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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바람 Sep 24. 2024

수확의  맛

 꿀배가 아니어도 맛보는 즐거움이 있다.

못난이 배여도 아쉬움보다는  기특함이 조금 더 크다.

지난 일요일에 주말 농장의 배를 수확했다.

이 주말농장은 원래 배 과수원을 분양한 거라  각 텃밭에  배나무가 한 그루씩  옵션이다.

나무 관리는 주인께서 하시기에 우리는 배봉지 씌우기가 끝이었는데  배를 더 이상  새들에게 양보할 수 없고 수확시기가 와서  기대를 안고 갔다.

그 기대란 것이  우리가 마트에서  보는 그런 배가  봉지를 벗기면 짠 하고 나타나리라는 기대는 아니다.

이미  십수 년 전 한 번의 경험으로 그런 배는 절대 일반인이 수확하는 게 아니라는 것과  몇몇 봉지를 벗어젖히고 달려있던 배를 보았기에  멀쩡하게 먹을만한 배를 기대하는 것이다.

다른 주말보다 사람들이  제법 많다.

모두 배를 따거나  가을배추와 열무를 돌보러 나와들 계신다.


자..!  우리도 배를 따본다.

잘생긴 배 하나를 벗기면  못생긴 배가  다섯 개다.

이렇게 배를 수확하고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하는지 못했다고 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

다른 분들이 보시고  한 마디씩 거드신다.

그분들은 평균 10년의 주말 농장 경력자들이시다.

" 봉지를 너무 많이 씌었어요.  그렇게 촘촘히 씌우면 배가 안 커요."

" 내년에는  봉지를  40개만  씌어요"

오잉?

남편은 봉지를 80개나 받아서  몇 개 남기고  모조리 씌우는 그 답지 않은 탐욕을 부렸었는데?

그나마 그분들 말씀은 우리 배나무와 텃밭이  농장 입구 쪽이라 사람들이 드나들고 앉아 쉬는 곳이라  새들이 덜 쪼아 먹은 거라고 하신다.


이렇게  봄부터  배 수확까지의  1차 농사가 끝났다.

예전에는 배를 따기 전부터  농사는 손을 놓아버리고  배를 따고는 농장과 안녕을 고했었는데  배추모종을 심어놓았으니 2차가 남아 있다.

시들어진  가지와 고춧대를 모두 뽑아버리고 휑해진 자리에 퇴비를 뿌려 두었다.

2차 농사를 위해서이다.

남편이 양파를 심어 보자고 한다.


'남의 편님~!  심는 건 좋은데 적당히 합시다.

한 뼘의 땅이라도 놀리면 안 된다는 그 마인드는 너무 하는 거 아니오?'

내 마음의 소리가  부디 잘 전달되기를 바란다.


인심 좋으신 이웃께서  당신이 키운 열무를 솎아서  심어보라고 주셨다.

어린것으로 골라  열몇 개를 심고  조금 큰 것들은 가져와 열무김치를 담가서 몇 끼 맛있게 먹었다.

잘 뿌리내리고  자리를 잡았는지 가보아야겠다.

좋은 가을날에  하늘 보며 바람 쐬며  가볼 곳이 있다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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