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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술트릭이란 무엇인가?

by 드루리

최근 많은 일본추리물중 서술트릭을 전면에 내세워 각광을 받고 있는 작품들을 심심찮게 보게 된다. 많은 이야기를 꺼내고 들으면서 '서술트릭'의 구조에 대해 '참신하다','신선하다'라는 의견을 듣곤 하는데, 서술트릭을 반전의 축으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 재미있게 받아들일 만한 일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론 서술트릭을 요소요소에 곁들이는 정도로 사용해야지, 소설전면에 배치하는 것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추리소설이란, 특히 본격추리물은 작가와 독자의 범인맞추기 심리게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작가와 독자의 심리대결이 사건을 통해 독자에게 충분히 공개된 상황에서 이뤄지는 사건트릭이 아니라 작가의 단순기술로 인한 것이라면 이는 독자를 기만하는 행위이지 않은가. 물론 그로 인한 충격은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일수도 있지만 그것이 독자와의 정정당당한 추리게임이 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여간 달갑지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서술트릭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독자들은 혹은 스릴러물을 즐겨 보았던 영화관객들은 이미 이런 서술트릭구조를 숱하게 보아 왔다. 다만 그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얘기하기가 쉽지 않을 뿐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소설속에 '철수'와 '영희'라는 이름의 부부가 등장한다고 하자. 어느날 남편이 살해된다. 용의자는 다수의 주변인물들이다. 이 때 탐정은 과연 범인이 누굴까 주변인물들을 심문하고 철수와 영희간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파악한다. 그리고 결말에 가서 나타난 반전은, 피해자는 철수가 아니라 영희였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남편의 이름이 영희이고 아내의 이름이 철수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서술트릭이다. 독자들은 당연히 철수가 남편이며 영희가 아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소설에서는 그것을 지시해서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극적반전을 위해 독자를 속여야 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소설속에서 철수와 영희는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도 않는다. 즉, 소설속의 인물들은 아는데 독자만은 모르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서술구조는 여러가지형태로 파생된다. 앞선 예의 'A라는 사람이 B여야 했다'(인물트릭)외에, 같은 시간대에 존재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 후 'A라는 인물의 시간대는 오늘이지만 B라는 인물의 시간대는 어제'(시간트릭)라던지, 같은 장소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인식을 하게 만든 후 'A의 장소는 한국이지만 B의 장소는 미국'(공간트릭)이라는..등등이다. 상기 서술트릭들의 한가지 공통점을 얘기하자면 그에 대한 정보가 독자들에게 충분히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술트릭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추리소설의 핵심을 건드린 최초의 소설이 바로 애거서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사건' 이다. 곁가지에만 머물던 서술트릭 구조를 극적반전의 가장 중심부에 위치시킨 작품인데 당시 많은 독자들이 이 소설에 환호를 보내기도 하였지만 앞서 설명한 반감때문에 '정정당당하지 못한 방법' 이라고 비판을 하기도 하였다. 또 일부에선 '독자들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파악하지 못했을 뿐 충분한 정보가 이미 공개되었다'라고 항변하기도 하는등 많은 논란거리를 낳았다. 이렇듯 서술트릭은 상당히 아이러닉한 장치이긴 하지만 소설전개에 있어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중요한 도구라는 사실 또한 틀림이 없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서술트릭을 파악하기 위해선 어떻게 책을 읽어야 할까? (한가지 팁을 얘기하자면, 추리소설에 교차서술이 등장한다면 무조건 의심해 보아야 한다. 교차서술은 서술트릭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구조이다.) 일단 추리물을 접할땐 일반적인 고정관념을 독자 스스로 벗어나야만 한다. 소설의 서술형태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도 안된다. 즉, 작가가 제공하는 정보자체를 의심하여야 하고 없는 사실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사건 외적인 점까지 고려한다면 작가와 독자의 추리게임이라는 측면에 잘 부합하는 장치일런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우려를 표했던 폐해를 추리작가들 역시 의식한 탓인지 최근에는 서술트릭을 손쉽게 표면에 드러내는 대신, 기저에 숨겨놓고 놀라움을 배가시키려 한다. 10년전만 해도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나도 이제는 먼저 찾아보며 반가워하는 독자의 시각으로 변해 버렸다.(서두의 비판이 무색해지지만..)

정정당당한 추리게임.. 또 한번 딜레마에 빠진다. 독자들의 안목이 한수,두수 앞을 내다보는 현재이기에 작가들 역시 스스로 그 돌파구를 찾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해답이 '서술트릭' 이 될 것임을 우리는 다수의 작품들을 통해 여러번 경험했다. 그렇게 작가와 독자의 추리게임은 2막, 3막을 거치며.. 발전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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