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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Oct 03. 2024

책방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프롤로그

정말 오랜만에 빵집에 왔다. 적어도 6개월은 지난듯 하다.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나는 이곳을 쭈욱 드나들었다. 해가 쨍한 날에도 비가 후두두둑 쏟아지는 날에도. 책방은 늘 그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왔지만, 내가 비치해둔 책도, 빵도, 쿠키도 여전히 그대로다. 오전에 이미 라떼 한잔을 마신 이후라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나의 단골자리, 메인자리다. (지금은 졸업한) 아이의 학교가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자리, 그 자리가 명당이었다. 아이가 학교수업이 끝날때면 나에게 전화를 해 오던 자리.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며 달려오던 바로 그 자리. 그렇게 빵집은 나에게 추억의 공간이 되었다.


내가 구래역에 책방을 문연지도 벌써 일년이 지났다. 나에게 참으로 따듯했던 빵집처럼 책방도 그런 추억이 될 수 있을까? 일년동안 아주많은 자료를 제작하고 붙이러 다녔다. 작년 겨울은 참으로 추웠다. 매장 앞에 진열해두던 책들이 팔락팔락 페이지가 날아가기도 하고, 거센 바람에 훅 날려버리기도 했다. 바깥에 진열해두었는데 비가 와서 젖기도 하고, 벌레들이 자주 드나들기도 했다. 이제 또 다시 차가워지고 겨울이 다가온다. 오늘은 며칠 전에 온라인으로 주문한 매장앞 진열대가 도착했다. 생각보다 큰 덩치에 속으로 헉! 하며 받아들었다. 택배기사님이 아주 큰 포장박스를 책방 안 공간에 두고 갔다. 이미 많은것을 버리고 나눔했지만, 또 버리고 나눔할 것이 매일 생겨난다. 오늘 또하나의 (먼훗날 나눔하거나 버리게 될) 가구 하나를 들였다. 나는 이렇게 소비자에서 판매자, 생산자의 길로 조금씩 스며들었다. 


소비를 멈추고 생산하기 시작한다는 건 언뜻보면 이해되지 않는다.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사고 소비한다. 먹고 마시고 즐기며 시간을 보낸다. 월급을 받기위해 내 시간을 들여 일터에 나가고 돌아온다. 소비를 한다는 건 내가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을 비롯한 다른사람이 찍은 영상을 보는것, 텔레비전 속 광고를 보는 것, 홈쇼핑을 시청하는 것 이 모든것을 아우르고 포함한다.

하다못해 유투브시청을 하는 것도 소비하는 것에 속한다. 나역시 그랬다. 유투브라는 세계를 알기전까지는 소비하는 사람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러던 내가 유투브를 어떻게 시작하는 지 배우고 그 이후는 지금내가 주기적으로 찍어올리고 있는 그대로다. 매주 한두개씩을 올리는 것이 사실 만만치않은 작업이다. 후딱 찍기만 한다면 사실 편집이야 (전문가적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게 아니기에) 반나절 정도면 올릴 수 있다. 하지만 실상 '내가 찍기로 마음'먹기까지가 오래걸리는 것 같다. 해야지 의 구실을 만들어주는 것 또한 매일의 일정 속에 슬며시 집어넣어본다.


가게를 한 곳 방문하더라도 다음번에 이곳을 인터뷰해볼까?사진을 찍어 지역카페에 올려볼까?내가 운영하는 최고그림책방 네이버카페에 올려볼까?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긴다. 올해 초 시작한 소상공인홍보단 활동을 하면서 더욱 이런 생산적인 활동에 초점이 맞추어지기 시작했다. 가게의 사진을 찍고 진열된 상품을 찍어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해주는 일, 그일을 내가 지금 하고 있다.

어제도 한곳을 방문했다. 평소 구두매장이라고 알고있었는데 오랜만에 가서인지 속옷과 잠옷매장으로 변해있었다. 매장 앞에 진열되어있는 잠옷이 편안해보여서 으레그런듯 매장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점심때라 간단한 식사를 하고있던 주인이 나와 안내해주었다. (식사시간이라 죄송했어요!) 내몸에 맞는 속옷을 입는 건 사실 매우 중요하다. 나역시 책방에서 지역도서관등에서 성교육 강의를 다니곤 있지만, 아이들이 성장하는 동안, 그리고 실제로 우리 어른들도 자신의 몸에 딱 맞는 제대로된 속옷을 착용하는것이 그리 쉬운일은 아니다.


줄자를 가지고 자신의 가슴치수를 정확히 재고 알고있는것 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나역시 이전에 간호사로 일한 경력을 발판삼아 책방에 성교육들으러 오는 친구들의 성장을 체크하기위해 줄자를 준비해두고 있다. 속옷가게에서 보들보들한 원피스잠옷을 하나 고르고 둘째아이의 노랑색깔의 잠옷도 하나 골랐다. 계산하면서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책방을 운영한다는 이야기도 넌지시 건네어본다.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고 나오는것에서 끝이 아니라 다음 방문을 약속하기도 하고, 내가 책방을 운영하고 있으니 도움이 필요한때 오시라는 말도 빼먹지 않는다. 가게마다 매장마다 스타일이 다르듯이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을 때 받아들이는 스타일도 모두 제각각이다. 평소 책에 관심이 있는사람도 있고 없는 사람도 있다. 내가 건넨 하나의 명함이 불씨가 되어 책에 관한 관심을 불러올거라는 기대감으로 오늘도 사장님에게 명함 하나를 건넸다.


책방에서 글쓰기를 배우고, 책방에서 만난 그림책을 아이들에게 읽어준다. 아이들은 좋은 그림책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일상속에서 그림책을 나눈다. 이야기를 나눈다. 바쁘다면 바쁜 일상 중에 내가 빼먹지않고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빵집과 꽃집 등에 그림책을 주기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어제도 오전에 근무하는 직원과 함께 근처 빵집에 방문하여 커피도 사고, 매장 한켠에 마련되어있는 (이제는 아주 그림책진열코너로 자리잡았다!) 책진열코너에 그림책과 새로운 책으로 바꾸어주었다. 롤식빵을 전문으로 만들어팔고 있는 햇빵집 사장님의 한마디가 하루를 든든하게 만들었다.


감사해요. 덕분에 재미있는 그림책을 아이들과 보고 있어요!


책이 멀지않다는 건 이런걸 두고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우리주변에 책읽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또그렇지도 않다. 우리가 자주방문하는 곳에 책이 있다면, 재미있는 그림책이 놓여져있다면 누구라도 펼치치 않을까? 빵집에 빵그림책을 보고 아이들이 새로바뀐 그림책을 용케 알아차리고 들어와서 펼친다는 이야기는 이미 익숙하다.

책을 보고 책이 좋아진다. 책을 만지면서 책이 친해진다. 조그만 꼬마아이의 키만한 책 진열대가 그래서 참 좋다. 아이의 눈이 머무르는 곳에 귀여운 그림책을 둘수있어서 참 감사했다. 어제 하루의 시작은 그림책을 나누면서 주고받은 이야기속에서 정말 따듯했다. 그림책의 진심을 알아주고, 재미를 알아가고,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나는 참으로 행복감을 맛보았다.


내가 앉은 자리에서 시작하면 된다. 내가 자리한 책방에서 한명에서 시작하면 된다. 내가 걸어가는 이 길이 그림책의 재미를 따라오는 아이들과 부모가 함께 걸어가는 길의 시작이 되었으면 한다.


책방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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