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V_에필로그
기억을 모조리 끌어모아 사서 고생하는 사서로 살아온 나의 20대와 30대 그리고 40대가 된 현재까지의 삶을 글로 쓰면서 나름 참 파란만장했구나 싶었다. 사서 고생하는 사서로 산지도 어느덧 횟수로는 20년차가 되어가고 있다. 다양한 도서관의 관종에서 일하면서 사서의 직업을 왜 놓지 않았는지 내내 고민했다. 어쩌면 그 이유를 찾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특별히 책을 좋아하거나 학창 시절에 소위 문학 소녀여서 도서관을 자주 찾거나 하지도 않았던 나에게 운명처럼 수학능력시험 점수에 맞춰서 진학한 문헌정보학과와 졸업 후 2급 정사서, 사서교사 자격증으로 80여만 원의 월급으로 시작한 도서관 사서 비정규직, 계약직을 전전하며 현재는 초등학교 기간제 사서교사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사서로 일하며 힘들고 그만두고 싶었던 순간들도 솔직히 많았다. 다른 직업을 가져보려고 시도도 해보았지만 돌이켜보면 사서의 역할과 도서관이라는 곳이 내가 사서라는 직업을 버리지 못하고 아직도 붙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인 것 같다. 일반 기업처럼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기보다는 도서관은 공공 서비스적인 기능이 많고,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도서관은 모든 정보로 접근하는 통로이자, 만남의 광장이며 그 어느 누구도 차별 없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하고 있는 곳이다. 책과 도서관을 매개로 내 주변의 이웃들을 만날 수 있게 되고, 사회에서 소외되는 계층들에게 다양한 정보 서비스를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0세부터 100세까지 도서관은 누구나 편안하게 찾아와서 다양한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이다. 그 공간 안에서 일하는 사서는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려고 부단히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사서로 일하며 너무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때로는 신기하기도 했고, 즐겁고 감사한 일도 많았다. 이 직업으로 북아프리카 튀니지에 가서 2년 동안 살아보기도 하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도서관 개관 업무를 해보기도 했다. 물론 정신적으로 힘들게 하는 민원인들도 있었고, 조직 내에서 나와 의견이 맞지 않아 속앓이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규직과 계약직의 간극에서 생겨나는 차별도 받아야했고, 도서관 대출반납 데스크에 앉아 있으면 “언니” 라고 아무렇지 않게 나를 호칭하는 이용자들도 있었고, 다짜고짜 나에게 화부터 내는 사람도 있었다.
직업이 사서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어서 좋겠어요." 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한다. 하지만 정작 사서의 업무는 감정 노동자로 일해야 하는 부분도 많았고, 화장실 청소부터 도서관 앞 정원 비료 뿌리기 등과 같이 생각지도 못한 일도 업무 중에 하나였던 때도 있었다.
전공을 꼭 살려서 취업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4년 동안 공부한 전공을 살리고 싶었고, 전문직이라고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나름 전문직으로 살아내려고 주어진 자리에서 순종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버텨낸 것 같다.
도서관이라는 곳이 어쩌면 나에게는 삶의 일부가 된 거 일지도 모르겠다. 서가의 책들이 청구기호대로 정렬되어 있지 않으면 어느 순간 마음이 편치 않고, 청구기호 순으로 도서를 정리하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묘한 희열도 생기고, 도서관에서 진행했던 여러 독서문화프로그램을 기획하며 끙끙되고 힘들었지만 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이용자들이 만족해하며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들으면 불끈 힘이 생기기도 했다.
새로운 책들이 도서관에 들어오면 어깨와 팔이 아프게 정리해야 하지만 따끈따끈 한 신간 책들을 서가에서 꺼내어 대출해가는 이용자들을 보면 흐뭇하고 고마웠다. 추천도서를 선정해서 북 큐레이션을 해놓았을 때도 내가 선정한 책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책 페이지를 넘기며 반응을 보여주는 이용자를 보면 뿌듯하고 감사했다.
나는 일복이 좀 많은 편이어서 어딜 가거나 없던 일이 생기거나, 전임자는 편하게 일했던 업무도 내가 근무하게 되면 무엇인가 변경을 하거나 전혀 새로운 업무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당시에는 짜증도 나고, 왜 나한테만 이러시냐고 하나님을 원망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과거를 추억하면 그 당시에 그러한 업무를 해보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기획했기에 다양한 도서관에서 근무할 수 있었고,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을 실제 경험으로 풀어내는 일만큼 소중한 건 없는 것 같다.
도서관에서 만난 수 많은 사람들(이용자, 동료, 상사 등) 덕분에 지금의 내가 존재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또 어떤 다이나믹한 일들이 내 앞에 펼쳐질지 모르지만 그래도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도서관을 방문해주는 이용자들에게 감사하며 그렇게 서로에게 책을 매개체로 먼저 말을 걸고 싶다. 지치고 힘든 일상에서 잠시라도 도서관에서 휴식을 취하며 새로운 에너지를 얻어갈 수 있는 그런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 사서 고생하는 사서로 앞으로도 고군분투할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시작할 수 있게 해주신 번역가 신수진 선생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사서 고생하는 사서에 대해 관심을 먼저 가져주시고, 너무 버라이어티한 나의 사서 이력을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셔서 그리고 날것 그대로의 나의 이야기를 직접 글로 써보라는 조언을 해주셔서 이 글을 쓰면서 나의 과거와 현재를 여행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독자분들에게 감사드리고, 사서 고생하는 사서들에게 많은 응원과 관심 그리고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는 사서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꼭 부탁드립니다. 도서관이 있어야 사서도 존재하기에 도서관에 관한 지속적인 관심도 가져주세요. 그리고 학교도서관의 사서교사에게도 많은 관심과 지지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도서관을 찾아주는 학생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에 첫 발을 들여놓았을 때에 초심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