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거지 좀 알아서 해주면 안 돼?

엄마 간호사의 성장일기

by 정희정

바쁜 아침. 오늘도 부랴부랴 어질러진 거실을 정리한다. 나뒹굴어 다니는 공들, 장난감들.. 어제 딸아이가 가지고 놀던 흔적이다. 아침 분유를 200 cc 다 먹고 졸린지 눈을 감았던 떴다 하는 아이. 침대에서 토닥토닥해주고 나는 다시 거실을 정리한다. 그 사이 남편은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쏴아. 쏴아. 하는 샤워기 소리가 들린다. 나는 아이들이 깰까 고양이 세수만 조용히 안방에서 하고 나온다. 주방에는 어제저녁에 먹은 것들로 식탁이 분주하다. 어제 월급날이라고 남편이 치킨을 시켜먹으라고 했지? 먹다 남은 치킨박스가 식탁에 고스란히 자리한다. 어제저녁부터 먹고 씻어놓지 않은 젖병들이 있다. 요즘 집에서 부쩍 식사를 하면서 가끔 시켜먹는 횟수가 잦아졌다. 주말에는 찜닭을 시켰는데 먹다 남긴 찜닭을 어제 데워먹었다. 매콤하면서 맛이 좋았다. 사실 나는 떡을 좋아하진 않는데, 찜닭에 들어간 꿀떡은 쫄깃쫄깃하면서 맛이 일품이었다.


그렇게 저녁식사를 끝내고 설거지라도 해주면 좋으련만.... "잘 먹었어~"라는 말을 하고 늘 있는 일처럼 남편은 자연스럽게 컴퓨터 방으로 향했다. 큰소리로 부르지 않으면 소리가 안 들리는 방. 그곳에서 남편은 동영상도 보고 영화도 보고.. 귀도 파고 손톱도 깎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진다. 복도 끝 방이라 큰 소리로 부르지 않으면 소리가 잘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남편은 그 방은 참 좋아한다. 남편의 동굴인 것일까? 나는 오붓한 저녁시간을 원한다. 저녁시간이 있는 시간을 원한다. 아이들과 남편과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모두 식탁에 앉는다. 따끈한 밥을 뜨고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찌개와 각종 반찬들이 자리한다. 맛있는 저녁식사를 오순도순 이야기하며 맛있게 먹는다. 함께 자리를 정리하고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이들은 거실에서 아빠와 다 같이 재미있게 논다. 티브이도 보고 티브이에 나오는 춤도 따라 한다. 요즘 부쩍 연예인에 관심이 많아진 10살 첫째 딸아이는 춤도 좋아하고 노래도 좋아한다. 재미있는 개그 프로그램도 좋아한다. 그런 딸아이의 관심을 충분히 이끌어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내가 바라고 원하는 저녁시간의 모습은 없다. 자신의 밥만 딱 먹고 둘째 아이 먹는 것을 조금 챙겨준다. 식사를 끝내고 바로 자신의 방으로 가버리는 남편. 매일의 일상이다. 컴퓨터 방에 꿀이라도 발라놓을 것일까? 밥을 제외한 모든 행동은 컴퓨터 방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그런 컴퓨터 방을 몹시도 싫어한다. 진저리가 날 정도로 컴퓨터가 꼴 보기 싫다. 창 밖으로 갖다 버리고 싶은 생각도 한 적이 있다. 남편이 그렇게 컴퓨터방으로 들어가고 나면 나는 늘 그렇듯 아이들과 덩그러니 거실에 남는다. 퇴근하고 바쁘게 아이들의 저녁을 챙기고 나면 나 역시 기운이 쭈욱 빠진다. 따듯한 엄마의 밥상도 그립다. 엄마가 보고 싶다.


첫째 아이는 그런 생활을 아는지, 그리고 아빠가 늘 컴퓨터를 끼고 사는 걸 이미 간파했다. 그래서 오순도순 함께 저녁시간을 즐겼던 할머니 집에서의 추억을 떠올린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고 말한다. 한여름날 여름 방학 때 나와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서 며칠을 보냈다. 방학 기간 동안 할머니 집에서 밥도 먹고 거실에서 다 같이 뒹굴며 드라마도 보았다. 할머니와 함께 보는 드라마는 특히 더 재미있는 것 같다. 저녁때 쯤되면 할아버지 맛있는 통닭 한 마리를 사 오신다. 할아버지 언제 와? 할아버지 언제 와? 하며 할아버지도 기다리고 통닭도

기다린다. 할아버지의 통닭은 늘 반갑다.


"하영아~ 통닭 먹자. 할아버지가 통닭 사 왔다." 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 주위로 몰려온다. 첫째 아이도 우와~ 하며 할아버지와 통닭을 반긴다. 둘째 아이도 할아버지 왔다고 기뻐하며 달려간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맛있게 닭다리를 뜯고 시원한 콜라도 마시며 아이들은 즐거워한다. 그런 오붓한 가족의 시간이 그리웠다보다. 아이도 가족의 사랑을 느낀다.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고 그리워한다.


지금의 우리 집의 모습과는 너무도 다르다. 밥만 먹고 딱 일어나는 아빠. 밥 먹은 것을 치고 둘째 아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는 엄마. 첫째 아이의 빈 공간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그렇게 아이는 핸드폰 속 유튜브를 보고, 티브이를 보면서 그 허전함을 달랜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차를 운전하는 일이 많아 늘 피곤해하는 엄마 곁에서 딸아이는 무척이나 외로웠을 것이다. 하루 종일 엄마 아빠를 기다렸는데 엄마 아빠는 저녁시간이 되어도 내 옆에서 내 이야기를 들어주질 않는다. 아이의 마음을 모른 척 해왔다. 가정에 소홀하고 자신만의 시간과 방을 소중히 여기는 남편은 원망만 하면서 내 아이의 눈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나 힘들다고 아이 힘든 걸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