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어떤 경계 위에서 살아간다. 그 경계는 때로는 또렷하게 윤곽을 드러내고, 때로는 안개처럼 흐릿해진다. 어떤 날은 철벽처럼 견고하게 느껴지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손끝만 스쳐도 산산이 부서질 것처럼 위태롭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그 경계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깊이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저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보이지 않는 선들을 넘나들며 조용히 순응해 간다.
우리를 조율하는 것은 ‘표준’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시계다. 그 시계는 말없이, 그러나 철저하게 우리의 삶 전체를 관장한다. 언제 일어나고, 언제 식사하며, 언제 일하고, 언제 슬퍼하고, 언제 사랑해야 하는지를 정해준다. 어떤 신체를 가졌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떤 기억을 남겨야 하는지, 심지어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하는지까지도, 이 시계는 조용히 명령을 내린다.
우리는 그 시계의 박자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 믿으며, 그 흐름에서 벗어나는 이들을 향해 '이상하다'라는 낙인을 찍는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외면하고, 다수의 기준에서 벗어난 삶을 낯설어한다. 그러나 정작 묻지 않는다. 그 시계가 규정한 '정상'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얼마나 많은 가능성과 감정, 고유한 존재들이 조용히 사라졌는지를.
그러나 세상에는 그 시계의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엄밀히 말하면 들을 수는 있지만,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다른 리듬으로 숨 쉬고, 다른 색채의 감정을 품고 있으며, 전혀 다른 속도로 시간이 흐른다. 그들은 경계 위에서 살아간다. ‘정상’과 ‘비정상’, ‘안’과 ‘밖’, ‘우리’와 ‘타인’—그 모든 이분법적 경계들 위에서,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한 채, 두 세계의 균열 사이를 조용히 건너고 있는 존재들이다.
경계에 선다는 것은 단지 물리적 위치에 대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이 요구하는 모습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고통의 선언이다. 반복되는 좌절, 언어화되지 않는 소외, 의미 없는 타협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하루는, 다른 이들에게 당연한 것들이 얼마나 큰 노력과 희생 속에서 획득된 것인지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삶이다. 시간을 지키는 일, 감정을 조절하는 일, 사회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자기 정체성을 표현하는 일조차도 그들에게는 쉽지 않은 과제가 된다.
하지만 경계 위에 선다는 것은 동시에 특별한 자리에 선다는 뜻이기도 하다. 경계에 선 사람들은 두 세계의 모습을 동시에 본다. 중심의 허상을 뚫어볼 수 있는 눈을 가지며, 주변의 진실을 감지해 내는 섬세한 감각을 지닌다. 이들은 기존의 기준에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언어로 세계를 다시 쓴다. 피부를 넘어 감각하고, 언어를 넘어 교감하며,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감정의 진실을 끌어올린다. 시계의 밖에도 시간이 존재하고, 거울의 이면에도 진실이 있음을, 고통이 없는 존재도 의미 있음을 발견해 낸다.
그들은 사회의 주변에서 중심을 바라본다. 그리고 깨닫는다. 그 중심이 얼마나 편협하고 자의적인지, ‘정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구에 가까운 기준인지. 그들의 존재 자체가 질문이 된다. 정상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 정의를 누가 내릴 수 있는가? 정상이 아니라는 이유로 반드시 교정되어야만 하는가?
경계에 선 이들은 처음엔 세상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약물을 복용하고, 치료를 받고, 적응 훈련을 받으며 ‘정상’에 가까워지려 한다. 때때로 그런 노력은 겉보기에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들은 알게 된다. 자신을 억지로 바꾸는 것이, 기준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것이 진정한 삶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오히려 자신만의 리듬으로 존재할 때, 세상과 맺는 관계가 더 진실하고 충만해진다는 사실을.
이들은 대안을 창조해 낸다. 기존의 언어를 넘어선 새로운 말, 기존의 시간 구조를 벗어난 새로운 흐름, 기존의 관계 모델을 전복하는 새로운 연결 방식을 만든다. 그들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창조이며, 그들의 삶은 하나의 선언이다. 다름은 결코 틀림이 아님을, 개별성은 병이 아닌 축복임을, 경계는 분리가 아닌 새로운 연결의 이름임을 증명한다.
그래서 이들은 경계에 계속 머문다. 안착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의심하며, 변화와 창조의 가장자리에서 세상의 중심을 흔들고 또 묻는다. 그들의 존재는 하나의 지속적인 물음표다. 우리가 ‘당연하다’라고 여기는 모든 것들에 대한 본질적 질문이자, 새로운 가능성을 향한 열린 문이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어느 지점에서는 경계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한 가지쯤은 표준에서 벗어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 차이가 미미하거나 드러나지 않기에 문제시되지 않을 뿐, 그것이 조금만 더 크게, 더 눈에 띄게 발현된다면 우리 역시 쉽게 경계의 위치로 밀려날 수 있다. 따라서 경계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곧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그들의 고통은 우리의 잠재된 고통이며, 그들의 발견은 우리의 잠재된 가능성이다.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하는 일이며, 그들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진짜 모습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경계에 선 이들이 존재하기에, 세상은 더 넓어지고 더 다층적이며, 더 아름답고 생생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다. 그들이 있기에 우리는 '정상'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날 수 있고, ‘표준’이라는 족쇄를 끊을 수 있으며, ‘다름’이라는 선물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들은 경계에서 산다. 그리고 바로 그 경계가, 우리 모두를 새로운 세상으로 이끄는 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