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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정 Oct 07. 2024

병원을 그만두고 책방을 차렸다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들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해요.

<영어필사 100일의 기적> 중에서


가끔은 나를 위한 이기적인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이를 테면 나만을 위한 커피타임이 주된 나와의 약속시간이다. 커피를 다 마시지 않아도 온전히 내가 나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임을 알기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간호사로 일하던 시절, 감염의 위험으로 유니폼을 입고서 바깥외출이 허용되지 않던 시절이기도 하다. 그 당시 나는 커피 한잔의 시간이 그리웠던 걸까. 나와의 시간이 그리웠던 걸까. 아마 둘다였을 거다.


일반 회사였어도 마찬가지였겠지. 자유를 얻기에는 그만한 책임감도 따른다. 작은 책방을 경영하는 것도 이러할 진데, 규모가 커진 큰 대형회사의 대표와 회사를 끌어가는 주역들의 책임감은 오죽할까. 기업의 핵심가치가 대표와 직원은 물론, 그 가족들에게까지 전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작은 회사라고 그 가치가 작지 않다. 나에게도 처음 책방을 시작하던 그때의 마음가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책이 어려웠던 나에게 책이 재미로 다가오던 방법과 노하우를 전해주고 싶었다. 책방이 나에게 어쩌면 사명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간호사로만 평생 근무했었는데, 책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면서부터는 내가 이후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간호사로 평생 일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다다랐을 때 나의 작은 생각의 시작은 점점 책방의 현실화를 이루어나가기 시작했다. 내가 할 줄 아는 건 이것뿐이야!라는 확신으로 굳혀지면서 책과 사람에 집중하는 책방을 차리게 되는 준비를 시작했다.


책방을 준비하고 해야 할 것들은 점점 쌓여가기 시작했다. 어느 인스타에서 말한 것처럼 작은 회사일 수록 모든 일은 대표의 소임이자, 당연히 해야 할 것이라는 기정사실이 단번에 이해되었다. 한마디로 개고생을 어쩌면 오랜 기간 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24시간 책방을 생각하고 책방의 오늘과 어제와 내일을 생각해야만 하는 위치가 바로 나였다.

책을 출간하고 또 다른 책을 펴내면서 가끔 지방강의를 다니기도 했다. 어떤 가게나 상점에 방문했을 때 사람의 온기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만, 내가 비우는 시간이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시간도 점점 늘어갔다. 글도 쓰고 책도 꾸준히 내려고 했던 나와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나는 조금 더 바빠졌다. 무엇보다 나는 책방을 온전히 지키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에 제법 빠르게 도달했다.

병원에서의 일을 생각해 보면, 예전 김포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할 때 통증클리닉 과에서 근무한 적이 있었는데 마치과 의사가 수술스케줄에 주로 상주해 있기에 외래간호사인 나는 주로 자리를 지키거나 콜 하는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다양한 과를 경험해 보았지만, 통증클리닉은 경력과 나름의 전문지식을 습득하고 나면 꽤나 선망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실제로 외국에서는 마취간호사라는 PA 즉, 전문간호사로 꽤나 인정받고 실제로 대우도 좋은 직급으로 배정되기도 한다. (물론 간호사로 경력뿐만 아니라 꽤나 까다롭고 어려운 시험도 패스해야 한다)


여하튼 내가 근무한 곳에서의 일과는 평온했고, 내 할 일만 제대로 소화해내기만 하면 안정적인 부서였다. 다만 병원도 마찬가지로 토요일 근무까지 하고, 쉬는 휴일을 정하기가 어려웠기에 (나 혼자만 일하기에) 쉴 수 있는 날이 늘 아쉬웠다. 그때부터였을까. 자유로운 직업을 꿈꾸기 시작했고, 병원을 그만두면서 방문간호사로 한동안 육아와 직장, 그리고 살림을 병행했다. 한 곳에 안주하는 걸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처럼 외부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거나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는 듯하다. 나는 단연 후자였다고 말하고 싶다.


자유라는 건 책임도 따른다. 대표로 시작한 일이기에 어떻게든 끌고 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늘 함께 자리한다. 언젠가 한번 세무사가 책방에 방문한 적이 있었다. 책방을 운영하다 보면 소상공인 지원정책이나 컨설팅을 신청하는 기회나 기간도 만날 수가 있다. 소상공인 홈페이지에서 각종 공고가 올라오는데, 가게를 실제 운영하는 사장님들이 직접 찾아서 신청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는 않은 것 같다. 당장에 아르바이트비를 걱정하거나 거래처대금을 입금해야 하는 대출금 신청은 제법 경쟁률이 세지만, 솔직히 한가하게 홈페이지를 들락거릴 시간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나 역시 운영초반에는 이런저런 지원정책도 있다는 걸 알고, 지원해 볼까? 하는 공고도 눈에 뜨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책방 운영을 하고 매일의 매출과 월세를 고민해야 하고, 수업강의 클래스를 짜는 등 매일 쌓여가는 할 일들이 쌓여가다 보니 어느 순간 정보를 알아보는 것조차 사치가 된다는 걸 깨달았다. 은행업무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최고그림책방과 함께 출판사를 준비하면서부터는 서류관련한 업무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난생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솔직히 누구에게 물어볼 곳도 없이 검색하거나 찾아 물어가며 하나씩 과정을 넘어갔다.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특히 은행 방문하던 시간은 너무나 오래 걸렸고, 오랜 시간 대기를 하고 나면 당장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사업자로 된 통장을 만들고, 최근에는 영풍문고와도 계약을 성립하게 되었다.


누군가 이야기했다. 업무시간 외에는 통화를 안 했으면 한다는 이야기를 말이다. 물론 나 역시 업무시간 동안에는 책방에 걸려온 전화를 받고, 상담예약을 하지만 가정으로 돌아온 시간에는 웬만한 전화는 받지 않는다. 실제로 나에게 걸려온 전화 중에 광고나 스팸도 굉장히 많았다. 개업 초기에는 광고를 해준다는 전화가 생각보다 많이 걸려왔다. 네이버에 등록을 한 동시에 으레 그런 듯 광고회사들이 어떻게 알고 (상위에 검색노출이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최근 다녀온 전남여수에 위치한 다움북클래스 책방 대표님과도 짧은 시간이었지만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대표님과는 왠지 모를 동질감이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책을 가까이하고 좋아하는 것과 실제 책방을 운영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었지만, 책방 운영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는 것을 우리 둘은 눈빛을 보며 서로 말하고 있었다.

단 하나의 북토크를 열기 위해 수많은 밑작업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관객을 한 명이라도 더 모으기 위해서 매일 밤 고민을 하고 실제 행동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책 하나를 고르는 건 쉽지만 반품하는 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건 오래 걸리지 않는다. 100권의 책을 입고한다고 해도 (처음에는 물론 내 사비와 대출로 전부 채워야 하지만) 다 팔리는 것도 아니고, 반품을 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럼에도 나와 대표의 생각이 동했던 건 우리 모두 책을 사랑하고 책을 알리고 싶고, 책과 함께하는 삶을 이루고자 하는 강한 열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관한 작은 관심이 행동을 불러일으켰고, 그런 관심과 행동으로 나와 주변의 이웃들에게, 김포와 전남여수 지역에 책이라는 메시지와 향기가 아주 느리지만 잔잔히 퍼지고 있다.


책과 사람이라는 가장 중요한 알맹이만 있다면, 책방이라는 존재는 건실하게 지역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책방의 존재를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책방에서 책을 전하고, 책을 읽어주고, 성교육도 하고 글쓰기도 시작하는 다이내믹하고 시대의 변화를 이끄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오늘도 책방을 생각하고, 어떤 아이템이 너와 나에게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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