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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Oct 22. 2024

나도 치료 좀 받아야겠다.

 매일 아침 챙겨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는데 바로

'인간극장'이다.

시간상 앞부분을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다음날 YOUTUBE에 올라오면 놓친 부분까지 챙겨보는 찐 시청자이다.

이번 주는 고양시에서  민화 관련 작업공방을 하는 아들과 체험형 농장을 시작한 며느리가 있는 가족의 이야기이다.

며느리의 농장은 단순히 체험형이 아니라  치유를 위한 농장프로그램을 하고 있다.

그건 바로 흙을 만지고 힘을 쓰고 농작물을 가꾸며  마음을 돌보는 것이다.

프로그램 속 시어머니가 시아버지의 오랜 병간호로 심신이 지쳐있을 때  잠깐씩  농장일을 하며 오히려 힘듦을 잊었다고 하는데 그걸 보고 심리학을 전공한 며느리가 접목을 한 프로그램인 거 같다.

오늘 배추 모종을 심는 걸 보니  나는 이미 자가 프로그램 실천 중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른 봄에 주말 농장을 시작할 때 내가 생각한 것은 쉬엄쉬엄 운동도 되고  일부러 산책도 하는데 정해놓고 갈 곳도 있고

푸르른 식물도 마음껏 보고  농사지은 작물을  밥상에서 맛있게 먹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농사가 사람생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람이 마음대로 정하는 건 씨와 모종을 땅에 심는 것일 뿐

그 후부터는  사람은 땅과 작물이 시키는 데로 움직여야 한다.

일단은 목마르기 전에 물 줘야 하고

배고프기 전에 영양도 줘야 하고

불필요한 것들은 자르거나 치워줘야 하고

주변은 풀 뽑기라는 이름의 청소까지 말끔하게 해줘야 한다.

조금만 게을러질라치면 성이 나서  밭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놔  농사짓는 사람이  이웃들 보기 부끄럽게 하거나  지레 질려서 두 손 들고 포기하게 만들어 버린다.


나는 어정쩡하게  1년 농사를 마무리해 간다.

부지런하지도 않았고  내팽겨두지도 않았다.

그런데...

내가  기대한  주말농장과는 조금 괴리가 있다.

일단은 즐거움이 부족했다.

평생을 나를 따라다니는 책임감이란 녀석이  여기까지 쫓아와서  봄, 여름 내내  마음과 머리 한구석에서  나를 약 올렸다.

" 이럴 거면  왜 시작함?"

" 이렇게 게으르기 있기? 없기?"

"할 거면 제대로 하세요!"


본 투비 촌 남자인 남편이  제대로 한 몫하고  난 그저 적당히 하면 되리라던  생각은 근거 없는 착각이었다.

사람 좋아하는 남편은 같은 주말농부 아저씨들과  대화도 하고  맥주 한잔을 얻어 마시기도 하고  한 뼘의 땅도 놀리지 않고 이것저것 마구 심는 걸로 나름 즐거움을 느끼는 것 같은데  나와 즐거움의 포인트가 다르다.

주말농장을  시작하며 내가  바라던 바가  앞에 이야기한 인간극장의 농장에서 하는 것과 같은  마음의 안정과 치유였는데  가을이 깊어가는 지금 이런 생각이 든다.


주말 농장의  일들을 잘 해내야 하는 히나의 일로 생각한다면

내가 바라는 마음의 힐링은 결코 없다는 것이다.


일이 아니다.

비교할 일도 아니다.

몸을 움직여 그냥 하다 보면  땀에 젖고  생각이 단순해지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내가 돌본 만큼 밭의 작물이 자라고 상추를 따고 오이와 가지를 딸 때 단순하고 뿌듯한 즐거움이 있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런 즐거움이 바로 치유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즐거움에 앞서 내가 해야 하는 것들을 '일'이라고 생각했다.

해야만 한다고 생각한 일을하고 받는 즐거움은 자연스럽지 않다.


올해 1년은 흙을 만지면서도 시멘트 건물 안에서의  나와 똑같았다

욕심, 나태함, 비교, 걱정, 짜증...

이제는  생각하면서 '일' 하지 말고  나도 치유와 치료인 시간을  보내야겠다.

                          가을배추와 무와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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