀드리고 로션을 발라드리니 아기처럼 좋아하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아빠를 안아드렸다. 그리고 작정을 하고 말씀드렸다. 

“아빠, 오래 오래 사세요.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지?”

 나는 내 또래 많은 친구들이 그렇듯 아빠와 친한 딸은 아니다. 더구나 막내라 아빠와 나이차, 세대차이도 많이 난다. 우리 세대에 프레디처럼 친구같이 놀아주는 아빠는 거의 없었다. 그러나 내게 아빠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성실히 회사에 나가 가족들을 위해 일하는 모습으로 우리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신 것 같다. 

아빠가 얼마나 우리 곁에 계실지 아무도 모른다. 그간 아빠가 우리에게 했던 이야기, 내 기억에 남아있는 아빠의 모습을 글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나도 나이가 들어 아빠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질 때 글을 읽고 다시 떠올릴 수 있을테니까. 

지난번 아빠에 대한 포스팅에서 아빠가 스무살 일본 유학을 가서 “팬티”만 입고 사진을 찍은 이야기는 이미 하였다. 아빠는 종종 아빠의 어린 시절이나 유학 시절 이야기를 나에게 해주시곤 했다. 주로 저녁 먹을 때나 아빠 차를 타고 통학할 때 들었던 것 같다. 아빠가 홀홀단신 일본에 유학가서 고학생으로 고생할 때, 학비를 벌기 위해 센베이 장사를 한 이야기는 우리 가족에게 유명하다. 

가난한 고학생이던 아빠는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일본 과자인 센베이 장사를 했다. 풀빵이나 붕어빵 장사를 한 것이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새벽부터 목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반죽을 준비해서 신나게 장사를 했다. 곧 자리를 잡아서 아빠는 당시 일본 순경 월급의 3배를 벌었다고 했다. 

그러나 몇 달 후 대학에 입학해야 해서 센베이 장사를 그만 두어야 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오빠와 나는 “아깝다, 아빠가 그 때 공부하지 말고 그냥 장사를 했으면 재벌이 됐을 수도 있는데. ㅋㅋ롯데그룹 신격호 회장도 껌장사부터 했다고 하지 않았나. 혹시 알아? 우리가 재벌가가 되었을지 ㅋㅋㅋ” 하며 킥킥거렸다. 

여튼 아빠의 성실함을 말해주는 에피소드는 여러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것이다. 1920년대생인 아빠는 일제치하에서 초중고 교육을 일본어로 배워야했다. 시골에 살다가 처음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빠는 일본어를 알아들을 수도 읽을 수도 없었다. 따라서 시간표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교과서를 준비해 가야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던 8살꼬마는 그냥 가방에 모든 교과서를 다 싸갖고 다녔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친구들이 꺼내는 책을 보고 눈치껏 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십리길이 넘는 통학길을 그 무거운 가방을 들고 갔을 8살짜리 아빠를 떠올리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아빠 말로는 6개월 이상 교과서를 다 싸짊어지고 다닌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체력이 정말 좋고 부지런했는데 그런 아빠를 보며 오빠와 난 “왜 우린 아빠처럼 부지런하지 않고 게으를까” 서로 반성하곤 했다. 

아빠에게 들은 우스운 이야기도 생각난다. 아빠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오자 동네 어른 중 한분이 일본에서 기계 공부한 아무개가 돌아왔다며 고장난 재봉틀을 들고 왔다. 

대학에서 재봉틀 고치는 걸 배우지 못한 아빠는 진땀이 났다. 그러나 차마 못 고치겠다는 말을 못 하겠어서 그냥 두고 가시라고 했다. 대책이 없던 아빠는 재봉틀을 분해한 후 그대로 조립했다. 그러자 고장난 재봉틀이 잘 돌아가더란 것이다. 

“내가 그 때 얼마나 진땀이 났던지. 그래도 조립 후에 재봉틀이 말을 들으니 정말 한시름 놓았지”

하고 신나서 말씀하시던 아빠가 생각난다. 

아빠에게 얽힌 여러 이야기와 추억을 쓰다보니 또달른 에피소드와 이야기가 생각난다. 앞으로 생각이 날 때마다 아빠와의 기억을 글로 남겨봐야지. 그러면 아빠가 가신 후, 아빠가 보고 싶을 때 읽으면 조금이나마 마음이 따뜻해지지 않을까













아빠에 대한 기억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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