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르완다 사람들

착한 심성 또는 공동체 의식

by 묵묵

내가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이방인으로서 살아가면서 간혹 느끼는 감정은 많은 르완다인들이 '아직은 착하고 덜 이기적이다'라는 것이다. 물론 자본주의에 심하게 물들은 한국이나 다른 선진국들과 비교하여 경제개발 자체가 늦은 르완다 사회에 이기주의가 덜 만연하다고 주장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를 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르완다 사회에서는 전반적으로 자기 것을 챙기려고 안달인 대신에 자기가 소속한 공동체 속의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려는 모습이 눈에 더 잘 뜨이는 게 사실이다. 어쩌면 착하다고 해주기보다는 '덜 악착같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주변에서 이들 착한 르완다인들이 타인을 배려하거나 돕는 모습을 관찰하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타인을 배려하는 첫 번째 예는 운전자들의 보행자에 대한 양보를 들 수 있다. 여기도 중앙선 침범이나 반대 차선으로 달리기 등 험한 운전이 흔하고, 아무데서나 유턴을 하거나 심지어 주도로에서 후진을 하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으로 상대 운전자들을 당황시키는 못된 운전자들이 많다. 하지만 보행자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깍듯한 양보 정신을 보이는 운전자들이 꽤 많다. 르완다에는 수도인 키갈리마저도 도로에 신호등이 흔하지 않아 대부분 경찰의 수신호에 의존하거나 보행자가 알아서 길을 건너야 한다. 이때 보행자들이 횡단보도 앞이나 보도 표지가 없는 도로 한쪽에 서있으면 차를 세우고 보행자가 길을 건너도록 알아서 수신호를 해주는 운전자가 반드시 나타난다. 내 경우 아무리 길어도 1분 이상 기다린 적이 없는데 신호등이 없는 한국의 이면 도로에서는 상당히 만나기 힘든 경험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또 친구나 이웃이 어려움에 빠지면 자기 능력을 넘어서까지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신기한 사람들이다. 물론 한국에도 선한 기부자가 많고 어려운 가운데 타인을 돕는 착한 사람들이 있지만, 이들은 신문이나 방송에 나올 정도로 칭송을 받게 되는 흔치 않은 사례로 인정된다. 하지만, 여기 르완다에서는 주변에서 이런 과도한 이웃 돕기의 사례가 상당히 빈번하다. 일례로 우리 회사에서 같이 근무하는 현지인 직원 하나가 작년에 큰 병에 걸려서 상대적으로 선진국인 이웃나라 케냐에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 이 직원은 살아보겠다고 무작정 케냐행을 선택했는데 입원하여 치료를 받다 보니 자기의 재산과 소득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큰 병원비가 나와버렸다. 이를 전해 들은 동료들은 자발적으로 기부금을 걷어 케냐로 보냈는데 그래도 치료비가 모자랐다. 그러자 이번에는 일부 직원들이 자기 월급을 가불 하여 그에게 보내기 시작했다. 이런저런 자기 사정 때문에 이미 가불을 해서 회사 규정상 추가 가불이 안 되는 직원들은 특별한 경우이니 예외로 인정해달라고 조르기까지 했다. 많지 않은 월급을, 그마저도 어려운 자기 형편 때문에 가불 했기에 다가오는 몇 달 동안은 자기 생활의 곤란함이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더 힘든 상황에 처한 동료를 돕겠다고 추가 가불을 요구했던 것이다.


이 외에도 내가 겪거나 들은 타인을 배려하는 사례들은 더 있다. 시골에서 사고로 소를 몇 마리 잃은 이웃을 위해 이웃 농부들이 나서서 소를 한 마리씩 기부하는 바람에 원래 소를 잃은 농부는 사고 전보다 더 많은 소를 갖게 된 경우도 있다. 르완다에는 사회를 위해 직장인의 급여에서 강제로 공제하는 공적 공제도 많다. 국가 펀드를 운영한다고 급여에서 일부를 떼고, 하층민들의 지역의료보험조합을 지원해야 된다고 추가로 또 뗀다. 그래도 누구 하나 불평이 없다. 괜찮냐고 물어보면 좋은 뜻이니 참여하는 게 당연하다는 시원한 대답이 돌아온다. 일상생활에서도 르완다인들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은근히 배어 있다. 길에 떨어진 파스를 주워 나에게 돌려주기 위해 지나가던 길을 돌려 뛰어온 꼬마도 있었고, 무거운 짐을 지고도 나에게 길을 양보하겠다고 도로로 내려서 비켜주려 한 아줌마도 있었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내가 상대를 따뜻하게 대하면 나중에 내가 힘들 때 그도 나를 따뜻하게 대할 것이라는 낙천적인 마음과 어울려 르완다 사회를 제법 밝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만나면 마치 몇 년이나 서로 헤어졌던 사람들처럼 끌어안고 뽀뽀하며 요란하게 인사하고, 남녀 사이에도 자연스러운 스킨십으로 어울리는 행동 역시 르완다인들이 같은 공동체에 속한 타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그들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지가 외부로 표출되는 행동일 것이다. 이러니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못 사는 르완다인들이 직장에서마저 히히덕거리며 명랑하게 살 수 있게 된 게 아닐까? 이러한 르완다인의 타인에 대한 배려는 심성이 착해서일 수도 있고, 나쁘게 봐서 살아남기 위하여 공동체 속에서 외떨어지지 않고 타인과 어울리려다 보니 생긴 자연스러운 습성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지 타인에 대한 배려라는 좋은 결과를 낳은 원동력이 되었다면 이들의 심성을 '그저 착하다'라고 인정해도 별 무리가 없을 듯하다.


2020년 5월 4일

묵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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