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일하는가
생각한 것보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이렇게 경단녀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한 일에 대처할 때 난 보통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편이다. 아무리 확률이 낮더라도 내가 그러지 않으라는 보장은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미성년자일 때는 아빠가 돌아가신다면, 부모님이 이혼하신다면이라는 생각을 해봤고, 나이 들어서는 내가 암에 걸린다면, 남편이 먼저 죽는다면, 애를 낳았는데 자폐라면 등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백수생활이 길어지면서 (지금 생각하면 솔직히 별로 길지도 않다) 이러다가 아예 취업이 안 되서 전업주부가 되는 삶도 생각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겠지만, 솔직히 일을 하는 건 즐거운 일은 아니다. 기본적으로믐 내 자유 시간과 노동력을 월급과 바꾸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물론 성취감, 소속감 등이 있지만 만약 돈이 충분히 많다면 과연 사람들이 지금하고 있는 것과 동일한 노동을 할까 싶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노동을 필요악이라고 하였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거 같다.
하지만 난 돈이 엄청 많은 것도 아니고, 가사를 돌보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가사노동을 잘 하는 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좋아해야하는 것 아니다). 그래서 직장인을 하고 싶은 것이다. 여태껏 한 명의 인간으로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온 이유는 단순하게 말해서 좋은 학교를 가고, 좋은 직장에 가서, 돈을 잘 벌고 싶어서가 아닌가. 좋은 가정주부, 좋은 엄마, 좋은 아내가 되기 위해 여태껏 치열하게 산 건 아니다. 모든지 결과론적으로 해석하면 안 되지만, 그래도 결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끔 어떤 사람은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나가서 일을 하냐고 생각할 수 있다. 남편이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힘들게 회사 안 다니고 집에서 있으면 좋지 않냐고. 하지만 난 그게 별로 좋지 않다. 당근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당근을 좋아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맛있는 당근을 안 먹어?라고 말하면, 당근을 싫어하는 사람은 맛이 없다는 걸 당근 러버에게 설명하기 어렵다. 그냥 서로 다르구나하고 인정하고 넘어가야되는 것이다.
사실 호불호의 영역을 넘어서 어찌보면 더 중요한 것은 공짜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래는 알 수 없고, 미래를 대비하면서 사는 건 중요하다. 내 스스로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계속 유지하는 건 그래서 나에게 중요하다.
-남편이 바람을 펴서 이혼하고 싶은데, 경제활동을 안 한지 10년이 넘어서 이혼하면 경제적으로 막막해서 못 할 수 있다.
-남편이 갑자기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질병이나 사망으로 인해 더 이상 경제활동을 할 수 없게 될 수 있다.
-돈 들어갈 데는 많은데 외벌이는 빠듯해서 내가 원하는 소비를 할 수 없을 수 있다.
-돈을 못 벌기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무시를 당할 수도 있다.
위의 예시들은 단순한 예시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현실일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권력이라고 생각한다. 가정 내에서는 감정이 더 권력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많은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다. (예: 집안일을 하는 거로 부부 사이에 트러블이 있다면 가사 도우미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구구절절 말했지만, 난 "가정주부인 나"보다 "직장인인 나"의 모습을 더 좋아할 뿐이다.
(참고)
https://brunch.co.kr/@amynote/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