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이었다. 매일이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다른 일상이었다. 여전히 간호사로 근무하고 '나는 평생 간호사로 근무하려나 보다'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이었다. 간호사이지만 늘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까지? 간호사로 일할지 나 역시 알 수 없었다. 책이라는 녀석은 나에게 그렇게 다가왔다. 10여 년 전 경기도 김포로 이사 왔다. 서울의 집값을 감당할 수가 없었던 이유가 가장 크다. 김포의 한강신도시는 그 당시 정말 허허벌판이었다. 아파트 한두 개가 전부였고, 지금의 이마트나 구래역이 없었던 시기였다. 다행히 집 가까이 주민센터가 있었고 2층에는 작은 도서관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책과 가까워지고 싶었고 아이를 잘 키우고 싶었던' 나는 작은 도서관을 드나들었다.
책이라는 즐거움도 하나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 이전에 무수한 책들이 있었고 만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 명의 작가가 또 다른 작가와 연결되었다. 자기 계발이나 에세이, 신간위주의 책은 나에게 만만했다. 작은 도서관은 큰 도서관에 비해서 나에게 만만했다. 우선 내가 보이는 면이 한정되어 있었고, 수많은 책들이 있지만 내가 몇 걸음만 떼면 다른 코너를 넘나들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하나의 책을 만나면 다른 책이 옆에 있었다. 한 명의 작가를 알게 되면 그 작가의 또 다른 책과 연결되었다. 작가의 또 다른 책을 찾아본다는 건 묘한 매력과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자기 계발서라고 해서 다 같은 책이 아니었다. 실제로 자기 계발서도 무수한 단계들이 있는데, 나와 맞는 상황이나 해볼 만한(?) 시도 도전 같은 것들이 특히 와닿는 자기 계발서 위주로 읽어 내려갔다. 책과 관련된 책도 넘나들었다. 자녀교육을 위해 시작했지만, 책은 독서와 교육, 육아를 넘나들었다. 그 당시 만난 세 권의 책이 내 인생에서 크나큰 변화의 물결을 싹트게 했다. 내 안에 작은 씨앗이 심어지게 된 것이다.
자기 계발서는 실제로 해보느냐, 안 하느냐 에 따라 그 이후가 달라진다. 작은 것이라도 시도해 보고 지속해 보고 꾸준히 해본다는 게 가장 중요했다. 책 읽어주기는 누구나 다 알고, 다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아무나 그 과정을 소화하지는 못한다. 그 필요성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고,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있다. 알기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책을 읽는 것과 책을 쓴다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책을 읽기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책을 쓰려고 시도하고 시작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이고 변화의 시작이다.
도서관을 다니고 무수한 책들을 빌리고 읽으면서 나에게 맞는 책을 찾았고 나만의 색을 찾아나갔다. 당시 작은 스터디나 모임에도 참석했다. 영어스터디를 가보기도 했고 투썸카페에서 매주 금요일마다 모이는 작은 소모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영어에 관심 있는 엄마들이 매일 일정한 시간에 모여 영어회화의 기본이 담긴 책이야기를 나누고 영어라는 언어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했다. 그림책모임도 마찬가지다. 단 한 명에서 시작했다.
당시 한아름이라는 커뮤니티카페가 있었다. 한 달에 한번 그림책모임을 가지기로 하고 공지를 올렸다. 반응이 뜸하거나 어느 날은 반응이 뜨겁기도 했다. 한 달에 한번 열리는 만큼, 나름의 그림책선정에도 공을 들였다. 나 역시 그림책에 가까워지는 시기였고 나처럼 그림책에 관심 있는 부모들이 있다는 걸 알아가기 시작하던 때였다. 내가 골라간 그림책을 보고 '이런 그림책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분들도 있었다. 성교육을 주제로 한 날은 특히나 인기가 있었다. 그림책으로 성교육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평소보다 관심이 뜨거웠다.
이후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이 브런치에 올린 글이 '어느 사서선생님의 눈에 띄어' 강의가 시작되었다. <그림책으로 함께하는 성교육>이라는 주제로 부모와 아이들이 함께 온라인줌으로 강의를 함께 들었다. 하나의 강의가 또 다른 강의로 이어졌고, 경기도 김포의 각 가정을 방문하며 간호사로 일하는 동안에도 '성교육강사'로 성교육을 진행했다. 간호사에서 작가로, 그림책성교육 전문가로 하나씩 이루어지는 과정이 신기하기도 했고, 설레기도 했다. 긴장을 안 했다면 거짓말이다. 강의를 처음 선날 은 정말 떨렸다! 강의전날 아이들이 자는 시간에도 강의준비를 했고, 실수하거나 틀리지는 않을까? 우려했던 마음과는 달리 생각보다 평온하게 강의를 진행했다. 처음 강의를 시작으로, 마이크를 잡는 연습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마침 첫째 아이가 베이스기타를 학교에서 배우면서 베이스기타를 사주었는데, 앰프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앰프와 마이크를 연결해서 낮시간동안에는 나름대로 강의연습을 해보았다.
작은 도서관에서 만난 한 권의 재미있는 책과 강화도에서 아이에게 읽어준 수다씨 그림책을 시작으로 우리는 책에 가까워지고 책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하나의 책에서 또 다른 책으로 이어졌고,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자기 계발서를 하나둘, 백여 권이 이르게 보았을 때 보물지도나 긍정확언에 대한 실천에 옮기기에 이르렀다. 하나의 시작과 시도들이 꿈을 꾸고 작게나마 꿈을 이루게 해 주었다. 책을 쓰고 또 다른 책을 썼다. 그 책은 또 다른 책을 쓰게 도와주었다. 강의를 시작하니 또 다른 강의로 이어졌고, 그 강의는 또 다른 책을 쓰게 하기 하나의 기회가 되었다. 그렇게 <그림책으로 시작하는 성교육>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책방을 창업한다는 구상과 생각도 내가 이제까지 접하고 만난 수많은 책과 그림책들 덕분이다. 책에 무관심했던 30여 년의 시간은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알지 못하던 시간들이었다. 책을 만나고 재미있는 책을 발견한 시간들이 '나의 꿈'을 꾸게 하고 그 꿈을 더욱 명확하게 만들어주었다. 그림책을 알리고 책 읽어주는 일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누구나 책을 쓸 수 있다는 사실도 책방이라는 창업을 이루면서 알려주기에 이르렀다. 내가 만약 책을 소홀히 했다면, 책의 재미를 몰랐다면 책방이라는 창업을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매일이 똑같은 지루하고 반복되는 삶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재미있는 책과 아이에게 읽어준 그림책과, 모임에 참여한 한 사람을 시작으로 모임과 책방에 대한 꿈을 꿀 수 있었다. 책방 창업을 준비하면서 네이버지도에 등록해 둔 주소지를 보고 전화해 준 쿠팡 직원도 나의 창업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책방 하나요?"
쿠팡 직원의 전화 한 통은 '내가 책방을 열어야 한다'는 사명을 한 번 더 확인시켜 주었다. 지나다가 검색하고 전화를 걸었을 테지만, (이후에도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 전화 한 통이 나에게는 '어서 책방을 열어주세요'로 들렸다. 그리고 상가를 알아보고 계약을 진행할 때에도 미적거리지 않고 시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해봤어? 해봤냐고?"
누군가는 창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안 그래도 불안한데) 두려움을 심어줄지도 모른다. 요즘 경기가 안 좋은데 굳이? 창업이 처음이라면 더더욱 주변의 조언이나 충고에 더욱 위축되거나 포기하고 싶어 질지도 모른다. 계약할 거예요, 계약했어요 라는 말은 그 의미 자체가 다르다. ~ 할 거야 라는 말은 생각은 있지만, 실제로 하기 직전이다. ~ 했어요 라는 말은 무수한 생각과 고민과 검색을 지나고 나서 실전에서 했다는 말이다.
내가 그 말을 전할 때에도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것 또한 다르다. 어느 글에서 보았다. 배우기만 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라고.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이 기가 막히게 공감되었다. 이제 읽기만 하는 독서 대신 써보라는 말과 같다. 집어넣는 건 평생을 살면서 충분히 하지 않았나? 이제는 꺼내어볼 때다. 나만의 글을 쓰고 나만의 인생스토리를 풀어낼 때다. 그리고 내가 꿈꾸던 바가 있었다면 작게라도 한번 시작해 보는 거다.
네이버카페도 그림책모임도 유튜브 구독자도, 블로그도 한 명에서 시작했다. 시작이 있기에 그다음이 있다. 책방 창업이라는 과정도 책이라는 시작이 있고, 자기 계발서를 통해 무수한 시작들을 시도하고 따라 해보았다. 마음에서 실천과 행동으로 가기까지는 굉장한 거리감이 있다. 마음은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이유다. 너무 많은 생각 또한 실천을 더디게 만든다. JUST DO IT이라는 말처럼, 그저 해보는 거다. 처음부터 완벽함을 꿈꾸지 마라. 하면서 고치고 다듬어나가면 된다. 내가 가는 길이 누군가에게는 길이 된다. 그 길을 지금 만들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