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붕괴됐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_이슬아

by 손여는

악플보다 최악인 건 무플이다. 나는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작가 섭외 메일에 며칠째 회신이 없다. 메일을 전송한 것은 지난주 금요일. 주말에는 주말이라 쉬나 보다 했다. 월요일에는 월요일이라 조금 바쁠 수도.... 했다. 그러나, 어느새 화요일. 화요일까지 회신이 없다는 건 뭔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거다. 뭘까? 내 메일이 뭐가 그렇게 잘못된 것일까?


일을 하다보면 거절의 메일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건 그냥 거절과 다르다. 그야말로 무.응.답. 내가 돈을 빌려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공짜로 강연을 해 주십사 한 것도 아닌, 그저 평소 애독하던 소설의 작가를 문학 강연에 정당한 대우를 주고 초대하는 일이었다. 메일에 보수도 언급해 놓았고, 그 액수도 적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데 왜? 아무리 바빠도 형식적인 거절의 메일이라도 한 줄 보낼 수 있는 일 아닌가? 곰곰히 생각할수록 이해가 안 된다. 답장을 안 할 만큼 내 강연 섭외 메일에 문제가 있지 않고서야 이럴수는 없는 일이다.


하루종일 메일함을 드나들며 오지않은 답장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이건 뭐, 좋아하는 사람에게 카톡 읽씹을 당한 뒤 같다.


이번 무응답이 유난히도 더 쓰린 까닭은 내가 <일간 이슬아>의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완독한 뒤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인생'씩이나 바꿀 수 있다는 이메일 쓰기의 비법이 담긴 글이 책으로 발간 되기도 전에 벌써 읽었다. 한 회차씩 재미있게 읽으며, 이렇게만 쓰면 정말 앞으로는 모든 섭외에 실패가 없겠구나 했다. 그정도로 이슬아의 이메일 쓰기의 비법은 그야말로 완벽해 보였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 띠지


'내 섭외는 실패로 끝난 적이 없다'는 샛노란 띠지에 박힌 문구에 넘치는 기개. 이 책을 읽은자는 앞으로 이 띠지와 운명을 같이할 것만 같은 희망적인 메시지. 그런데... 그런 이메일 쓰기의 비기를 다 읽은 나는 하필, 그걸 다 읽은 후 처음으로 쓴 섭외 메일에서 대차게 까인 것이다.


나는 서둘러 책으로 발간된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를 주문했다. 책은 하루만에 도착했다. 사실 나는 섭외 이메일을 쓸 때 <일간 이슬아>의 메일쓰기 비법을 머리에 염두만 해뒀지, 상세한 기술을 직접 대입해서 쓰지는 않았다. 내 머리속에서 중요한 것은 섭외에, 돈에 대한 업급을 안 하는 무례한 사람이 많으니, 꼭 처음에 돈에 대해 밝히라는 것 정도였다.


오답노트를 펼치듯, 도착한 책을 펼쳤다. 그리고 그것에 대입해 내 섭외 메일의 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메일비법 다섯번째 비기. 한 끗이 다른 비장의 제목


내가 쓴 제목은 oo지역 oo강연 요청입니다. 였다. 업무 메일에 있어 최대한 담백하고 효율적으로 쓰기를 중시하는 나는 제목부터 틀려먹었던 거다. 다섯번째 비기. '한끗이 다른 비장의 제목' 에 따르면 나는 섭외에 있어서 특히나 중요한 비법인 '특별호명술'을 간과했다.

우리는 이메일로 인생을 바꾸기로 했다. 상사에게 혼나지 않는 이메일이랄지 무난한 이메일 정도에 만족하지 않고, 무려 이메일로 팔자를 고치겠다고 했다. 그러려면 한 방이 있어야 한다. 미지근한 상대의 가슴에 투명하고도 뜨끈한 펀치를 꽂을 줄 알아야 한다.

p.77.

이슬아는 반드시 설득하고 싶은 상대가 있다면, '특별 호명술'을 쓸 것을 권한다. '특별호명술'이란 수식어 + 이름으로 이루어진 제목의 한 기술이다.


한국 퀴어 역사에 한 획을 그은 김규진님께-인터뷰 요청 드립니다.


이처럼 상대의 이름 앞에 그를 특별하게 수식하는 말을 더하면 된다.


시리에게도 늘 존댓말을 말씀하시는 김창훈 교수님께-기말 과제 제출합니다.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공유해주신 다정한 박해원 대리님께-견적서 문의드립니다.

모두가 지나친 오탈자를 찾아내시는 레전드 편집자 해인님께-카드뉴스 시안 공유드립니다.


이슬아는 유명인 인터뷰 요청처럼 거창한 이메일이 아니더라도 위와 같이 평소 상대에 대한 애정어린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섬세한 이메일 제목을 제안한다.


그에 비해 내 제목은 너무 단도직입적이며, 무미건조하다. 섭외자에 대한 어떤 관찰력이나 애정도 드러나 있지 않다. 사방에서 강연 요청을 받는 작가라면, 내 메일 제목에서 어떤 특별함이나 끌림을 발견할 수 없는게 당연했다.


제목부터 틀려먹었지만, 본문에도 '돈'문제를 반드시 언급한다는 것만 생각하다가 '내마금지'를 지키지 않았다.


내마금지란 내용과 분량, 마감기한, 금액, 지급일을 말한다.


나는 행사 내용과 강연 시간을 적었고, 금액이 얼마인지 언급했지만, 언제까지 회신을 달라는 것과 돈이 실제로 언제 입금될지는 적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에 작가의 책을 읽었다는 것을 티내기 위해 소설 제목을 언급하며, 그 소설과 같이 만날 사람은 반드시 만나게 되어 있다고 믿는다. 작가님과 저도 꼭 만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마무리 짓고 있었다.


글만 보면 제법 훈훈한 것 같으나, 내가 언급한 소설은 스릴러 소설이었고 하필 비극적인 결말로 끝나는 소설이었다. 비극, 악연 이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인연이 나오는 소설이니, 결국 아직 만나지도 않은 작가와 나의 악연을 암시하는 무시무시한 마무리 멘트였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우선 나는 급했다. 당장 한 달 도 남지 않은 시간 안에 작가를 어떻게든 섭외해서 강연을 해야 했다. 그래서 이슬아의 이메일 쓰기 기술을 한 자 한 자 찬찬히 짚어가며, 실전에 사용할 여유가 없었던던 것이다.


너무 단도직입적인 내용인데다, 마지막에 하필 작가의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소설은 언급하며, 우리의 만남을 기약했다는 것이 치명타였다면 치명타 였겠다.


그런다한들, 작가 역시 이슬아의 이메일 열한번째 비기인 '빠고노더'를 하는 미덕을 보이지 못했다.


'빠고노더'는 나와 반대로 사양하는 이메일을 작성할 때 쓰는 기술이다.


빠(르게)

고(맙다고 인사한 뒤)

노(라고 대답하는 이유 설명)

더(좋은 기회로 만나 뵙기를 희망하기)


이슬아는 거절 메일은 품질 만큼이나 속도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수락할 경우 이틀 까지 시간을 들여도 되지만, 거절할 경우 담당자가 서둘러 다른 사람을 섭외할 수 있게 24시간 안에 거절 의사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다. 그런데 내가 섭외하려던 작가는 24시간이 아니라.... 5일이 지난 지금까지 일언반구도 없다.


수많은 섭외 메일이 넘치는 통에 단순히 내 메일에 회신하는 것을 까먹은 것일수도 있다. 뭐가 됐는 뒷맛이 쓰다. 재밌게 읽었던 작가의 글이 이제 조금 다르게 보인다. 작가가 나를 까먹었듯 이제그만 나도 작가를 놓아줘야 할 때다. 어쩌면 영영 오지 않을 이메일도 그만 기다리고 말이다.


이슬아의 이번 책은, 몇 백원을 추가하면 미니북도 하나 딸려온다.

<인생을 바꾸는 이메일 쓰기>에도 소개된 이야기장수 이연실 편집자와 함께 떠난 대만 여행기 책이다. 가볍게 읽기 좋고, 책 속에만 있던 편집자와 마케터, 그리고 이슬아와 그의 남편을 사진으로 만나보는 재미가 있다.

언제부턴가 신점을 보지 않는다. 신보다 원망스러운 게 나라서 그랬다. 운명의 장난같은 시련은 잊을 만하면 한 번쯤 슬쩍 다가왔으나, 내가 직접 싸지른 실수는 하루가 멀다 하고 겨드랑이에 식은땀이 흐르게 만들었다. 후회 좀 해본 자라면 실수가 새어나오는 곳이 대체로 주둥이와 손가락이라는 것쯤은 익히 알 것이다. 남 탓도 세상 탓도 못 하는 낭패의 순간마다 깨닫곤 했다. 인생의 많은 일들이 내 입과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p. 10. 프롤로그 中

일을 하다보면 특히나 말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는다. 인생은 실력이나 사실여부를 떠나 많은 부분 '말'과 '표정' 그러니까 '뉘앙스'로 좌지우지 되는 경우가 많다. 내 섭외 이메일이 단순 업무 메일로 봐서는 크게 잘못된 점은 없어 보이지만, 아마도 '뉘앙스'에서 뭔가 어긋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이슬아는 이메일에 '애정'이 기본으로 깔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화면 뒤에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메일을 작성하라고.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던 나는 그 부분을 간과한 것 같다.


이슬아의 책은 술술 읽혀서 여러권 읽었다. 읽을 때마다 '이런 것까지' 싶은 정도의 솔직함에 놀라고,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기다리지 않고 찾아 나서고, 이뤄나가는 추진력에 놀란다.


누워서 잘 익은 감이 알아서 입 안으로 떨어지기를 기도하는 나와는 정반대의 삶이다. 그래서 낯설기도하고, 어떤 부분은 살짝 거부감도 드는게 사실이다. 나는 너무 위대한 관종들에 대한 존경과 알레르기가 동시에 있는 사람이므로.


솔직히 시샘이 난다. 작가에 출판사 대표, 이제는 드라마 작가까지. 너무나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어느하나 요행으로 얻은 게 없다. 이슬아는 자신이 말 한대로 추진력있고, 용기있는 성정으로 자긴의 바람을 행동으로 완성해 나간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질이 있는지라, 하루 아침에 바뀔 자신은 없다. 그런데 이슬아의 책을 보면, 나도 뭔가 해봐야 겠다고 스멀스멀 용기가 올라온다. 그게 이슬아의 책이 인기 있는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세상엔 그냥 해버리면 좋은일 투성이야"


고민하는 친구에게 이슬아가 해준 응원을 오늘은 나에게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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