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의 다지 May 12. 2024

삶에 20대가 꼭 필요한 이유

스물한 번째 편지: 진짜 나를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

25살이었던 인턴 시절 30,40대 팀장님들과 점심을 먹으면 항상 듣는 말이 있었어.


"여러분, 진짜 어리니까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봐요. 그래도 되는 나이니까."


막상 나는 졸업 후 떠난 워홀을 코로나 때문에 제대로 망하고 돌아와 회사 생활을 너무 늦게 시작한 건 아닐지, 그것이 앞으로 쌓아갈 커리어에 오점이 되지는 않을지 불안에 떨었었는데, 이 말이 묘하게 위로를 받는 것 같기도 하면서도 이미 당신은 사회에서 어느 정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싶어 조금의 질투심도 들기도 했어.


그래서 물어봤어. "그럼 다시 이 나이로 돌아가고 싶으신가요?"

그랬더니 그건 아니래. 속으로 생각했지. '거봐, 이건 우리가 어리다고 놀리는 게 분명해.'


20살의 끝자락에 온 지금은 왜 그런 말씀을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아. 어떠한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나기에 충분한 건강한 몸과, 더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는 것도 있지만 남은 삶에서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취향'을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거든.


그런 의미에서 나의 20대는 남들이 인정하는 대기업에 취업을 하거나, 부지런히 재테크를 하고 있거나, 나의 재능을 살려서 N잡러가 되거나 심지어 부지런함의 상징인 미라클 모닝 그 어떤 것도 해당되지 않지만 이 시기 때만 할 수 있는 미션을 잘 수행한 것 같아. 물론 나 역시도 사회가 바라는 20대의 형태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는 것에 아주 오랜 시간 스트레스받아왔지만 말이야.


취향은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방향이라는 뜻을 가진 굉장히 쉽게 느껴지면서도 어려운 단어야. 2000년대 한국에서 교육을 받은 평범한 20대로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영혼 없이 문제집을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까.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정하는 데 쓰는 노력보다 부모님이, 선생님이 알려주는 길에 나를 맞추기 급급했고. 그런 10대를 지나 갑자기 자유가 주어졌을 때에는 후련하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갑자기 나침반이 고장나버리기 일쑤더라고.


돌이켜보면 나는 그 나침반을 고치려고 발버둥 치기보다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나씩 도장 깨기처럼 하다 보면 언젠가 나의 방식대로 나침반이 맞춰질 거라고 믿었던 것 같아. 한 번도 내가 늦었다고 닦달하지 않은 부모님과 나의 모든 선택을 응원하고 지지해 준 가장 친한 친구들 N, Y의 힘이 컸어. 이 편지를 빌어 감사함을 전해. 


그 덕분에 찾을 수 있었던 몇 가지 취향을 소개해보면,


연애에 관해서: 나는 첫 만남에 끌리지 않으면 연인으로 발전을 하기 어려운 것 같아.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였으면 해. 얇지만 진한 쌍꺼풀과 큰 눈과 얇은 입술 그리고 청바지에 귀걸이가 잘 어울리는 사람이 좋아. 물론, 새로운 문화와 음식 역사와 사람에 대해 열려 있고, 자기 일을 사랑하면서 유머 코드가 맞고, 비슷한 성향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 예전에는 20대 초중반의 빛나는 나이에 연애를 하지 않는 게 말이 되냐는 주변사람들의 성화에 잠식되어 수많은 소개팅을 하고 가끔은 만났다 금세 헤어지기도 한 것이 과연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걸까 싶었지만 이제는 '내가 원하는 사람을 알려면 많이 만나보는 게 좋아'라는 엄마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해. 


공부에 관해서: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취업이나 이직을 걱정하지 않는 공부를 하고 싶었고, 일을 하면서 돈도 아주 많이 벌고 싶었어. 행정학과로 입학한 이후 내내 1,2등을 놓치지 않았던 나는 원하는 과로 전과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당시 친했던 동기 2명은 '정보보호학과'로 나는 '언론홍보학과'를 택했지. 학교를 다닐 때는 재미있게 공부를 했지만, 취업 시장에 나오고 나니 그때의 선택이 슬슬 후회가 되더라고. 서류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있을 때 친구들은 졸업 후 손꼽히는 대기업에서 놀라운 연봉을 받으며 일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창피하지만 배가 살살 아팠고, 개발자들이 90% 넘는 회사에서 마케터는 누구나 할 수 있다고 믿는 몇몇의 개발자들을 만나며 그 부러움은 커졌어. 그래서 인턴이 끝나자마자 코드잇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공부를 시작했지. 잠깐 나를 시험해 볼 심산으로 선택했던 지금 회사에서 브랜드 마케터로 일을 하면서 알겠더라. 모든 사람은 다 잘하는 것이 있고, 사회에서 지금 당장은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도 취향에 맞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를!


그 외에도 긴 호흡의 영화보다는 임팩트는 적지만 짧은 호흡의 드라마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서울 한 복판 오피스텔에서 사는 것보다는 강과 나무가 보이는 서울 외곽의 주택이나 빌라가 마음을 편하게 해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세련되고 고급진 철제 가구보다는 다정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우드톤의 가구가, 잃어버릴 걱정 없는 굿노트보다는 펜으로 사각사각 써 내려가는 종이 수첩을 사랑한다는 것도 파악했어. 그 사이사이에서 좋아하는 브랜드도 생기고, 그 덕분에 비슷한 취향을 가진 새로운 친구들도 사귈 수 있었지. 


내가 학교를 다녔던 시절보다는 아이들에게 더 많은 자유와 다양한 기회를 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직은 그 특권을 모두가 누릴 수 없다는 것이 슬프기도 해. 그래도 너무 좌절하지는 마. 우리에게는 20대가 있고, 이 시간들을 나를 알아가는데 잘 사용한다면 다가올 30대, 40대는 더욱 행복할 거니까!


올해 나는 지난번 너에게 약속했던 것처럼 건강한 일상을 위해 다양한 운동을 해보고 있는데, 그 덕분에 새로운 운동 취향도 찾은 것 같아서 공유해! 역시 나는 누군가 함께하면서 공과 라켓이 있어야 재밌더라.

길지도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너의 20대에는 어떤 일이 펼쳐질지, 또 어떤 취향을 찾게 될지 정말 기대가 된다! 그럼, 나도 인턴 시절 만났던 팀장님처럼 한 마디하고 사라져 볼게!


" 지금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봐. 그래도 되는 나이니까."

참,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란다! 우연히 이 편지를 읽고 있는 당신을 포함해서.



이전 21화 나와의 눈치싸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