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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번, 면회”
명훈은 면회실로 향했다. 곧 출소를 앞두고 있어 친구가 몇 가지를 일러두기 위해 면회를 오기로 했다. 명훈은 벌써 다음 주면 세상에 나간다는 사실이 실감 나지 않았다. 10년 동안 막연하게 출소일을 그리곤 했지만 실제로 그날이 가까워지니 마음이 들뜨고 싱숭생숭하기만 하다. 명훈은 처음부터 교도소 생활에 제대로 적응을 하지 못했다. 뭘 제대로 해 내지 못하는 어설픈 성격이었기에 그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억압된 생활이 좀체 익숙해지지 않았다. 함께 방을 사용했던 동료들과도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흔히 말해 그들의 꼬봉이 되기에는 눈치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 때문인지 명훈은 가석방의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쳐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교도관의 눈에 띄는 민첩한 생활을 할 수 있었다면 명훈 역시 조기 출소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교도소라는 곳의 섭리도 바깥세상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눈치를 살피고, 줄을 잘 서야 하며 그들의 입맛에 맞는 행동을 해야만 기회가 찾아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명훈에게는 그럴만한 능력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관이 없다. 아무려면 어떤가. 일주일 후면 꿈에 그리던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데. 바깥세상에서 맞이할 하루하루를 생각하면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명훈은 출소 전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지난 10년간의 시간보다 더 길게 느껴질 것만 같았다.
“명훈아, 나 왔어. 잘 지냈어?”
면회실에 들어서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진수가 반갑게 명훈을 맞이했다. 벌써 몇 년째 한주도 빠지지 않고 자신을 보러 오는 고마운 친구다. 최근에는 면회를 오는 사람이 진수밖에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가 몇 번 면회를 온 적은 있었지만 그때도 진수가 늘 함께였다. 그 때문에 명훈은 자신이 의지하고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진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진수에게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말할 수 있다.
“진수야. 다음 주에 나갈 건데 왜 또 왔어? 안 와도 된다니까.”
“아냐,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왔어. 몇 가지 말해 줄 게 있어서.”
진수는 헛기침을 하고 잠시 뜸을 들인 후에 입을 열었다.
“네가 집에 돌아오게 되면 아마 마을 사람들의 시선이 예전 같진 않을 거야.”
진수는 명훈에게 지난 밤 마을회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명훈도 내심 짐작은 하고 있었다. 자신의 잘못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본인 스스로도 끔찍스러울 만큼 싫고 외면하고 싶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의 사회 흐름이 성범죄자를 더욱 엄격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것 또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명훈아, 다음 주에는 상우랑 같이 올 거야.”
상우.. 명훈은 아들의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타 들어갈 것 같았다. 명훈에게 아들 상우는 그저 아프고 미안하기만 한 이름이다. 명훈은 깜짝 놀라 손사래를 쳤다.
“뭐? 아냐.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마. 그럼 평생 아들 얼굴 안 보고 살 거야. 집에서 보면 그게 더 어색하지 않겠어? 왜 그렇게 자꾸 피하려고 하는 거야? 지금까지 너랑 상우가 계속 외면하고 피하기만 해서 나도 잠자코 있었는데 내가 얼마나 답답했는지 모르지? 어떻게든 부딪혀 봐야지. 이렇게는 절대 안 돼. 이야기도 많이 하고 함께 시간도 보내고 그래야 해. 지금도 엄청 늦었단 말이야. 넌 네 아들하고 어떻게 같이 살아갈 것인가 그것만 생각해. 알겠어?”
진수는 말을 하면서 감정이 격해졌는지 점점 목소리가 높아졌다. 사실, 진수가 이런 얘기를 꺼낸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명훈도 진수의 말이 맞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매번 그 얘기를 꺼낼 때마다 명훈은 난색을 표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는지,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심스럽고 걱정스럽기만 했다. 교도소안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낱낱이 벗겨 놓은 민낯을 드러내는 것만 같아 상우에게만큼은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게 잘못이었다. 어린 시절, 남자아이는 아버지와의 기억을 먹고 자란다. 상우에게는 그런 기억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빠를 만나러 가겠다는 상우의 응석도 어느새 딴 세상의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존재했던 추억마저도 이제 다 희미해져 버려서 상우의 감정이 무뎌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는데.. 명훈은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명훈은 전과는 다르게 진수가 면회소 밖을 나가는 뒷모습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진수는 항상 내 뒷모습을 이렇게 쳐다보았겠지. 면회를 마치고 돌아서야만 했던 매 순간마다 그렇게 마음이 허전할 수가 없었다. 교도소 내에서 마음을 터놓고 지낼 만한 존재가 없었기에 매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진수는 언제나 그리움의 대상이었다. 항상 가족 소식을, 그리고 상우 소식을 전해 주었기에 진수를 만나는 것이 곧 가족을 만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명훈은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공간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게 마지막이다. 명훈은 그것마저도 감사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이라는 아쉬움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명훈은 이불 밑 한켠에 간직해 놓은 편지 꾸러미를 꺼내 보았다. 매주 한 두통씩 꼬박꼬박 아들에게 써 놓은 부치지 못한 편지다. 처음에는 자신의 범죄사실에 대한 하소연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기억은 없지만 내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 리가 없다고 말이다. 자신이 지독한 살인자일 거라고는 지금도 생각지 않는다. 법정에서도 무죄를 주장해 보았지만 오히려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다며 형량만 더 늘어나 버렸다. 변호인은 처음부터 자신의 편이 아니었다. 명훈은 그래서 후회가 많이 되었다. 애초에 잘못했다고 말하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가족들을 좀 더 일찍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다 부질없는 생각이지만 명훈은 한동안 그 생각에만 사로잡힌 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치기 일쑤였다. 초창기와 달리 최근 몇 년간의 편지는 아들의 안부를 묻는 내용과 일상의 기록들,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희망의 메시지들로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수감생활 중 느낀 점을 기록해 둔 일기이자 회고록인 셈이다. 명훈은 교도소에서 쓰는 마지막 편지라고 생각하며 다시 펜을 들었다. 그 내용 역시 아들과 함께 하고픈 희망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수 말처럼 모든 걸 상우랑 같이 하고 싶다. 운동도 하고 도시락을 싸서 소풍도 가고 여기서 배운 요리도 같이 만들어 먹고 또 나중에 상우가 성인이 되면 술도 같이 한잔하고 참, 운전도 가르쳐 주고 싶다. 적고 보니 아들과 함께 하고 싶은 일들이 참으로 많았다. 지금 편지에 쓰고 있는 내용들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명훈은 그날 밤 창 너머로 희미하게 비치는 불빛을 조명 삼아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편지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어느덧 한없이 길게만 느껴졌던 교도소안의 모든 시간들이 끝을 맞이했다. 한숨도 못 잘 거라 생각했던 지난밤의 예상과는 달리 명훈은 깊은 잠에 빠져 아침 일과시간을 소화하는 데 얘를 먹었다. 밤새 아들에게 무슨 인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하겠노라 다짐했었는데 아무런 인사도 생각하지 못한 채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래서 명훈은 걱정이 태산과도 같았다. 점점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한다. 지난 몇 년간 나름의 정을 나눴던 동료들과 성난 호랑이와도 같았던 교도관들과의 작별 인사 시간도 명훈에겐 그저 남의 얘기처럼 느껴졌다. 교도소에 수감될 당시 맡겼던 몇 개의 소지품을 챙기고 명훈은 교도소 철문을 마주했다. 이제 곧 바깥세상이다. 명훈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수감될 당시 포승줄에 묶여 철문 안을 들어서던 그날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하늘이 내 마음을 아는 듯 주룩주룩 비가 내렸는데 오늘은 더없이 맑고 푸르기만 하다. 이제 정말 실감이 되나 보다.
이 밖에 내 아들이 있다. 내 아들 상우가.. 무슨 말을 하지? 아, 어젯밤 왜 그렇게 일찍 잠이 들어버렸을까.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밖으로 한 걸음 더 발을 내딛는 순간 저 멀리서 누군가가 달려와 자신을 꼭 껴안았다. 진수였다. 진수의 모습을 확인한 명훈은 순간 울컥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곧이어 또 다른 누군가가 명훈에게로 다가왔다. 진수가 말했다.
“상우야, 인사해라. 아버지다.”
“네. 그게.. 안녕하세요.”
상우구나. 내 아들 상우. 많이 컸구나. 명훈은 상우를 끌어안고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이야기를 모두 다 내뱉고 싶었지만 도저히 입이 열리지 않았다. 잠시 동안 침묵이 흘렀다. 명훈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생각이 나지 않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든 침묵을 깨트려야 한다. 어떡하지. 명훈은 무작정 입을 열었다.
“그래, 상우구나. 고맙다 와 줘서. 그리고 미안하다.”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명훈은 아들을 안아 보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미안함에 내가 어떻게 감히..라는 생각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