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첫 미팅

신이시여!

by 날자 이조영

‘내는 미팅이랑 소개팅 안 한다이.’

대학에 입학하면서 결심했다. 인위적인 만남은 지양한다고!

자고로 우연 세 번쯤은 자연스럽게 생겨야 ‘운명’ 또는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같은 과 남학생들도 NO!

고등학생 티를 간신히 벗어난 녀석들이랑 무슨 사랑이람.

과 남학생들과는 그저 술친구나 하면서 시시껄렁한 개똥철학을 읊어대는 걸로 족했다.

삼한사온의, 변덕이 죽 끓듯 하던 3월을 지나 햇살 따사롭고 아카시아 내음 진하게 풍기던 4월이 되자, 여기저기서 미팅 얘기가 나왔다.

대학생 하면 미팅.

신입생 때는 '같은 학교 다른 과', 혹은 '다른 학교 같은 과'의 단체미팅이 통과의례나 되듯 이뤄졌다.

낯선 이들과 한 자리에 바글바글 앉아 있는 모습만 생각해도, 어후!

물론, 과팅이 아닌 다른 케이스도 있었다.

어느 날은 늘 뭉쳐 다니던 나와 다섯 명의 친구들에게도 요청이 들어왔다.


“느그 미팅 좀 해라.”


같은 과 남사친이 하는 말에 나는 냉큼 손사래를 쳤다.


“내는 그딴 거 안 한다이.”

“내가 주선한 기다. 같이 자취하는 집 애들이다. 다들 착하고 좋다!”

됐거덩!”


남사친의 청을 거절한 뒤 며칠이 지난 미팅 날.

강의가 끝나고 친구들이 미팅에 가는 바람에 혼자 남은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뒤에서 타다닥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가 내 팔을 잡았다.


“부탁 좀 들어도.”


미팅 주선자인 남사친이었다.

아무래도 미팅 얘기일 것 같아 인상부터 썼다.


“뭐꼬?”

“한 명이 펑크 났다. 대타로 쫌 가도고.”

“미칬나!”


정식으로도 안 가는데 대타?!

눈꼬리가 휘어지도록 녀석을 째려봤다.


“제발 부탁이다. 밥 사주께. 술 사주께. 딱 한 번만!”

“지랄.”


밥과 술에 마음이 약해진 건 절대 아니다.

녀석의 표정이 너어무우나 간절해서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미안하다. 부탁할 사람이 니 밖에 없다.”

“하아……. 그라모 어쩔 수 없지. 어데고?”




녀석과 학교 근처에 있는 카페를 찾아 들어갔을 때.

미리 와 있던 여학생들과 남학생들이 마주 보고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내 친구들 말고도 같은 과 여학생 몇 명이 더 있었는데, 누가 펑크를 냈는지는 모르는 상황.

묘한 정적의 현장을 목격한 나는 풋풋……한 게 아니라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으아아, 이 분위기 우짤 긴데?’


진저리를 친 나는 도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끄트머리에 슬며시 끼어 앉았다.


'어디 보자. 어느 놈이 괘안은고?’

늦게 간 데다 썩 내키지 않은 미팅 자리여서 떨떠름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남학생들을 쭉 훑었다.

각지에서 모인 자취생들.

대충 봐도 특별히 잘생김, 세련, 지적, 개성, 그런 거랑은 거리가 멀었다.

심장에 무리가 가는 남학생이 없다는 걸 아쉬워하며 차례차례 시선이 옮겨가던 그때.

흠칫!

한 놈이 눈에 쏙 들어왔다.


‘헉! 점마만 아니모 된다이.’


왠지 나랑 파트너가 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불현듯 그런 생각이 뇌리에 스치며 긴장감이 등골을 싹 타고 올라왔다.


“느그는 눈 감고, 느그는 소지품 하나씩 꺼내라.”

주선한 녀석의 말에 남학생들은 진지한 얼굴로 눈을 꼭 감았고, 여학생들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하나씩 꺼내 조용히 테이블 위에 놓았다.

머리 고무줄, 손수건, 필통, 열쇠고리, 수첩, 손목시계 등.

나도 대충 하나를 꺼내서 다른 소지품들 틈에 슬쩍 끼워놓았다.


“인자 눈 떠라. 가위바위보 해가 이기는 사람부터 하나씩 골라봐라.”


남학생들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가위바위보 준비를 했다.

누가 볼세라 옆으로 돌아앉아서 맞잡은 손을 꼬아 구멍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손등을 쭉 밀어서 주름을 보고 가늠하기도 했다.

시험 칠 때 답 고르는 것보다 더 신중해 보였다.

단 한 명만 빼고. 아무 생각 없어 뵈는 그놈.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


‘내 꺼만 집지 마라! 제발, 제발!’


가위바위보를 이긴 순으로 소지품을 하나씩 집어갈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하나같이 내 것만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데…….

드디어 그놈의 순서가 되었을 때 나도 모르게 속으로 외쳤다.


'신이시여!'


파트너끼리 흩어져 앉은 테이블.

낮은 조명 속에서 저주받을 손가락으로 내 소지품을 홀라당 집어간 그놈과 나는 마주 앉아 있었다.

작은 키, 까무잡잡한 피부에 난 여드름,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듯한 회색 점퍼와 양복바지, 구부정하게 수그린 상체.

며칠 동안 안 감은 듯 기름기가 흐르는 머리는 빗지도 않아서 마구 엉켜 있질 않나.

설마 싶어 테이블 아래를 슬쩍 내려다보니…… 구겨 신은 낡은 구두까지.

정말 최악의 조합이었다.

세수는 하고 나왔을까?

자다가 얼결에 끌려 나온 듯 꾀죄죄한 모습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이게 내 첫 미팅이라니.

내가 킹카를 바란 것도 아니건만 신은 어찌하여 불길한 예감을 소원처럼 들어주셨단 말인가.


‘이 시키를 쥑이삐까!’


주선자 놈의 목을 졸라버리고 싶을 만큼 온몸에서 분노가 솟구쳤다.

게다가 30분이 되도록 말 한마디가 없다.

나는 너무 기가 막힌 나머지 할 말을 잃어서라고 하지만, 너님은 왜 입도 벙긋 안 하는 건데?

내가 그를 최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그도 나를 최악으로 여기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억울하고 분했다. 난 적어도 머리는 감고 나왔으니까!


‘1시간만 앉았다 가는 기다.’


그 와중에 의리는 있어서 나는 최대한 1시간은 버텨 주리라 마음먹었다.

그래야 내일 주선자 녀석을 만나 모가지를 비틀어도 할 말은 있을 것 같기에.

40분쯤 지났을 때 그놈이 처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드디어 입을 열려나 보다.


“저어…….”

‘질문 잘해라이. 기분 몹시 안 좋다이.’


살벌하게 벼르면서 기다렸다.


“……좋아하는 색깔이 뭡니꺼?”

‘에라이!’


후줄근한 차림만큼이나 첫 질문도 이렇게 구릴 수가!

벌떡 일어나 나가고 싶은 걸 꾹꾹 참으며 대답했다.


“파란색이요.”

“아…….”


끝?

그리고 다시 침묵.

천장만 멀뚱멀뚱 보는 20분이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의리녀를 자청한 나를 원망하며 1시간이 되자마자 얼른 물었다.


“이제 고만 갈래요?”

“아, 네, 뭐.”


나는 뒤도 안 돌아보고 카페를 나왔다.




다음날 학교에서 주선자 녀석을 만났다.

보자마자 분노의 주먹질이 나갔다.


“야, 이 씨!”

“미안, 미안.”

“돌았나! 어데서 그딴 놈을 미팅 자리에 델꼬 오노! 기본 매너가 없다 아이가!”

“금마가 촌에서 와가 암것도 모른다. 갸가 을매나 순진하고 착한지 아나? 집에 와가 억수로 좋았다 카드라.”


‘억수로 좋았다’에서 니킥이 나갈 뻔했다.


“좋기는 개뿔! 내가 뭐라 캤노! 미팅 안 한다 캤재!”

“술 사주께.”


씩씩대던 나는 그날 술집에 가서 폭설처럼 쌓인 분노를 풀었다.




그 후로 주선자 녀석의 집에 친구들과 놀러 갈 때마다 나의 첫 미팅 상대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냅다 도망갔다.


“자가 와 저라노? 그래도 미팅 한 사이에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이가? 너무하네.”


내가 황당해서 구시렁거렸더니 남사친이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자가 니 억수로 좋아한다. 부끄러버거 안 그라나.”

“지랄.”


가끔 친구들과 모여 그 집 옥상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도 있었는데, 나는 남사친을 쿡쿡 찌르며 우스갯소리를 했다.


“가도 오라 캐라. 같이 묵구로.”

“큭큭. 죽어도 안 올 끼다.”

“와?”

“부끄러버가 몬 온다.”

“아이고야, 가지가지한다이.”


미팅 후로 나는 그놈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가끔 친구들과 함께 갑자기 들이닥치면 후다닥 방으로 뛰어들어가는 뒤통수만 보았을 뿐.



그 후로 액땜이라도 하듯 미팅을 한 번 더 했고, 소개팅은 두 번이 전부였던 대학시절.

그러나 기억에 남는 건 역시나 최악의 첫 미팅.

그만큼 그는 강렬한 인상을 남겼고, 나는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남았다.

이왕지사 파트너 된 거 물어나 볼걸. 나만 보면 도망 안 가게.


“니는 무슨 색깔 좋아하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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