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다시 일을 시작할 때
나에게는 아이돌보미 선생님이 있다. 나의 두 아이를 오후 시간 내내 돌봐주신다. 늦게 퇴근하는 나를 대신해 아이의 머리를 감겨주고 식사를 챙겨주신다. 나는 나의 아이들을 돌봐주시는 조주은 선생님을 아이 돌봄 매니저라고 칭하고 싶다.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언제나 늘 나의 곁에 계신다. 나의 아이들을 지켜주신다. 엄마인 나를 대신해 나의 아이들은 조주은 선생님을 잘 따른다.
아이 돌봄 매니저님은 나의 꿈을 함께 그려나가는 선생님이다. 나는 매일 아침 일찍 회사로 출근한다. 나는 방문간호사다. 매일 방문을 하며 각 가정을 돌아다닌다. 양압기 사용 교육을 하고 집에서 방문간호가 필요한 어르신 댁에 찾아가 간호업무를 수행한다. 이런 나의 일을 지지해주는 건 다름 아닌 돌보미 선생님이다. 선생님의 인정은 나를 춤추게 한다. 선생님의 지지와 격려로 나는 여기까지 왔다.
깜깜한 저녁, 늦어지는 퇴근시간이다. 차는 밀려서 아주 조금씩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아이들 생각이 나고, 퇴근시간이 가까워져 조바심이 난다. 선생님이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잠시 정차한 틈을 타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다. “선생님, 차가 밀려 좀 늦어질 것 같아요. 죄송해요.” 선생님의 답변은 “괜찮아요~. 천천히 와요. ” 그 말에 나는 안심한다. 조바심 나던 나의 마음도 진정이 된다. 이렇듯 예상치 못하게 내가 신청한 시간보다 늦게 퇴근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나도 미안하고 퇴근시간을 지켜주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나의 마음을 알고 읽어주고 안심시켜 주시는 선생님의 마음이 참 예쁘고 고맙다.
엄마에게 꿈은 무엇일까? 집안에서 요리를 잘하고 살림을 잘하는 엄마? 하지만 아쉽게도 나는 그렇지 못하다. 난 그렇지 않다는 걸 독박 육아를 경험하면서 알았다. 집에 있어도 짜증을 내고 아이들에게 맛있는 요리를 매번 해주지 못했다. 나의 끼니를 챙겨 먹기에도 바쁜 나날이었다. 그러던 내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병원 간호사로 몇 개월 근무하면서 다행히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에 잘 적응해주었다.
아이도 적응을 했으니 이젠 내 차례다. 이전에 다니던 방문간호 회사에 다시 입사를 하게 되었다. 병원보다는 시간적인 자유로움이 있어 나에게는 적합한 일이었다. 나의 아이들을 돌보고 주말에 쉬는 점이 좋았다. 다시 일을 시작하면서 걱정도 많이 되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그런 나의 옆에 돌보미 선생님이 있었다. 간호사로 일하면서 꼭 필요한 일이라고 나의 직업에 대해, 그리고 나의 일에 대해 긍정해주고 믿어주시는 선생님이 있어 차근차근 한 걸음씩 걸어왔다. 아마 선생님의 지원과 믿음이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 있었을까? 엄마들은 누군가 믿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나의 아이들을 믿고 맡기는 돌보미 선생님은 최고의 지원군이다.
깜깜한 새벽. 나는 조바심이 난다. 걱정이 된다. 어떡하지? 도대체 어떡해야 하지? 금요일부터 둘째 아이의 어깨부터 팔까지 볼록볼록 터질 것처럼 생긴 수포가 팔 전체를 뒤덮었다. 저녁 시간 아이에게 부랴부랴 옷을 입혀 집 앞 병원으로 향했다. 이런 피부 증상은 처음이었고 상태가 꽤 심각해 보였다. 원장님은 수두를 앓은 적이 있냐고 물었다. 수두를 앓은 적이 없었는데, 대상포진의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덜컥 겁이 났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없지만, 대상포진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약을 먹고 가라앉지 않으면 큰 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피부약과 연고를 받아와서 그 날 저녁 걱정으로 아이의 팔을 어루만졌다.
그다음 날은 토요일이었다. 약을 몇 차례 먹였는데도 도통 가라앉지 않았다. 오히려 불긋불긋 더 심해지고 터질 것처럼 탱탱해졌다. 나의 마음은 다시 조바심이 났고 휘몰아쳤다. 다른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토요일이라 대기시간이 길지 않은 곳을 찾아 소아과 병원에 갔다. 원장님은 접촉성 피부염 같다고 하시며 약을 처방해주었다. 진짜 그런가? 약을 처방받아 와서 다시 먹였다. 주말 동안 나의 마음은 오락가락했다. 아이의 팔을 씻기고 옷을 입힐 때마다 걱정이 되었다.
일요일 밤은 아이가 유독 보채는 것 같았다. 나도 피부 상태가 걱정이 되어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스마트폰으로 피부 증상을 검색하고 나의 아이와 비슷한 경우가 있는지 찾아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아이 아빠도 말한 것처럼 대상포진의 증상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새벽 2시.. 나는 돌보미 선생님에게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정말 급하고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너무 걱정이 되는 마음에 아이 혼자 데리고 일산에 있는 대학병원에 데리고 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선생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선생님에게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함께 병원에 같이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다.
거의 뜬 눈으로 지낸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았다. 선생님이 올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대학병원에 부랴부랴 전화로 예약을 하고 선생님을 기다리며 아이를 준비시켰다. 아이에게 옷을 입히고 팔을 볼 때마다 마음이 찢어졌다. 말은 못 하고 얼마나 아플까?
선생님과 함께 일산의 대학병원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에 바깥을 볼 여유조차 부릴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병원까지 함께 동행해주셔서 안심이 되고 아이와 함께 병원에 갈 수 있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대기시간은 길지 않았고 곧바로 진료를 보러들어갔다. 일산백병원은 소아 피부과가 있어서 아이의 피부에 대해 정확히 진단을 내려주셨다. 아이의 팔 상태를 보자마자 대상포진이라고 진단을 내렸다. 의사 선생님은 생리식염수와 함께 소독을 하고 며칠 지켜보면서 가라앉는지 살펴보라고 말씀하셨다. 아이에게 5분이라는 시간은 꽤 긴 시간이었다. 핑크퐁을 보여주며 생리식염수를 적신 거즈를 팔 전체에 감았다. 그렇게 무사히 진료를 보고 정확한 진단을 받고 치료를 했다. 생각보다 대기 없이 진료를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을 약을 먹고 연고를 바르며 매일매일 소독을 했다. 아이의 팔을 하루 이틀이 지나니 터질 것처럼 팽팽했던 수포는 점점 가라앉았고 흔적만 남게 되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재생크림 연고를 매일 같이 발라주고 어느덧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피부는 깨끗해졌다. 성인에게 대상포진은 무서운 병이다. 신경을 타고 지나가는 통증으로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어린 아기들도 드물긴 하지만 수두 바이러스와 같은 바이러스가 어떤 이유 때문인 지는 모르겠지만 대상포진을 일으키기도 한다. 다행히 어린 아기들은 성인처럼 극심한 통증까지는 유발하지 않는다. 다만 부풀어 오른 피부를 만지고 터뜨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대상포진이란 병을 한 차례 겪으면서 나와 아이는, 그리고 선생님은 한 뼘 더 성장했다.
내가 그때 새벽에 필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의 걱정과 고민에 안절부절못하던 그때, 누군가 곁에 있어주기를 바란 마음이 아니었을까? 이 세상에 문득 나 혼자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은 엄마에게 달려있다. 그 막중한 책임감에 한 번씩 자신감을 읽어갈 때가 있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인 나는 더 강해져야 했다. 하지만 엄마도 사람인지라 실수를 하고 엄마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안다. 엄마도 걱정을 많이 하고 나의 아이를 위해 무엇이 최선인지 고민하지만 최선의 결정을 할 뿐이다.
그 곁에 아이돌보미 선생님은 나의 위안이었고 조언자였다. 옆에만 있어주어도, 같이 고민해주고 아이의 방향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감사한지 새삼 깨닫게 되는 하루이다.
어린이집을 보낼 때에도 몇 군데를 상담해보고 고민하고 최선의 곳을 선택한다. 그 몫이 엄마의 몫이다. 나 혼자가 아닌, 함께 머리 맞대고 아이에게 최선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이돌보미 선생님들이 있어 나는 참 감사하고 든든하다. 선생님들은 이런 내 마음을 알겠지? 아이들이 올바르게 커 나갈 수 있는 건, 엄마 아빠와 아이돌보미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이다. 나의 꿈을 그리고 아이의 꿈을 그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돌봐주시는 이 땅의 모든 돌보미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덕분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는 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