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롱 안에 여자 머리가!!!

살면서 가장 놀랐던 순간

by 날자 이조영

"내 옷이 어데 있지?"


고등학교 때였나?

친구와 약속이 있어 학교에서 오자마자 옷을 갈아입어야 했다. 분명히 세탁기에 넣어서 빨았는데 옷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 산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꼭 그 옷을 입고 싶었다.

내 방을 죄다 뒤졌지만 옷은 없었다. 집에 아무도 없어서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척 봐도 여자 건데 남동생들 옷 속에 섞일 리도 없고. 섞였다면 엄마 옷이겠지.

안방으로 건너가자 9자 정도 되는 장롱과 5단 서랍장이 보였다. 서랍부터 뒤지기 시작했다. 칸마다 구석구석 훑었지만 비슷하게 생긴 것도 없다.

다음엔 장롱. 삼단 장롱은 이불과 겨울옷을 넣어두는 좌측, 우측 외에 자주 입는 옷을 넣어둔 가운데 옷장이 있었다. 장롱 서랍부터 옷걸이에 걸린 옷들까지 뒤졌으나 내 옷은 보이지 않았다.


'저건 뭐꼬?'


옷걸이에 걸어둔 옷들 아래로 구석에 둥그런 파란 바구니가 살짝 보였다. 늦은 오후, 방안이 어둑해서 장롱 안은 더 어두침침했다.


'바구니가 마지막인데...'


바구니에도 없으면 다른 옷을 입을 생각이었다. 약속 시간에 늦을 수도 있으니. 구석에 처박아 놓은 바구니를 끌어다 앞에 놓았다. 잡다한 뭔가가 잔뜩 들어 있다. 대충 손으로 밀친 뒤 그 밑에 있는 걸 잡는 순간. 물컹! 피부로 느껴지는 괴이한 촉감에 소름이 쫙 끼쳤다.


'뭐, 뭐야?'


물컹한 걸 쑥 꺼내자마자.


"으아아아악!!!"


쿵! 혼비백산한 나는 뒤로 나가떨어지며 비명을 질렀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건 사, 사람 머리!!!!!


'저게 와 우리 집 안방 장롱에 있노?!'


덥수룩한 까만 머리칼을 보자 공포에 질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 엄마아아아-'


엉금엉금 기어 거실로 나왔다. 반쯤 정신이 나가서 얼굴에는 식은땀이 줄줄~~ 심장은 너무 뛰어서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까무러치게 놀란다는 게 이런 거구나.

마음은 밖으로 줄행랑을 치고 싶은데 거실로 기어 나오는 데만도 에너지를 전부 쏟은 것 같았다. 공포물에서 놀란 사람들이 바닥에 주저앉아 사시나무 떨듯 떠는 모습이 이해되었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 혼자 주저앉아서 열린 안방을 보고 있는 그 시간이 내겐 공포 그 자체였다.

적막한 집안, 서늘한 공기, 어디선가 토막살인범이 날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은 불길한 느낌.


'혹시 저 머리가...!'


어, 엄마?!?!?!

까맣고 긴 머리를 할 사람이 엄마밖에 더 있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피가 없든데.'


그렇다. 토막 난 머리에 빨간 피가 없었다.

스릴러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좀 전의 상황이 머릿속에서 리플레이되기 시작했다.


'사람 머리가 바구니 안에 깊숙이 들어 있었고, 내가 손으로 잡은 건 머리카락... 너무 놀라서 얼굴 확인할 정신도 없었지. 사람 머리 맞는데 희한타.'


이성적으로 하나씩 생각하는 동안 점점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제정신이 돌아오니 뻣뻣하게 굳었던 몸도 풀렸다. 문득 사람 머리의 정체가 궁금해진 나는 굳은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지 뭐.'


불현듯 용기가 치솟아 안방을 향해 돌진했다. 셜록홈즈라도 된 양 토막 난 머리의 정체를 내 손으로 밝히고 싶었다.

공포의 안방으로 들어가자 장롱 문은 활짝 열려 있고, 바닥에는 까만 머리카락만 보이는 머리가 뒹굴고 있고.


'무, 무서버.ㅠ'


토막 난 머리를 만지기도 두렵고, 얼굴 확인하는 건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이대로 나갔다가 가족들이 집에 돌아오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수습은 해놔야지...


'크흑... 어뜨케...'


살금살금 다가가 손가락 끝으로 머리카락을 살짝 쥐고 홱 뒤집었다.


'엥?'


반들반들한 피부에 눈이 땡그란 여자다. 눈도 못 감고 죽... 은 사람 말고 마. 네. 킹.


"와, 씨이!"


허탈과 안도의 한숨이 쏟아지며 나는 마네킹 언니의 머리통을 부여잡았다.


"언냐, 놀랬자나! 와 우리 집 장롱 속에 처박혀 있는 거냐고!"





그날 저녁, 가족들과 저녁을 먹으며 혼자 공포물을 찍었던 얘길 해주었다.


"엄마, 장롱 안에 바구니 있재?"

"어. 와?"

"아까 내 옷 찾느라 바구니 뒤지다가 기절초풍할 뻔했다."

"와, 와?"

"사람 머리 있드만!"

"아... 푸하하하!"


엄마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빠랑 동생들은 무슨 소린지 궁금한 눈치였다.


"사람 머리라니 무슨 소리고?"

"아이고, 예전에 미용실 할 때 파마 연습하던 마네킹~ 바구니에 넣어 놓고는 깜박 잊어버리고 있었거든요. 호호호호."


엄마가 미용실을 한 건 내가 국민학교 다닐 때이니 4, 5년 전이었다. 집에서 엄마가 마네킹을 꺼낸 적이 없어서 장롱 안에 뒀을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그걸 아직도 안 버렸드나?"

"다시 연습해야지요. 배운 게 아깝잖아요."


엄마는 정말로 파마 연습을 다시 시작했고, 외할머니와 이모들에게 직접 파마를 해주기도 했다. 집안에 풍기던 독한 파마액 냄새, 1년은 거뜬할 것 같은 빠글빠글한 머리. 가끔 신문지를 가운데만 뻥 뚫어 뒤집어 씌우고는 가위로 가족들 머리를 잘라주기도 하고, 내 나이 서른이 넘어서는 손녀 머리도 뽀글뽀글하게 해 놓았다.

아니, 손녀 머리뿐인가. 손재주가 좋은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머리를 요렇게 저렇게 잘도 만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를 앞에 앉혀놓고 하나로 땋았다가 풀었다가, 그 어려운 디스코 머리도 쓱쓱 땋아 중간중간에 색색별 고무줄도 해주었다. 엄마가 내 머리를 만질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한다. 엄마의 손에 팔색조처럼 변신하던 머리가 신기하기도 하고, 엄마의 재바른 손길이 머리통을 스칠 때마다 사랑받는 기분이었다.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예쁘다고 칭찬해주는 소리에도 으쓱했다.


"영아 엄마는 애 머리로 별 요사를 다 떨어놨네."

"하여간 영아 엄마는 손재주 좋데이. 음식도 잘하고 뜨개질도 잘하고."

"니는 좋겠다. 엄마가 매일 예쁘게 머리도 해주고."


나는 뭐든 잘하는 엄마가 자랑스러웠다.




"야, 니는 간도 세다. 토막 난 머린 줄 알았다면서 확인할 생각을 하나?"


엄마는 내가 너무 겁이 없다 싶었던 모양이다. 하긴 지나서 생각해 보니 아무도 없는 집에서 살인 현장을 혼자 확인하는 꼴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그런 장면 있지 않던가. 쓸데없이 혼자 현장에 가는 무모한 주인공.

저게 말이 되냐고, 작가를 욕했던 나였다.

나는 간이 세지도 않고 실제 겁도 많아서 공포물을 보지 못한다. 스릴러를 좋아하긴 하지만, 마니아는 아니다. 그러니 아무리 무서운 장면을 본들 그날 안방 장롱 안에서 본 사람 머리만큼은 아니었다. 공포물에서 마네킹이 왜 그리 많이 나오나 했는데 효과 만점이라는 걸 직접 체험해 보니 알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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