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없으려나
르완다에서 살다 보면 한국에서는 당연히 있는 것이라 여겼던 것들을 볼 수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한 부재는 르완다가 아직 사회 경제적으로 발전되지 못하여 그런 경우도 있고, 정치 문화적인 특성일 때도 있습니다.
우선 르완다에는 기차, 전철, 고속도로가 없습니다. 현재 가장 큰 도시이자 수도인 키갈리에서도 왕복 합하여 2차선이 가장 큰 도로인 르완다에서 가까운 미래까지는 기대하기 어려운 존재들입니다. 따라서 르완다 내 도시 간 이동은 전적으로 왕복 1차선씩인 국도에 의존하고 있는데, 인가와 상점들이 도로에 근접해 있어서 운전 시 도무지 속도를 낼 수가 없습니다. 또한, 넓지 않은 국도를 오토바이 택시와 자전거들과 나누어 써야 되고, 수시로 보행자들이 건너 다니는 바람에 다른 도시에 가기 위하여 국도를 타는 경우 상당한 스트레스를 각오해야 합니다. 이 와중에 요즘에는 경찰의 과속 카메라 단속까지 늘었습니다. 시내 교통은 아직 오토바이 택시가 주력인데, 이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가기 위하여 차량들 사이 앞뒤 혹은 좌우의 빈틈을 수시로 파고드는 데다가, 헬멧 외에는 안전장구가 없는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들과 승객들이 신경 쓰여서 시내 운전 역시 유쾌한 일은 아닙니다.
르완다에는 공중 화장실도 없습니다. 수도 키갈리마저도 그리 넓지 않은 편이라 이동 중 화장실을 이용할 일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처럼 지하철과 공원 화장실이 없고 도로변 임시 화장실도 없으니 막상 급한 상황에 처하게 되면, 카페나 호텔을 찾아 들어가야 됩니다. 따라서 심한 과민성 대장 증상을 달고 사는 저는 집이나 회사에서 화장실에 들려 볼 일을 미리 해결해 놓지 않으면 절대로 밖으로 나서지 않습니다. 저처럼 외국인들이나 르완다 내 부유층들은 카페나 호텔을 이용할 수 있지만 서민들은 대책이 없습니다. 여자들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모르겠고, 남자들은 지나가다 풀밭이나 나무 밑 아무데서나 볼일을 봅니다. 특히 오토바이 택시 운전사들이 이런 짓을 많이 하는데, 이들은 뒤에 여성들이 있거나 말거나 상관하지 않고 볼일을 봅니다. 저희 집사람도 도로 바로 옆 수풀의 나무 밑에서 볼 일을 보거나 볼일을 끝내고 돌아서서 지퍼를 올리며 도로로 올라오는 택시 운전사들을 보고 기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르완다에는 후불 신용카드도 없습니다. 신용카드라는 게 있기는 하지만, 통장에 잔고를 유지해야 결제가 되는 구조라 엄밀한 의미에서는 직불 혹은 선불카드인 셈입니다. 이는 금융산업이 발달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정부 채권마저 몇 달씩 밀리는 등 르완다가 신용이 약한 사회인 게 신용카드가 보급되기 힘든 주요 원인입니다. 이런 상황이라 저도 법인카드를 월초에 많이 사용한 달은 가끔 신용카드 결제를 시도하다 승인 거부당할 때가 있습니다. 한국 같으면야 신용카드 결제를 시도하다 거부당하면 신용 불량자로 오해 받겠지만, 결제 시스템 오류가 많고 잔액 유지 문제가 있는 르완다에서는 '승인 거부'가 흔한 일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도 르완다 상류층들은 신용카드를 많이 사용합니다. 슈퍼에서 우리 돈 2 ~ 3천 원에 해당하는 물건을 사고도 당당하게 내밀거든요.
르완다에는 시간 개념도 거의 없습니다. 3년 반 이상 살면서 제가 수많은 약속을 해봤지만, 약속 시간 전에 나타나 저를 기다리는 인간은 아직 한 명도 못 봤습니다. 약속시간 정시에 맞춰 나타나는 인간도 소수이고, 대개는 10분 20분 늦는 것을 예사로 여깁니다. 마찬가지로 회사의 업무 목표 일정을 어기는 일도 수시로 발생합니다. 분명히 오늘까지 해놓으라고 지시해놨는데 독촉하지 않으면 업무 완수는커녕 어느 만큼 했는지 진도 보고도 없습니다. 약속은 했으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사유가 발생했으니 약속 상대가 이해해줘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변명입니다. 약속을 못 지키는 데 대해 미안해하느냐고요? 절대로 아닙니다. '정당한 사유가 있어서 늦었는데 뭘 어쩌라는 거냐' 하는 심사가 대부분이거든요.
르완다에 없는 것 중 좋은 것 하나는 르완다 사회에는 남녀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인 배려가 반영되어 있기는 하지만, 여성이 장관직의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저희 회사를 봐도 여직원 비중이 거의 50%에 가깝습니다. 어떠한 건물이든지 경비와 청소인력에는 남자 여자가 골고루 섞여 있고, 국세청이나 개발청 같은 공무원 사무실에 가보면 오히려 여성 인력이 더 많아 보입니다. 심지어 집 짓는 것 같은 막노동을 하는 인력에도 상당수가 여성인데, 이들은 등짐 지고 돌 깨고 하는 힘쓰는 일을 남자 노동자들과 똑같이 합니다. 여성 차별이 없는 것은 하늘과 거리가 깨끗한 것과 함께 르완다가 한국보다 분명히 나은 점이기도 합니다.
2020년 5월 20일
묵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