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무슨 요리를 잘하더라?”
요리를 잘하는 울 엄마.
그래서인지 한 가지만 딱 떠오르질 않는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던 학창 시절에는 다른 집 김치를 못 먹을 정도였다.
부산, 대구, 주로 경상도에 살면서 김치는 서울식으로 담갔으니까.
젓갈 맛은 약하고 무채가 많이 들어가 시원한 맛이 나던 김치.
경상도 입맛에 길들여진 아버지를 위해 김장 때면 생 갈치를 넣은 김치를 따로 담그기도 했지만, 나는 비릿해서 입에도 대지 않았다.
된장찌개를 좋아하는 아버지 덕에 거의 매일 끓여대느라 엄마표 된장찌개도 맛있다.
감자, 양파, 애호박, 두부, 청양고추, 파.
기본적인 재료 외에 더 들어가는 것도 없었으니 순전히 된장 맛이었다.
적당히 짜고 담백하고 감칠맛이 나는 된장이었다.
된장, 고추장, 간장, 막장, 쌈장.
1년 내내 된장이 상에 올랐으니 장을 새로 담글 때가 많아 마당에 큼직큼직한 장독이 그득했다.
"영아, 장독대 가서 된장이랑 고추장 좀 퍼온나."
엄마가 건네주는 밥그릇과 국자를 들고 장독대에 가서 뚜껑들을 열어보면 장 냄새가 코를 찌르곤 했다.
지금은 환경이 예전 같지 않아 장을 담그지도 않을 뿐더러, 잦은 이사에 그 많던 장독대도 볼 수가 없다.
그것 말고도 생각나는 요리가 많지만, ‘엄마’ 하면 생각나는 게 ‘소머리 수육’이다.
내가 왜 소머리 국밥을 좋아하나 했더니 엄마 때문이란 걸 글 소재를 찾다가 알았다.
우리 집은 넉넉한 편이 아니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즈음.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엄마와 아버지는 우시장에 가서 꼭 소머리 반을 사 오셨다.
그때부터 갑자기 분위기가 잔칫집이 되어버린다.
어느 해에는 우설도 같이 사 왔는데 처음 맛보는 식감에 눈이 번쩍 뜨였다.
제법 두께가 있어서 씹는 맛이 좋았다.
육질은 질기지 않고 부드러워 혀에서 녹는 느낌인데 아작아작 씹는 맛은 또 있으니 참으로 묘했다.
씹을 때마다 살살 배어 나오는 육즙은 일반 소고기 맛과는 확실히 다르다.
특별한 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엄마가 만든 쌈장이 전부였기에 오히려 고기의 맛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소머리를 푹푹 삶았고, 한동안 부엌 안은 누릿한 고기 냄새와 뜨거운 김으로 가득 차곤 했다.
소머리가 삶아지면 고기 부분만 크게 썰어서 큰 그릇에 담아 다시 방으로 갖고 들어왔다.
방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나무 도마를 놓는 엄마의 표정은 한껏 들떠 있었다. 신이 난 엄마 얼굴에 더욱 흥이 났다.
그릇에 담긴 수육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걸 보면서 나와 남동생들은 엄마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다.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꼴깍 넘어간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은 아버지는 우리를 흐뭇하게 바라보셨다.
수육 한 덩이를 도마에 올려놓고 칼로 얇게 썰어 아버지 입에 하나, 내 입에 하나, 남동생들 입에 하나씩 넣어주는 엄마.
새들처럼 입을 쩍 벌려 엄마가 먹여주는 수육 한 점을 받아먹는 그 순간이 너무나 행복했다.
야들야들, 쫄깃쫄깃한 수육은 금세 입안에서 사라졌고, 육즙이 묻은 입술을 혀로 싹 닦으면 모두 입술이 반들반들 윤기가 났다.
그 모습을 보면서 동생들과 나는 어깨를 들썩이며 낄낄거렸다.
무섭기만 하던 아버지도 수육 앞에서는 무장해제되어 마냥 편해 보였다.
수육을 몇 점 입에 넣어주던 엄마는 그제야 상을 펴고 큰 접시에 담은 수육과 쌈장을 올렸다.
아버지는 생마늘과 고추를 쌈장에 푹 찍어 수육과 드시는 걸 좋아했고, 어렸던 나와 동생들은 쌈장에 살짝 찍어서 정신없이 먹었다.
1년 중에 고기를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날은 그때뿐이었다.
마치 부자가 된 것처럼 배도 마음도 두둑했다.
우리가 먹는 동안 엄마는 수육을 마저 썰어 고춧가루와 마늘 등을 넣고 시뻘겋게 양념 고기를 만들었다.
비닐장갑도 없었을 때니 맨손으로 그 뜨거운 걸 양념이 배어야 한다면서 조물딱거렸다.
소머리를 곤 뽀얀 곰국에 양념 고기를 넣으면 잡내도 없애주고 느끼한 맛도 잡아줘서 아버지가 무척 좋아하셨다.
수육과 양념 고기는 또 달라서 뽀얀 국물이 아닌 뻘건 국물과 함께 먹으면 살짝 매콤하면서도 뒷맛이 깔끔했다.
다른 집에선 볼 수 없는 엄마만의 특별한 요리였다.
찬바람이 불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우리 집 연례행사.
가난해서 마음껏 먹지 못한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온 가족이 모여, 엄마가 먹여주는 손맛을 느끼는 그 시간이 우리에겐 더할 나위 없는 천국이었다.
이젠 뿔뿔이 흩어져 사느라 연례행사가 사라진 게 무척 아쉽다.
가끔 소머리 국밥을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어쩌면 내가 그리웠던 건 엄마의 손맛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