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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샘 Oct 02. 2023

일상을 살아내는 힘

몸이 계속 말라간다

살이 자꾸만 빠진다. 한창 이십 대에는, 살찌는 것이 고민일 때가 있었다. “물만 먹어도 살찌는 것 같아.”라며 다이어트의 압박감으로 지냈던 때가 먼 과거가 되었다. 여름방학 이후, 다시 체중계에 올라갔더니 20년 만에 고등학생 때의 몸무게를 찍었다. 이제는 줄어드는 숫자가 불안하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에, 내 건강을 갈아 넣으며 능력을 추구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애써 노력한 열매는 잘 보이질 않고, 나뭇가지 같이 말라버린 내 모습을 발견하곤 한다.

몇 년 전 시험관 시술 중 반갑지 않은 손님, 췌장염이 찾아왔다. 여러 번 심한 복통으로 새벽에 응급실을 갔다. 평소에도 소화가 안 되어 자꾸만 헛트림이 나왔다. 다행히 이번 여름, 병원에서 수치가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라며 1년 후에 다시 보자고 했다. 깊은 안도감을 느끼며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교육 현장에서 교사의 삶도 때로는 이렇게 삐쩍 삐쩍 말라가는 듯할 때가 있다. 여러 업무에, 감정노동에, 순간순간 부딪치는 문제들에 진이 빠진다. 내가 꿈꾸던 현장과는 다른, 광야같이 메말라 보이는 이곳에서 매일의 삶을 살아간다.

  

일상을 버티는 힘

가끔씩 질문이 올라온다. ‘인생은 왜 이리도 쉽지 않은지, 하나님께서 계시다면 왜 이런 어려움들을 허락하시는지, 아무리 노력해도 인생은 슬프고 고달프게 느껴지는지,’ 말이다. 학교에서 교사로 살아갈 때에도, 반짝이는 감동의 시간도 있지만, 대부분은 길고 고된 시간을 인내로 버티곤 한다. 때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문제를 부딪치며 이를 악물고 버텨내야 할 때도 있다.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자취방에 누우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강해져야지,’ 하며 마음을 다독이지만, 자꾸만 마음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아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모든 문제를 내려놓고 기도한다. 그러면 잠잠히 평안이 찾아오곤 한다.

가을이 되니, 마음 관리가 더 어렵다. 선배 언니에게 전화를 건다.

 “언니, 마음 관리가 너무 어려워요. 내 마음이 내 마음대로 잘 안 되어요.”

 “선영아, 우리가 더 어려웠던 시간도 잘 지내왔잖아.”

그랬다. 생각해 보면, 정말 어려웠던 시간도 버텨냈었다.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뎌냈는지 생각해 보면,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에, 삶을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오늘을 버텨내기 위해, 다시 무릎을 꿇는다. 그분께 모든 것을 맡기면서 말이다.


학교에서 일상을 살아내기

어떻게 생각해 보면, 매일의 삶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께서 날 불러가시면 난 바로 하나님 곁에 갈 텐데, 아직 부르심의 뜻이 있으시기에 이 땅에 남겨두신 듯하다. 날 향한 부르심은 무엇일까? 티끌같이 작은 나이지만, 어떤 뜻이 있으셔서 날 만드셨을까? 나는 그분의 목적대로 잘살고 있을까?

왠지 ‘목적’이란 단어가 주는 중압감이 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어떤 커다란 것이기보다는, 작고 소소한 나의 하루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내가 내 삶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아내는 것일 것이다. 비록, 그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부족하지만 성실히 삶을 살다 보면, 그래도 기쁨의 순간이 있다. 애쓰며 업무를 해 냈을 때, 수고를 알아주는 선생님들의 메시지에 힘이 난다. 내가 준비해 간 수업에, 학생들이 눈을 반짝이며 참여해 주면 나도 알지 못하는 샘솟는 희열을 느낀다. 늘 기가 죽어 있던 학생이 영어 발표를 해내고 난 뒤, 그 눈빛에서 자신감이 느껴질 때 교사로서의 보람을 느낀다. 그렇기에, 고통과 슬픔을 주는 곳도 학교이지만, 나에게 기쁨과 희열을 주는 곳도 학교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교사로 살아간다.

방학 때, 수업코칭연구소 활동가 과정에서 했던 활동이 떠오른다. 활동가 내면성찰 과정 중, ‘나는 왜 가르치는가?’를 주제로 선생님들이 공동의 시를 만드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아침에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할 수 있어 가르친다.’ ‘나는 사랑을 주기 위해 가르친다.’ ‘나는 우리 OO의 편이 되어 주고 힘을 주려고 가르친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의 세계를 돌보기 위해 가르친다.’ 등 주옥같은 문장들이 시로 탄생했다. 어떻게 하면 교사를 탈출할지 골몰하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왜 우리가 교사로 살아가는지가 뭉클하게 다가오는 시간이었다. 활동이 마무리될 때, 선생님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꽃피고 있었다. 어쩌면 우리에게 교사로 살아가는 이유를 떠올리는 시간은, 우리의 삶의 힘을 퍼 올리는 중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교사로 살아가는 이유를 생각하며, 하루하루의 소소한 행복을 잊지 않는 것, 감사를 찾아가는 것이 힘겨운 하루를 버티는 힘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용기 내어 내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간다. 내가 왜 가르치는지,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을 떠올리며 오늘도 학교에 출근한다.


여전히 수업은 살아있어, 수업 나눔도 계속된다.

2학기 수업나눔 모임을 했다. 힘겨운 여름을 보낸 뒤, 처음으로 하는 수업을 공개하고 이야기 나누는 수업나눔이었다. 학교에서 녹초가 된 몸으로 모임에 도착했지만, 반가운 얼굴들을 보니, 없던 에너지가 생기는 듯하다. 수업자의 교실 속 이야기, 수업자의 수업 신념, 철학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인다. 선생님께서 수업 속에서 얼마나 애쓰시는지, 그 애씀과 수고가 고스란히 마음에 전해진다. 수업 속에서 선생님이 순간순간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이 안쓰럽고, 귀하고, 존경스럽다. 수업 속 선생님의 모습에서 내가 보인다. 수업자의 이야기에서 내 이야기가 들린다. 수업자의 눈에서 또르르 떨어지는 눈물이 나의 눈물이다. 수업친구의 수업자를 향한 격려에, 왠지 모르게 나도 같이 위로받는다. 수업나눔을 하다 보니, 교사로서 사는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아, 내가 교사로 살아가고 있구나!

교사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서로를 향한 이해와 연대가 있기 때문에 다시 일어서게 된다. 우리는 삶을 살아내고, 이를 이야기하고, 다시 삶을 살아낸다. 그 가운데 그분의 선하신 뜻은 여전히 빛을 내며 우리를 비추고 있다.


감사로, 일상을 살아간다

2023년도 어느덧 마무리되어 간다. 선생님들의 안타까운 죽음과 함께 우리는 거리로 나왔고, 잘못된 법의 개정과 교육권 회복을, 공교육 회복을 외쳤다. 그 과정에서 ‘나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함께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변화를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을 지금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여전히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문제가 많은 일상이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세어본다. 이렇게 아침에 일어나 일하러 갈 곳이 있다는 것, 여전히 두 다리로 뚜벅뚜벅 걸을 수 있어서 산책도 하며 스트레스도 날려버릴 수 있다는 것, 학교 급식을 먹을 수 있다는 것, 날 힘들게 하는 아이들도 있지만 날 사랑해 주는 아이들도 있다는 것,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동료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 우리가 연대할 수 있다는 것,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동역자들이 있다는 것,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나의 희로애락을 함께하시며 이 인생길을 함께 걷고 계시다는 것을 떠올린다.

감사한 일들을 떠올리니 버겁게 느껴지던 매일의 일상에 숨통이 트인다. 모든 것이 나에게 주어진 선물이라는 것, 그 선물을 소중히 여기며 다시 일상을 살아간다. 나도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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