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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드루리 Oct 24. 2021

밤밤언덕(1)

1

“내가 못 살아. 진짜, 그 인간 뭐가 잘났다고 음식을 차리시는 거예요?”


엄마는 화를 내며 음식을 준비하시는 할머니에게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런 게 아니다. 십 년 만에 집 밥 먹이는 건데 차릴 건 차려야지. 너도 너무 그러지 마라. 오랫동안 타지 생활하다 돌아오는 사람한테.”


“됐어요. 그만하세요. 어휴, 난 또 무슨 꼴을 보려고 아직까지 이 집구석에 붙어 있는 건지.”


엄마는 화를 내며 방문을 열고 휑하니 밖으로 나가셨다. 방안에 홀로 앉아 있는 할머니의 뒷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오늘따라 부쩍 더 마른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오늘은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시는 날이다. 10년간의 수감생활을 마치고 말이다. 비록 어린 시절이긴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다정하고 참 좋은 분이셨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셨다. 높은 곳을 보고 싶다고 하면 목마를 태워 나무 위에 올려다 주셨고 맛있는 게 먹고 싶다고 하면 한 아름 과자를 사다 주셨다. 그 덕분에 한 번씩 엄마의 핀잔을 듣긴 했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엄마 역시 남부럽지 않게 사이가 좋은 부부였다. 

마을에는 유명한 밤나무 언덕이 있는데 아버지는 나를 그곳에 자주 데리고 가셨다. 밤나무 사이로 쳐다보는 밤하늘은 정말 아름다웠다. 아버지는 그 언덕을 밤밤언덕이라고 불렀다. 밤하늘 밤나무 언덕. 


“상우야, 저기 보이지? 저 별이 아빠가 엄마에게 청혼할 때 이름을 붙여줬던 별이야. 그리고 저 별은 상우 네가 세상에 나왔을 때 네 이름을 붙인 별이고”


아버지는 환하게 웃으며 말씀하셨다. 그때 본 밤하늘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에 혼자서도 밤밤언덕을 자주 찾았지만 어쩐 일인지 아버지와 함께 보던 그 밤하늘 광경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경찰들에게 붙잡혀 간 이유를 알게 된 것은 아버지가 떠나시고 한참이 지난 후에서였다. 아무도 나에게 그 이유를 말해 주지 않았다. 아무래도 7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 나이였기에 오롯이 감당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아버지는 술에 취해 성추행을 하고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게다가 함께 있었던 피해자 일행도 아버지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다. 설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아는 한 아버지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셨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은 아버지에게 전혀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피해자의 진술은 일관되었고 경찰들이 제시한 증거는 확실했다. 더구나 잘 배우지 못한 아버지는 분명 말을 조리 있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겠지만 우리 가족에겐 그저 어리숙하고 순하기만 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떠나신지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금 와서 되짚어봐도 아버지의 형량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했다. 변호인 역시 그렇게 말했지만 우리 가족은 재판 결과를 그저 담담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상우야, 시간 다 됐다. 어서 가자.”


한참을 앉아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곱씹어 보고 있는 동안 옆집에 사는 진수 아저씨가 나를 데리러 왔다.


“네, 아저씨.”


아버지와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낸 절친한 친구 진수 아저씨와 아버지 마중을 간다. 내가 가는 게 맞는 것일까? 몇 번이나 고민했다. 지난 몇 년간 면회를 가 본 적도 없고 편지 한 장을 쓴 적도 없었다. 아버지가 떠난 직후 어린 나이에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해서 엄마 손을 잡고 몇 번 면회를 간 적이 있었지만 세월이 흐르고 아버지가 떠나신 연유를 알게 된 후에는 이미 당신에 대한 감정이 무뎌져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아버지 역시 우리가 괘씸했을 것이다. 하나밖에 없는 처자식이 얼굴 한번 내비친 적 없었으니 말이다. 운전을 하고 있는 진수 아저씨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내 손을 잡았다. 


“괜찮아. 그렇게 긴장할 것 없어. 세월이 많이 흘러서 네가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너희 아버지, 옛날이랑 변한 게 하나도 없다. 뭐, 늙긴 했지만 얼굴도 거의 안 변했고 옛날에 네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일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말없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진수 아저씨는 아버지가 마을에 다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앞장서서 아버지를 옹호해 주신 분이다. 아버지 면회를 다녀오시는 분은 진수 아저씨밖에 없었기에 유일한 아버지의 소통 창구였다.      


마을에서는 아버지가 집에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찬반 토론이 벌어졌다.


“안 됩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범이라고요. 살인범. 게다가 성추행을 하다 그렇게 된 거 다들 아시죠? 집에 딸 있잖아요. 선희 아버지, 지현이 엄마. 생각해 봐요. 상우 아버지가 돌아와서 또 술 먹고 성추행을 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해요?”


그때까지 별말 없던 마을 사람들도 준석 아저씨의 얘기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우리 가족에게 힘을 내라고 용기를 주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회의에 참석해 있던 나를 보고 슬쩍슬쩍 눈치를 살피는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이 야속하기도 했지만 나 역시 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옛날처럼 크지 않았기에 반박도 하지 않고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그때였다. 진수 아저씨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격앙된 목소리로 말을 했다.


“다들 너무 하신 것 아닙니까? 수십 년을 봐 왔으면서 명훈이를 그렇게 모릅니까? 명훈이에요. 명훈이, 그리고 살인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사람이 죽긴 했지만 그건 명백한 사고였다니까요.”


“경찰에서 살인이라는 데 진수 네가 아니라고 하면 그게 아닌 게 되는 거야? 경찰에서 살인자라잖아. 인정할 건 인정하라고.”


콧방귀를 뀌는 준석 아저씨의 핀잔에 진수 아저씨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준석아, 네가 그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너 고등학교 졸업하고 도박해서 빚졌을 때 그거 메꿔 준 사람이 누구냐? 네가 그 얘기 무덤까지 가지고 가 달라고 해서 비밀로 하고 있었는데 그 돈 명훈이가 공사판 나가서 일해서 갚아준 거야. 잊었어? 그것뿐 아닙니다. 10년 전이지만 여기서 명훈이 도움 안 받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진수 아저씨가 말을 꺼내자 그때까지 술렁이던 마을 사람들이 일순간 조용해졌다. 


“여기서 반대를 하면 명훈이 마을에서 쫓아내자는 말입니까? 전 여기서 이런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뭔데요? 우리들이 무슨 권리로요?”


가만히 지켜보던 지현이 어머니가 말을 꺼냈다.


“그래도 범죄자가 이 작은 마을에 다시 돌아온다고 하니 께름칙하잖아요. 옛날 상우 아버지야 착했던 거 다들 알지만요. 십 년이나 수감생활을 했는데 우리가 알던 그 사람이 맞을지 아닐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시간을 주자고요. 오늘 그런 얘기 하려고 모인 것 아닙니까? 쫓아낼 생각만 하지 말고 같이 잘 살아갈 방법을 찾아보자는 겁니다. 제가 명훈이한테 다 얘기해 놓겠습니다. 만에 하나 마을 사람들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게 될 경우에는 어떠한 처분도 감수하겠다고.”     


마을 회의는 그렇게 끝이 났다. 진수 아저씨 덕분에 아버지는 일단 집에 다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물끄러미 진수 아저씨의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아저씨는 친구를 만난다는 생각에 내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들떠 있는 것 같았다. 


어느덧 교도소에 도착한 우리는 아버지를 맞이할 준비를 했다. 진수 아저씨는 긴장하지 말라고 내 어깨를 다독였지만 사실 난 아무런 감정이 없었다. 내가 지금 아버지를 마주 한다는 게 사실인지 아닌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때. 상관없어. 어서 시간이 지나길 바랄 뿐이었다. 진수 아저씨가 나에게 커피를 건네주며 말했다. 


“네 엄마도 참 너무한다. 오늘은 그냥 못 이기는 척 같이 따라오면 얼마나 좋아. 안 그러냐?”


난 그냥 쓴웃음만 지어 보였다. 진수 아저씨는 모르는 일이지만 사실 엄마는 3년 전 재혼을 했었다. 마을 사람들은 엄마가 2년간 집을 떠나 있었던 이유를 타지에 돈을 벌러 갔다 온 것으로 알고 있지만 엄마는 새로운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다시 마을로 돌아온 것이었다. 재혼한 상대가 사업에 실패한 모양이다. 모두들 엄마를 안쓰럽게 쳐다봤지만 실상을 아는 나로서는 엄마가 여간 달갑지 않았다. 예전과 다르게 서먹하게만 느껴졌다. 사실, 엄마도 엄마의 삶을 살아야지.. 하고 응원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건 서로 다른 공간에서 다시는 보지 않고 살아갈 거란 생각 때문이었지 이렇게 힘없이 돌아올 줄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덧 교도소 앞에는 저마다의 소중한 사람을 마중하러 나온 이들이 많아졌다. TV에서 여러 번 보던 장면이라 머릿속에 몇 번 그려 보긴 했지만 내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도 두부를 가지고 올 걸 그랬나?”


진수 아저씨가 웃으며 내 어깨를 감쌌다. 이윽고, 교도관이 철문을 열자 사람들이 하나둘 걸어 나오기 시작했다. 단 한 사람의 얼굴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진수 아저씨의 말이 맞았다. 여러 사람들 틈 속에서도 나는 단번에 아버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당신은 외형에서부터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진수 아저씨는 달려가 아버지를 꼭 껴안았다. 아버지 역시 감정이 솟구치는 모양인지 한동안 진수 아저씨를 안고 있었다. 이윽고 진수 아저씨가 나를 쳐다보며 손짓했다.


“상우야, 인사해라. 아버지다.”


“네. 그게.. 안녕하세요.”


순간 안녕하세요.라는 인사가 그렇게 어색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안부를 묻는 것이 맞는 걸까? 아버지 역시 어색한 듯 아무 말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한동안의 침묵을 깨트리려는 듯 머뭇거리던 아버지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래, 상우구나. 고맙다 와 줘서. 그리고 미안하다.”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아버지가 눈물을 보이시니 어찌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냥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하는 생각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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