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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다지 Apr 28. 2024

나와의 눈치싸움

스무 번째 편지: 아무도 내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으니까.

2년 전 즈음인가 친한 친구 대신 사주를 보러 간 적이 있어. 내 인생의 2번째 사주 방문이었는데 거의 3달을 대기했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라고 하더라. 갑자기 외근 일정이 생겼는데 버리기는 너무 아까워서 나에게 급하게 연락을 했던 거였어. 모두가 궁금해하는 연애운, 취업운 뭐 그런 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은데,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능력도 좋은데 항상 2% 부족한 결과물이 있어서 아쉬웠을 거다."라는 말은 이상하게 오랜 시간 머리와 가슴에 남았어. 어떻게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리 길지도 짧지도 않은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이 아쉬움과 후회라서 더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 


맞아. 나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고, 현재의 내 모습을 아끼고 사랑하지만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하고 남들보다는 더 자주, 깊게 과거를 바꾸는 상상을 하곤 해. 스페인에서 온 짝꿍은 나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것을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다가도 가끔은 내가 과거에 너무 연연하는 것 같을 때가 있다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은 어느 특정 시점을 고를 수가 없어서인데, 그럼에도 바꾸고 싶은 한 가지를 묻는다면 '내가 하는 모든 선택과 결정에 있어 남들 눈치를 보지 않는 거'라고 대답하고 싶어. 그래서 매 순간 너무나 쉽게 흔들리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고, 뭐든 오래 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도 사라질 수 있게. 


나는 생활 기록부에 적힌 장래 희망이 바뀌지 않는 학생이었어. 그냥 선생님도 아니고 역사 선생님이라는 디테일한 꿈이 있었지. 기억도 안나는 어린 시절부터 정통 사극 드라마를 즐겨보면서 궁금증이 생기는 부분에 대해서 스스로 책을 찾아보았는데 그 덕분에 따로 찾아서 공부를 하지 않아도 항상 역사 과목은 전교 1등을 했었지. 교과서와 시험의 한계를 넘어 역사를 재미있게 가르치는 멋진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최태성 선생님을 이어 EBS의 강단에 서고 싶었고, 역사만큼이나 관심 있는 한복 디자인으로 동아리 활동을 이끌어가고 싶기도 했지. 하지만 간절함만큼이나 너무나 긴장한 나머지 면접에서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한 채 결국 교육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행정학과로 (공무원인 아버지의 영향이 컸지) 진학을 하게 되었어. 입학을 하고 나서 너무 수업이 적성이 안 맞고 재미가 없어서 사범대로의 재수, 편입을 찾아봤었는데 부모님을 비롯해서 주변에서 그러더라. 


"너 그러다가 지금 있는 학교보다 더 낮은 곳에 가게 되면 어쩌려고 그래."

"국영수가 아닌 과목들은 TO가 나지 않을 확률이 높은데 다시 생각해 봐." 


물론 내가 졸업할 때가 되었을 때는 출생률이 가파르게 감소해서 임용의 문이 굉장히 좁아졌고, 언론영상학부로의 전과 후 전공을 살린 브랜드 마케터라는 직업이 나와 꽤나 잘 맞는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런 말들에 10년간 넘게 꿈꿔왔던 직업을 쉽게 포기했다는 것이 너무나 후회가 되더라고. 그래서인지 지난해까지도 계속 국내외 교육 대학원을 찾아보게 되고 말이야. 


졸업을 하고서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어. 취업이 아닌 호주에서의 워킹 홀리데이를 마치고 오니 25살의 끝자락이었는데 교내 취업 컨설턴트분이 "이미 많이 늦었어요. 인턴 경험도 없고, 아 이걸로 대기업은 어려울 것 같은데...'라는 피드백을 받았지. 불안해진 나는 결국 나이가 크게 상관없다는 공기업에 도전했어. 3달 동안 방 안에 처박혀서 한국사 1급을 시작으로, 토익, 오픽, 컴활 1 필기까지 도장 깨기처럼 준비했는데 자격증을 따고 나서 본격적으로 자소서를 쓰면서 이건 정말 내 길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결국 다시 전공을 살려 외국계 로봇 회사 마케터로 일하게 되었는데, 입사를 하니 알겠더라. 나는 정말 어렸고, 그 누구도 나이를 딱히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것을. 


연애도 마찬가지였어. 별로 마음도 없는데, 주변에서 너무 잘 어울린다고 하니까, 그리고 다들 연애를 하고 있으니까 분위기에 휩쓸려 한 연애가 몇 번 있었는데 결국 오래 이어지지 못했지. 눈에서는 하트 대신 귀찮음이, 데이트는 가고 싶지는 않지만 참석해야 하는 팀플 과제처럼 느껴졌으니까. 내 마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다가 돈과 시간을 버리고, 어쩌면 좋은 친구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그들에게 상처를 줬던 것 같아. 


당시에는 재수나 편입을 말렸던 부모님을, 공기업을 추천하던 취업 컨설턴트를 그리고 연애를 부추긴 동아리 언니들을 원망했다면 그래도 지금은 이 모든 것이 내 선택이었고 스스로 나를 보호하려고 만든 핑계임을 알고 있어. 결국 오랜 꿈을 포기하고 전과를 선택한 것도, 불안한 나머지 시험 준비를 했던 것도, 내 마음을 알면서도 그들의 고백을 거절하지 못한 것도 나니까. 그리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나 자신이라는 것도.


그래서 너는 다른 사람과 내 마음 사이에서 눈치 싸움을 하지 않고 조금 더 스스로에게 솔직해졌으면 좋겠어. 20살 성인이 될 때까지 각자의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한국식 교육에 익숙해진 우리기에 이 다짐이 쉽지 않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지만 소중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누군가를 탓하거나 과거의 내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해서. 


그러려면 대학원 진학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고 호주에서 한국에 돌아온 것을 후회하면서도 경력의 공백기가 생길까, 30대에 일 대신 공부를 해도 될까 고민하며 여전히 입학 원서를 위한 아이엘츠 책 한 권 조차 사지 못하고 있는 나부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겨볼게! 


10년 후, 2034년에는 내가 선택한 것이 비록 실패로 끝날지언정 하지 않는 것에 대한 후회와 아쉬움은 없는 회고를 할 수 있길 바라며 내가 일기장에 써 놓은 문구와 함께 오늘 편지도 이만 줄일게!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그 무엇보다 나의 몸과 마음이 내는 목소리가 가장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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