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가족, 그리고 어느 한 남자의 사는 법
앞에서도 부지의 선택과 관련하여 잠깐 언급했듯이, 건축물의 남향은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남향, 즉 햇볕은 포기해도 좋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기 좋은 집짓기’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켜져야 할 부분입니다. 주변에 새로이 들어서는 집들이나, 여행하면서 만나게 되는 집들에서 남향이 무시된 경우를 수없이 많이 보게 됩니다. 이는 두 가지 이유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그 첫째 이유는, 남향의 입지 조건을 가진 부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배산임수와 남향의 입지 조건은 풍수학에서 천여 년이 넘는 세월을 주장한 사항이기 때문에 그런 좋은 위치에는 이미 많은 집들이 지어져 있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의 건축에서는 우수한 단열성을 내세워 남향의 입지를 중요하게 고려하지 않고 집을 짓습니다. 도심형 주택은 물론이고, 비록 전원주택이라고 해도 전원형 주택단지로 조성되는 것이 대부분인 현실의 여건에서 이런 남향의 입지 조건을 고려해 집을 짓는다는 것이 어렵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만은 반드시 얻어 내야 할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잘 알다시피 풍수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줄임말입니다. 즉,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다는 것인데, 겨울의 차가운 북서 계절풍을 막고 농경에 필요한 용수를 쉽게 얻을 수 있는 곳이 명당이며, 이를 위해서는 남향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 적합하다는 것입니다. 남향의 배산임수 지형, 즉, 남쪽을 향해 뒤쪽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는 산록사면(山麓斜面)의 입지를 한 곳이 사람이 살기에 이상적인 집터라는 것입니다. 이런 지형은 겨울철 차가운 북서풍을 차단함은 물론, 연료의 획득, 용수의 확보, 하천 범람원에 의한 경지확보, 일조량의 확보 등 현실적인 문제에서 좋은 조건을 갖춘 땅이므로 예로부터 집터로서 선호되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넘어선 간룡법, 장품법, 득수법, 정혈법, 좌향론, 형국론, 소주길흉론 등의 형식논리로 설명되고 있는 풍수학은 이미 현실의 문제가 아닌 철학적인 개념입니다. 이런 개념은 쉽게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에 따른 집터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찾기란 더욱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풍수지리학은 본래 중국에서 발달한 것으로, 우리나라에는 통일신라 후기에 한국의 풍수 창시자라고 일컬어지는 승려 도선에 의해 크게 발전하였다고 합니다. 그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도선비기에는 중국에서 발달한 참위설을 위주로 지리쇠왕설·산천순역설 및 비보설 등이 주장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비보설에 따르면 비보란 지덕을 도와 지나친 것을 누르고 모자라는 것은 보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보설의 입장은 아마도 우리나라의 강역이 중국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것이어서 중국에서처럼 풍수에 꼭 맞는 지형을 찾기는 어려운 것이므로, 적절한 지형을 찾아 모자라는 것을 보완하고 드센 것을 눌러 이용하고자 함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거센 지기를 누르기 위해 탑을 세웠다거나 허약한 지맥을 보완하기 위해 나무를 심었다는 등의 풍수와 관련된 전설들이 우리나라 여러 지역에서 전해지고 있는데, 영주부석사 무량수전 좌측에 있는 삼층석탑이나 통영 오량리 마을의 풍수림을 그 일례로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를 통해 보면, 풍수란 절대적인 것도 불변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지나친 풍수적 접근보다는 주어진 조건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보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대에는 상당한 수준의 건설장비 및 건축기술이 있으므로 집의 방향이나 주변 지형 등이 어느 정도만 맞는다면, 나머지 부분은 조금씩 보완하면 되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라도 남쪽이 꽉 막힌 땅은 절대 선택하면 안 됩니다. 동쪽이나 서쪽이 다소 막힌 지형이라면 건축물 방향을 조정해서 어느 정도 채광을 확보할 수도 있겠지만, 남쪽이 막히면 건축물의 방향이 북으로 향할 수밖에 없으므로 어찌해 볼 도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남향이 무시된 경우의 또 하나의 이유로는, 유교적 질서 안에서 오랜 세월 관습화된 정(正)의 인식체계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이는 유교적 통치이념이 건축물에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궁궐건축의 예에서 쉽게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정궁인 경복궁의 경우, 정전인 근정전을 나서면 정남향으로 제1문인 근정문, 제2문인 흥례문을 지나 궁궐의 정문인 광화문에 이르게 되며, 광화문 앞에는 남북으로 일직선의 육조대로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축의 방향이 근정전부터 육조대로 끝단까지 남북일직선상에 놓이게 되는 ‘근정전-근정문-흥례문-광화문-육조거리’의 도식이 됩니다. 이처럼 궁궐의 정남향과 남북일직선의 대로 조성은 건축물의 조성을 통한 유교적 통치이념, 즉, 군주의 바른 덕을 널리 펴게 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김동욱은 <서울의 다섯 궁궐과 그 앞길>에서 ‘군주는 올바른 것을(正) 근본으로 삼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남면해서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정도전의 생각이었다’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물론, 건축물의 남향 구조에만 국한한다면 이궁인 경희궁, 덕수궁, 창덕궁, 창경궁 등은 축의 방향이 정남향을 취하고 있지는 않으며, 정문 앞의 대로 또한 궁궐의 축과 같은 방향으로 일직선을 이루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럼에 불구하고 궁궐의 축이 대로를 향해 정방향임은 분명합니다. 가장 오랫동안 임금들이 머물러 정궁의 역할을 했던 창덕궁의 경우에는 궁궐의 축을 남향으로 고치려고 시도한 적도 있지만, 주변의 물길 전체를 손대야 하는 문제가 있어 결국 포기한 기록도 있습니다. 비록 대로가 궁궐의 축과 횡의 관계에 있기는 하지만, 이는 당초 궁궐을 건축하게 된 동기나 지형적 특성으로 인한 문제이지, 애초부터 궁궐 축의 정남향을 피하거나 대로의 방향을 궁궐의 축과 같은 일직선상에 놓이지 않도록 한 것은 아닙니다.
사대부가의 건축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와 같은 정방향성이 보입니다. 나름 격식을 갖춘 사대부가의 전통 건축물은 대로에 대한 정방향과 더불어 남향까지 확보되어 있습니다. 남향이 확보되지 않으면서 대로에 대한 정방향만 적용되어 지어진 집들을 살펴보면, 대부분 규모나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주택들입니다. 곧, 정방향과 남향을 모두 취하지 못하는 여의치 않은 사정에서 명분을 앞세워 실용을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에서는 이런 유교적 질서가 필요하지 않지요. 이런 부분을 제외하고 전통 한옥의 실용적 장점만을 잘 살려내 집을 지을 수 있다면 ‘살기 좋은 집’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남향의 입지 조건은 포기해서는 안 될 부분입니다. 앞의 예에서 필자가 문제가 된다고 여긴 것은 건축물이 도로를 향해 정방향이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민간 일반의 인식입니다. 이런 인식에서는 대문 또한 반드시 건축물 정면에 위치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건축물-대문-도로’라는 도식이 됩니다. 궁궐건축의 예와 같지 않은지요. 이런 인식에 기반을 둔 건축이 궁궐이나 관아는 물론이고 향교, 서원, 사대부가의 건축에도 적용되었음은 당연한 일일 테지요. 유교적 통치 질서 안에서 그 상위에 있는 자들의 권위를 나타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나 집이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편익을 제공하는 것이지, 그 주인의 권위나 위상을 표현하는 수단은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더욱이 그 옛날 통치 질서의 확립을 위한 철학적 문제로까지 이어지는 선인들의 시대에야 어쩔 수 없었다고 하더라도, 현대에는 그럴 이유가 전혀 없지 않겠는지요.
물론, 공공의 건축물이나 상업 일반의 용도에 사용되는 건축물은 편익을 위해 정면이 도로를 향하도록 하는 것은 당연할 테지요. 그러나 주택용 건축물은 그럴 이유가 전혀 없는데도 남향을 포기하고 도로를 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마당을 갖춘 개인주택을 지으면서 이처럼 남향을 도외시하고 집을 짓는 것을 필자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왜 건축물의 정면이 꼭 도로를 향해야 할까요? 옛사람들이 살던 시대에는 집의 구조를 통해 나름의 유교적 대의나 위계의 표시가 필요하였을 뿐만 아니라, 탁 트인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대로를 향한 정방향이 필요했겠지만, 현대에 와서 이처럼 불필요한 부분을 위해 전원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채광확보를 포기한다는 것은 우습기까지 한 일이지요.
많은 사람이 이런 정방향의 확보를 대가로 남향 포기하면서 하는 변명으로 현대 건축물의 우수한 단열성을 들기도 하는데, 이런 생각이라면 ‘살기 좋은 집’을 짓는다는 개념에서는 한참 후퇴할 수밖에 없습니다. 난방이야 어떻게 해결한다고 하더라도 채광의 확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입니다. 햇볕이 인간에게 줄 수 있는 행복감이 얼마나 큰 것인지, 그것이 확보된 실내가 얼마나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지는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을 것입니다. 햇볕의 완벽한 소유가 곧 전원생활의 질을 크게 좌우합니다. 또 현대건축의 단열성이 아무리 우수하다고 해도 남향을 포기하면 단열을 위한 추가적인 비용부담이 발생하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남향의 집과 비교해 보면 난방비용의 측면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다가 그늘진 장소에는 각종 벌레나 곰팡이 같은 미생물 또한 쉽게 번식하기 마련입니다.
좋은 집터의 조건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가장 중요한 것이 ‘햇볕이 잘 드는 땅’이라 생각합니다. 아무리 반듯하고 주변 여건이 좋은 땅이라 하더라도 그늘이 지는 땅이라면 집터로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집터는 언제나 햇살이 가득 차 있어야 합니다.
주택의 난방과 관련해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그 첫 번째가 집의 방향, 즉, 남향입니다. 두 번째가 집의 구조와 단열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의 문제이고, 세 번째로 들 수 있는 것이 창호의 단열성입니다. 따라서 주택건축을 위해서는 이런 문제들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최선의 방안을 선택한 다음 최종적으로 제3의 에너지, 즉, 보일러 등의 주된 난방방식을 결정하여야 하며, 이와 더불어 난로 등의 보조적인 난방방식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이 부분에 소홀하게 되면 살아가는 내내 난방비용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주택의 방향 설정과 관련해 한 가지 더 염두에 두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주택의 방향, 즉, 거실의 주된 창호가 설치된 방향은 반드시 정남향이어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입니다. 동남향이나 서남향을 권하는 견해도 있는데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동남향일 경우 겨울철 떠오르는 해를 좀 더 일찍 받을 수 있어 따뜻하다는 것이고, 서남향은 저녁 무렵 지는 해를 더 오래도록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견해는 여름철 불볕더위를 염두에 두지 않는 견해입니다. 우리나라의 위도에서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은 여름철과 겨울철에 확연히 다릅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사실을 잊고 사는 듯합니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 이것이 오늘날 현대인이 가지고 있는 막연한 상식일지도 모릅니다. 도시의 빌딩 숲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이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닐 수는 있겠습니다. 하지만 전원주택을 짓는 문제라면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나라의 위도는 북위 33°06′40″(극남-마라도)에서 북위 43°00′39″(극북-함북 온성군 남양면)사이에 위치합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위도에서 보면 태양은 남동쪽에서 떠서 남서쪽으로 기우는 셈입니다. 그런데 여름철에는 태양의 적위가 북쪽으로 올라와 하지에 이르면 북회귀선(하지선)상인 23°27′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태양의 남중고도가 크게 높아져 태양의 운행이 거의 우리의 머리 위를 가로지르는듯한 궤적을 그립니다. 이런 이유로 남향을 한 집은 여름철 뜨거운 햇빛을 창문으로 직접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동향의 집은 이른 아침 떠오르는 햇빛을, 서향의 집은 저녁 무렵 서쪽으로 넘어가는 햇빛을 직접적으로 받게 됩니다. 이런 사실은 미국 프린스턴대학의 건축실험실에서 실시한 여름철 건축물의 방향에 따른 온도의 영향에 관한 실험 결과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연구에 따르면 동향의 건축물은 고른 온도분포를 보이기는 하지만 이른 아침부터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여 종일 고온을 유지하며, 서향의 건축물은 오전에는 낮은 실내온도를 유지하지만, 오후 여섯 시 이후 급격히 상승하는 열 분배의 불균등을 보입니다. 더욱 큰 문제는 이런 햇빛이 아침저녁으로 사람의 시선과 거의 일직선을 이루며 비추게 된다는 점입니다. 이런 햇살을 받아보지 않은 사람은 그 괴로움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여름철의 경우와는 달리 겨울철 동지에는 태양의 적위가 남회귀선(동지선)상인 23°27′까지 내려가게 됩니다. 따라서 태양의 남중고도는 훨씬 낮아져 아래쪽에서 떠오르게 되므로 정남향으로 방향을 잡은 집은 동남쪽에서 떠올라 서남쪽으로 지는 따뜻한 햇볕을 오래도록 거실에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동향의 집은 아침 일찍 햇볕을 받기는 하지만 오후가 되면 곧 거실엔 그늘이 지며, 서향의 집은 오전 내내 해를 등지고 있다가 오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햇볕을 받게 됩니다. 두 방향 모두 기온의 균형이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여름철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직선으로 들이치는 햇살을 감수해야만 하고, 해가 비치지 않는 하루 중 대부분 시간은 거실에 그늘이 져서 어둡게 되므로 바람직한 방향이라 할 수 없습니다. 경사지붕이 없는 슬라브즙 건축물의 경우에는 이런 문제가 더욱 두드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