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의 의미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아이를 키우다 어느날 문득 내 책상을 돌아보게 된다. 나도 어린시절 내 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에서 편지도 쓰고 내책을 정리해두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대부분 남편의, 남자의 서재자리는 당연한듯 존재하지만 정작 엄마인 나의 자리는 사라져가고 있었다. 여기서 묻고 싶다. 진정 주방이라는 자리가 여자의 자리인지? 엄마의 자리인지, 나의 자리인지. 주방은 여자의 전유물이 아니며, 남자의 전유물 또한 아니다. 부부 공동의 공간이며, 가족이 함께 공유하고 요리를 하는 공간이다. 아이들도 간단한 계란후라이를 할 때 주방에 들어오고, 주말에 남편이 아이들을 위해 요리할때가 그러하다.
사실 이전에 나의 어머니 시절만 해도 엄마가 밖에서 일하기 쉽지 않았다. 월등히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양육하는 주된 역할을 하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아들선호사상이 인식에 굳건히 자리하고 있었고 자녀의 수가 월등이 많았다. 할머니 시절만 해도 한 가정에 자녀의 수가 대여섯명은 보통 넘어갔다. 가정에서 많은 자녀들을 보살피고 부족한 살림살이는 밭에서 농사를 짓거나, 혹은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녀들을 돌볼수 있는 아주 간단한 일들만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보니 매끼니를 주방에서 준비해야 했고, 제사나 가정의 집안일이 있을때면 늘상 주방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주방에서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하는 어머니의 전유물로 주방이라는 공간이 인식되었고, 설이나 추석 명절에도 늘상 어머니들 위주로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를 하며 설거지를 해왔다. 아침상을 차리면 설거지를 하고, 간식을 먹고 또 설거지를 한다. 점심때가 되면 음식을 준비하고 요리를 하고 상을 차리고 또 설거지를 한다. 저녁도 마찬가지다. 차리고 먹고 치우고 차리고 먹고 치우고의 무한한 반복이다.
요즘은 달라지고 있다. 나를 포함한 함께 일하는 부부들이 많다. 아이가 어릴때는 당연히 엄마의 손길이 엄마의 정성이 닿는것이 좋지만, 각자의 상황과 사정에 따라서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예전에는 대가족이었고, 자녀가 많은만큼 육아의 도움을 받을 손길이 곳곳에 많았다. 이웃집의 문턱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고, 엄마아빠를 비롯해 할머니,할아버지, 삼촌, 이모, 주변이웃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은 핵가족이고 부부와 자녀로 구성되어 있다. 주변에 친정,시댁이 가까이 살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보니 육아의 도움을 받을 있는 곳이 부족하다. 어린이집에 의존할수 밖에 없고, 부부의 공동육아와 공감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아빠'육아가 급부상하고 있다.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부부공동육아가 떠오르는 시대다. 시대가 변한만큼 아빠들도 변하고 있다. 변해야 한다. 변해도 된다! 바깥에서 일만하고 집안에 오면 방안에만 있던 아버지의 자리가 달라지고 있다. 주방에 수시로 들어오고 요리를 하고 설거지를 한다. 함께 퇴근한 엄마는 어린이집에서 아이를 하원하고 아이를 돌본다. 서울까지 장거리를 출퇴근하는 남편대신 가까이서 퇴근하는 나는 아이를 하원하고 아이를 돌본다. 저녁을 준비하고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 요리를 한다. 주말이라도 남편의 자리를 만든다.
책상의 의미
주방이 엄마의 전유물이 아니듯이 서재는, 책상은 남편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렇다면 식탁은 나의 공간인가? 의문이 들 수 있다. 식탁은 함께 밥을 먹는 자리이고 밥을 먹다보니 흘리고 치우고 또 식사할 시간이 오면 밥을 차려야 한다. 나의 책을 보거나 나의 글을 쓰다가도 식사시간이 되면 나의 것들을 치워야 한다. 가벼운 책을 보거나, 하루의 일과를 적거나, 아이들의 공부나 숙제를 함께 봐주는 공간으로 식탁은 좋다.
어떤 것이든 좋다. 작아도 좋다. 아주 작은 탁자와 의자하나만 있으면 된다. 그게 나의 공간이고, 엄마의 존재하는 시간이다. 새로 사지 않아도 좋고, 집에 남아있는 테이블이나 탁자 하나만 있으면 좋다. 그 위에 나의 노트와 책 한권, 그리고 펜 하나가 놓이면 끝. 24시간 살림을 돌보고 아이들을 챙기고 남편과 그리고 나의 식사를 챙기는 시간 중 나에게 집중할수 있는, 오롯이 나만의 공간은 나의 책상과 함께 한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할때쯤 엄마는 아이의 책상을 고르기 바빠집니다. 문득 '나'의 책상은? 아이 책상을 고르듯이 엄마의 책상을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나를 생각하는 시간은 나의 공간에서 샘솟을지도 모르니까요. 동그란 테이블에 후리지아 꽃 한송이를 꽂아두는 건 어떨까요? 향긋한 봄내음을 물씬 풍기는 노오란 색 후리지아는 새봄의 향기처럼 우리의 마음을 살랑살랑 흔들어줄지도 모르니까요.
아빠의 책상이 있듯이, 엄마의 책상도 필요해. 엄마도 이곳에서 책도 보고 엄마의 시간을 가질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