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 못하는 병
막 운동을 나가려던 참이었다.
"언니, 시간 있어요?"
친한 동생의 전화였다. 동생이 요즘 논문을 쓰느라 고생이 많다. 동생이 자신의 논문에 관해 조언을 구하자, 밖에 운동 나가려던 참에 다시 책상에 앉았다. 동생의 이야기를 한참 들어주고, 메일로 자료를 다운로드하여 동생이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운동을 나가고 싶었는데, 나가지 못하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동생이 듣고 기분 나쁘지는 않았는지 조심스럽고 미안하다. 전화를 끊고, 관련 논문을 내가 찾아주겠다고 이야기한다.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동생이 나에게 시간 있다고 할 때, "나 운동 나가려던 참이야."라고 말했으면, 운동 다녀와서 좀 더 기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난 나의 필요보다 왜 타인의 부탁이나 요구에 자꾸 마음이 걸리는 것일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일까?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은 것일까? 그런데, 타인에게 친절함은 나에게 무례함으로 다가온다.
'너 운동 나가기로 했었잖아. 목 디스크 때문에 목도 아픈데, 동생 이야기 들어주느라 목이 더 아프잖아.'
그랬다. 실은 난 운동 나가고 싶었는데. 계속 방에만 있어, 마음이 어려워 운동 나가고 싶었는데. 동생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시간이 흘렀고, 결국 운동을 못 나간채 점심시간이 되어버렸다.
그럴 때가 많았다. 4년 전에, 다른 분이 나에게 조금 무리한 부탁을 하셨다. 그 당시, 난 거절을 했다가는 다시 마음이 약해져 그렇게 해 드리기로 했다. 그것 때문에 남편과 싸웠었다. 남편이 내가 거절을 잘 못한다고 안타까워하며 이야기를 꺼냈다가 결국 싸우게 되었다. 싸웠다기보다는 내가 울었다고 한 것이 더 맞는 표현이겠다. 실은 나도 그 당시 거절하고 싶었는데 마음이 약해졌던 것이다. 그 후, 내가 힘들게 부탁을 들어준 분으로부터 어떤 감사나 고마움을 표현받지 못했었다. 그분은 당연히 으레 내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던 것일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에 불편함이 남아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분 잘못이 아니다. 확실하게 내 의견을 표현하지 못한 내 잘못이지.
어떻게 하면 거절할 수 있을까? 타인이 싫어서 거절하는 게 아닌데, 타인을 무시해서 거절하는 건 더더욱 아닌데. 타인이 소중한 만큼 나도 소중해서 거절하는 것인데, 그걸 나 자신이 잘 모르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강박, 타인에게 선을 베풀어야 한다는 의무감이 가끔씩은 날 너무나도 지치게 한다. 나의 경계선을 다시 세워야겠다.
"당신이 소중한 만큼, 나도 소중해요.
당신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나의 시간도 소중해요
당신의 인생이 소중한 만큼, 나의 인생도 소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