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마감이 닥쳐온다면...
마감형 인간의 비극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흔히 말하는 ‘마감형 인간’에 가까웠다. 문제가 생기면 최대한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다가 마감이 코앞에 닥쳐서야 겨우 움직이는 인간. 내 삶의 대부분,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덮어놓고 방치했던 것들이 결국 한꺼번에 터지고야 만다는 것이다. 때는 서른넷,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건강검진 결과를 통해 자궁에 작은 근종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발견했다. 꾸준한 추적 조사와 적절한 시술, 혹은 수술이 필요했지만 가뭄에 콩 날듯한 기간에 겨우 한 번 초음파를 하는 게 다였다. 물론 초음파 결과는 나날이 그 크기를 키워가고 있는 거대 근종에 대한 확인. 그마저도 몇 년 전의 일이다. 근종이 커질수록 외면하고 싶은 마음 또한 커졌고, 나는 감당하기 힘든 현실을 직면하기보다 하늘이 돕고 신령님이 돕는다는 천우신조에 기대는 쪽을 택했다. 존재감이 확실한 근종에 대한 불안 때문에 수없이 찾아본 후기에는 간혹 근종이 자연적으로 없어지기도 한다고 했다. 게다가 일단 폐경기가 되면 더 이상 커지지 않거나 크기가 알아서 작아진다고도 했다. 그때는 젊었기에 폐경기는 한참 멀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나는 아직, 멀기만 한 폐경기를 기다리기보다 근종이 내 안에서 눈치껏 사라져 주기를 바라며 그야말로 기적에 기대고 있었다. 그 후로는 주-욱, 내 안에서 야금야금 부피를 키워가며 세력을 넓혀나가고 있는 그것을 알면서도, 결코 모를 수 없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살아온 세월이 자그마치 10년. 결국 일이 터지고야 말았다.
최근 자궁근종으로 인한 극심한 빈혈을 겪었고, 이에 철분제를 처방받아 몇 달간 복용했었다. 매일 같이 철분제를 한 알씩 먹어야만 어지럼증을 겨우 이길 수 있었다. 겨울이 되고 날이 추워지자 어지럼증은 더 심해졌고, 그런 날은 철분제를 두 알씩 복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장기간 철분제에 의지한 지 6개월이 지나갈 무렵, 언제부터인가 배가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오르던 배는 스치듯 봐도 모를 수 없는 예사롭지 않은 크기였다. 그나마 겨울이라 옷으로 가릴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 눈은 속인다 한들 스스로를 속일 수는 없는 법. 비정상적으로 커진 배를 보며 이 정도면 임신이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초산으로는 한참이나 늦은 나이인 마흔 둘, 이 나이에 정말 임신이 되었다면 차라리 다행이었을 일. 만약 그러했다면, 노심초사 내 결혼을 아직도 포기 못하고 빌고 또 비는 우리 엄마는 경사났다며, 춤을 추며 온 동네를 누비고 다녔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기억을 되짚어봐도 그럴만한 일이라고는 안타깝게도 전혀 없었다. 스스로 기억에도 없는 사고(?)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임산부 모양의 배. 그때라도 움직였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누구인가. 인간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 법. 나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 지극히 나답게 모르쇠로 일관했다. 마침, 최근 인생 최고의 몸무게를 갱신했던지라 그 정도 살이면 배가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고 스스로 위로를 찾는 지경에 다다랐다. 그런 나를 더이상은 못 참아주겠다는 듯이 아랫배는 하루가 멀다하고 뭉치고 딱딱해져 가더니, 며칠 전, 마침내 빵! 말 그대로 터져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