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조개나물 길

십자가의 길

by 이주형

조개나물 길

- 십자가의 길 -


하늘은 봄을 믿는

나무가 견딜 만큼의

가뭄을 주십니다


하지만 뿌리가 없는 사람들은

가물가물한 옛 기억 타령하다

결국 하늘만 원망합니다


그 원망 듣지 않은 것은 아니나

산이 불타는 것이 달파

하늘은 비를 주셨습니다


생명 비 내리는 오후

파도가 소리 없이 산을

타고 흐릅니다


꼭 바다가 보낸 편지가

올 것만 같은 날


편지를 마중하기 위해

우산을 안내자 삼아

비가 놓은 다리를 따라

나선 길


봉긋봉긋 핀 꽃길 지나 만난

봉긋봉긋 평온하게 은 무덤

그 무덤이 피워 올린

나물도 못되면서 나물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인 조개나물과

첫인사를 나눕니다


산에서 만난 조개가

바다가 보낸 편지임을 안 것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십자가의 길을 듣고서입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 길이지만

바다를 건너 산으로 온

조개나물의 길이 그 길임을


모든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그래도 바다 소식을 듣기 위해

바다색으로 층층이 올린 꽃을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등을 내 준 무덤에 기대어

바다가 보낸 편지를 읽습니다


사람 사는 세상

사람이 하는 일에

용서 못 할 일이

뭐가 있겠


산을 넘는 파도를 따라

조개나물의 안부를 들고

바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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