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에 돌 싸가 던질라꼬요?

최루탄의 매운맛

by 날자 이조영
인생의 최루탄을 피하는 방법


1987년 5월 18일.

대학 새내기였던 나는 다음날 첫 MT를 앞두고 있었다.

조에서 반찬 담당을 맡은 친구와 함께 일찌감치 하교를 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며 내일 무슨 반찬을 해갈지 상의했다.


“김치 담가 가야겄네.”

“니 김치도 담글 줄 아나?”

“하모. 쉽다.”


김치는 엄마가 해주는 걸로만 알고 있던 나는 친구가 갑자기 존경스러워졌다.

시장을 봐서 친구 자취방에 가기로 했다.

학교 입구에 있는 버스정류장에 서 있는데 트럭 한 대가 들어온다.

그런데 좌회전을 하던 트럭에서 초록색 망 하나가 뚝 떨어진다. 트럭 뒤에 가득 실린 배추 망 중 하나였다.

친구와 나는 득달같이 달려가 떨어진 망을 주워 들었다. 안에는 싱싱한 배추 세 포기가 들어 있었다.



“아싸, 횡재했다이!”


트럭이 이미 가버려서 우리는 득템 한 배추를 들고서 무척 기뻐했다.

다시 버스정류장으로 건너가려니 학교 쪽에서 내려오던 학생 무리가 앞을 지나가는 중이었다.

배추에 정신이 팔려 있던 우리는 다들 줄 맞춰 어디 가는지 어리둥절했다.


“뭐꼬? 오늘 뭔 일 있나?”

“모린다. 늦겠다. 퍼뜩 가자.”


줄이 너무 길어서 어쩔 수 없이 그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좀 지나갈께예.”

“지송, 지송.”


슬금슬금 줄 사이로 지나가는데 누군가가 기막힌 정보를 알려주었다.


“오늘 학교까정 버스 안 들어옵니더. 버스 탈라모 큰길까지 나가야 되니까네 우리랑 같이 가입시더.”

“오~ 그래예? 와 안 들어오는데예? 뭔 일 있어예?”

“고마 가보마 압니더-.”


아무것도 모르던 우리는 어느새 줄 한복판에 서서 무리와 함께 큰길로 진입했다.

5분쯤 걸어갔을까.

앞에서 걸어가던 남학생이 휙 돌아본다. 우리가 들고 있던 배추가 신기했던지 한마디 했다.


“배추에 돌 싸가 던질라꼬요?”


학생들이 ‘와하 하하하!’ 배꼽을 잡는다.

친구와 나는 영문도 모르고 그냥 따라 웃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은 시내로 나가는 길이 하나뿐이었다. 학교에서 10분쯤 걸어 내려가면 자취촌이 있고, 그곳을 또 10분 정도 걸어가야 길들이 나온다.

친구 자취집으로 가려면 족히 20분은 걸어서 버스를 타야 했다.

10분쯤 걸어서 자취촌이 있는 곳까지 왔을 때였다.

이제 슬슬 무리에서 빠져나가려고 폼을 잡는 순간.

방금까지 따뜻한 물결처럼 흘러왔던 무리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별안간 비장감이 감돈다.


‘어어, 와 이라노?’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라 긴장하는데, 선두에서 시작된 노래가 금세 온 무리에 퍼졌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둥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 '임을 위한 행진곡' 중에서 -


그러더니 전방에서 ‘따다다다다!’, 마치 총을 쏘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던 무리가 일제히 흩어졌고, 그때야 비로소 가로막혔던 앞이 탁 트였다.



"헉!"

“으아아아악!”


이미 먼저 와 있던 시위대 선배들과 맞은편에 진을 치고 있는 전경대가 대치 상태였다.

화염병이 날아가고, 깨진 보도블록이 날아가는 아수라장의 현장 한복판에 친구와 나는 덩그러니 배추를 들고 서 있었다.


'아까 가보면 안다고 했던 놈 어데 갔노!'


친구와 나는 처음 맞아보는 최루탄-일명 지랄탄-에 혼비백산한 채 무작정 자취촌으로 뛰었다. 자취촌까지 가려면 공터를 또 10분가량 달려야 했다.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뛰는데 자취촌 쪽에서 구경하던 학생들이 흐릿하게 보였다.

30kg대를 유지하는 내 친구는 엄청 달리기를 잘했다. 하지만 나는 달리기라면 젬병이었다. 격차가 자꾸 벌어지니 같이 들고 있던 배추 망을 놓쳐버렸다.

흙바닥을 뒹구는 배추를 그냥 버리고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친구가 냅다 다시 집어 들더니 그 작은 체구로 휘청대며 뛰는 것이다.


‘어휴, 망할 가시나!’


하는 수 없이 배추 망을 같이 들고 달렸다.


“따다다, 따다다다, 따다다다다!”


도망치는 사람이 우리만 있었던 게 아닌 모양이다.

갑자기 구경하고 있던 학생들이 바퀴벌레처럼 순식간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는 계속 최루탄을 쏘아대지, 눈물 때문에 앞은 잘 안 보이지, 얼굴은 따가워 미치겠지, 배추까지 들고뛰느라 아주 고역이었다.

다들 도망가느라 바쁜데 딱 한 사람!

덩치가 제법 있는 남학생 한 명이 떡 버티고 서 있다.


‘점마는 뭐꼬! 또라이가?’


점점 가까워지자 남학생이 소리쳤다.


“가시나들아! 와 거기서 오노!”


우리 과 남학생이었다. 후다닥 달려온 녀석이 우리가 들고 있던 배추 망을 뺏듯이 가져가더니 자취촌 쪽으로 휙 몸을 돌렸다.


“무조건 뛰래이!”

“어데로 가노?!”

“선배 집 있다! 거기 가서 숨자!”


뒷골이 선뜩한 게 아무래도 누군가 쫓아오는 느낌이었다. 무서워서 돌아볼 수도 없었다.

남학생이 맨 앞에서 뛰고, 그다음에 친구가, 달리기를 제일 못하는 나는 점점 거리가 벌어졌다.

살면서 그렇게 죽기 살기로 뛰어본 적은 처음이었다. 친구들을 놓치면 나는 꼼짝없이 잡혀갈 것만 같았다.


'이기 무신 날벼락이고... 버스 안 들어온다기에 같이 온 것 뿐이구마는!'


잡혀가는 것보다 더 무서운 건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내가 데모에 휩쓸릴까 봐 동아리도 못 하게 하셨던 분이다.

덕분에 나는 2학년 때도 기수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아리 활동을 못해봤다. 그건 두고두고 아쉽다.

골목골목을 돌아 선배 집으로 간신히 도망쳤다. 마침 집에 있던 우리 과 복학생 선배를 보자, 기가 막혔다.

술만 먹으면 개가 되시는, 내가 제일 싫어하던 선배였다.

덕분에 배추는 맛있는 김치가 되어 다음날 우리 조원들의 뱃속으로 들어갔지만. 물론, 그게 최루탄 맞은 배추라는 건 비밀!





살다 보면 원치 않는 상황에 휩쓸릴 때가 있다.

마침 필요하던 배추를 생각지도 못하게 득템 할 때도 있고, 최악의 위기 상황에서 나를 도와주는 친구를 만나기도 한다.

그리고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피난처가 되는 웃픈 현실과 맞닥뜨리기도 한다.

돌이켜 보니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만 크게 느껴져서 득템 할 기회가 와도 모르고 지나치고, 도움을 주려는 친구의 손을 밀쳐내고,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아예 외면해 버리는 일들도 많았다.

내게 온 숱한 기회들을 놓치는 바람에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그때마다 상황에서 한 발 떨어져 시야를 넓혔더라면 어땠을까?

부지기수로 쏟아지던 인생의 최루탄을 피할 수 있었으리라.

설령 최루탄을 맞아서 눈물 콧물 흘리느라 앞이 잘 안 보이더라도 걱정하지 말기를.

비록 꼴찌로 달릴지언정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않으면 되니까.


오늘이 마침 5월 18일.
그날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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