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전 8시 32분, 성모병원 응급실에 세 대의 구급차가 연달아 도착했다. 첫 번째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채 가시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 구급차가 뒤따라 들어왔다. 응급실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곧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 세 명의 환자 모두 즉시 수술이 필요한 위급한 상태였는데, 사용이 가능한 수술실은 단 하나뿐이었다. 다른 수술실들은 이미 진행 중인 수술로 막혀있었고, 응급 추가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첫 번째 구급차에서 내린 사람은 8세 여자아이 김수진이었다. 등굣길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머리에 심각한 외상을 입었다. 구급대원들이 급하게 들것을 밀며 응급실로 들어왔고, 아이의 어머니 박영희 씨가 혈색을 잃은 채 뒤따랐다. 수진이의 작은 얼굴은 산소마스크에 가려져 있었고, 머리에 감긴 붕대는 이미 붉은 피로 젖어 있었다.
"우리 수진이, 우리 수진이 좀 살려주세요."
박영희 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침 7시 30분, 청소 일을 나가기 전 딸을 깨워 따뜻한 아침밥을 차려주고 학교에 보냈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우리 딸."
볼에 가볍게 뽀뽀를 건넨 그 순간은, 고작 1시간 전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상상조차 못 했다. 이토록 끔찍한 일이 벌어질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박영희 씨는 의료진의 말을 이해하려고 애쓰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실상 그녀의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두 번째 구급차에서는 55세 남성 박철호 씨가 실려 나왔다. 회사에서 회의를 준비하던 중 갑자기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 것이었다. 급성 심근경색이었다. 동료들이 즉시 119에 신고했고, 구급대원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의식이 흐릿한 상태였다. 심전도 모니터에서는 심각한 부정맥이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구급차 안에서 심폐소생술이 두 차례 시행되었지만,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박철호 씨의 아내 김미숙 씨는 급한 연락을 받고 서둘러 병원으로 달려왔다. 3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이 위독하다는 소식에 머릿속이 하얘졌다. 하지만 그녀는 간호사 출신이었기 때문에 의료 현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감정적으로 흔들리기보다는 차분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남편의 심전도를 보며 상황의 심각성을 직감했지만, 다른 가족들 앞에서는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다.
세 번째 구급차에는 30세 남성 최민수 씨가 실려 있었다. 건설 현장에서 3층 높이의 비계에서 떨어진 것이었다. 복부 내출혈이 심각한 상태였고,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의식은 있었지만, 극심한 통증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구급대원이 수액을 투여하고 있었지만, 출혈량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복은 피로 젖어 있었고, 얼굴은 점점 창백해졌다.
"민지한테…… 민지한테 연락해 주세요……"
최민수 씨가 간호사에게 약혼자의 연락처를 어렵게 말했다. 그는 내년 봄에 결혼을 앞두고 있었는데, 신혼집 마련을 위해 위험한 고소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벌어서 안전한 직장으로 옮기려던 참이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약혼자 걱정만 하고 있었다.
응급의학과 과장 이정민은 15년간 응급실에서 일해온 베테랑 의사였다. 수많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결정을 내려왔지만, 이번만큼 명확한 기준이 없는 상황은 처음이었다. 세 환자의 상태를 신속하게 파악하며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의 이마에는 어느새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김수진 양의 CT 스캔 결과를 보니 뇌출혈이 심각했다. 뇌압이 계속 상승하고 있어서 60분 이내에 응급 개두술을 시행하지 않으면 뇌사에 빠질 위험이 컸다. 하지만 8세 아이의 뇌수술은 매우 까다로웠다. 성공률은 60% 정도였고, 설령 살아도 심각한 후유증이 남을 가능성이 컸다. 어린아이의 뇌는 성인보다 연약해서 수술 자체가 위험부담이 큰 편이었다.
박철호 씨는 급성 심근경색으로 심장의 주요 혈관이 막힌 상태였다. 응급 심장 수술로 막힌 혈관을 뚫어주면 80% 확률로 생존할 수 있었다. 하지만 1시간 안에 수술하지 않으면 심장 근육이 괴사하면서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었다. 상대적으로 수술 시간도 짧고 성공률도 높은 편이었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회복도 빠를 것으로 예상되었다.
최민수 씨는 복부 다발성 장기 손상으로 내출혈이 계속되고 있었다. 즉시 개복수술로 출혈 부위를 찾아 지혈해야 했다. 빨리 수술하면 70% 정도 생존 가능성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연될수록 출혈량이 늘어나 생존율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었다. 젊은 나이라서 회복력은 좋지만, 손상 부위가 광범위해서 수술이 복잡할 것으로 보였다.
문제는 수술실이 하나뿐이라는 점이었다. 세 환자 모두 그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위급한 상태였다. 응급실 전체에 긴장감이 돌았다. 간호사들도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다. 평소 차분하던 응급실이 갑자기 전쟁터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20년 경력의 수간호사 정미영은 8세 딸을 키우고 있어 김수진 양을 보면서 자신의 딸이 떠올랐다. 만약 자기 딸이 저 상황이라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딸만은 살려달라고 빌지 않을까 싶었다. 그녀는 수진이의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음이 아팠다. 같은 엄마로서 그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 수 있었다.
반면 신규 간호사 김희진은 의학적 합리성을 중시했다. 감정적 판단보다는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수술 성공률이 가장 높은 박철호 씨를 먼저 수술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입장이었다. 그녀는 간호학과에서 배운 의료윤리 원칙을 떠올리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박철호 씨는 대기업 부장으로 병원의 VIP 환자였다. 그의 회사는 병원과 여러 사업에서 협력 관계를 맺고 있었고, 개인적으로도 병원 발전 기금에 상당한 기부를 한 적이 있었다. 경영진에서는 그를 우선 치료하는 것이 병원에 도움이 되는 선택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현실적 고려 사항들을 공개적으로 논의할 수는 없었다.
의료진의 양심과 병원의 이익, 환자의 생명권과 사회적 지위 사이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다. 이정민 과장은 이 모든 요소를 종합하면서도 의사로서의 윤리적 판단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그는 의과대학 시절 배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떠올리며 괴로워했다.
"과장님, 빨리 결정하셔야 합니다."
정미영 수간호사가 조급하게 말했다. 세 환자 모두 시간이 지날수록 상태가 악화하고 있었다. 김수진 양의 동공 반응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고, 박철호 씨의 부정맥이 더 심해졌으며, 최민수 씨의 혈압은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모니터에서 울리는 경보음들이 응급실을 더욱 긴박하게 만들었다.
이정민 과장은 15년간 의사로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무력감에 휩싸였다. 의학은 생명을 구하는 학문이라고 배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를 포기해야 하는 잔혹한 선택을 강요받고 있었다. 누구의 생명이 더 소중한가? 8세 아이의 미래인가, 55세 가장의 책임인가, 30세 청년의 사랑인가? 그의 손이 떨렸다.
응급실의 시계가 8시 45분을 가리켰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정민 과장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지막으로 세 환자의 상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 2.
김수진 양의 어머니 박영희 씨는 남편을 잃고 홀로 딸을 키우고 있었다. 2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그녀에게 수진이는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청소 일을 나가기 전까지 딸의 아침을 정성스럽게 챙기는 것이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수진이는 엄마의 자랑이었다.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렸다. 특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벽면에 붙인 수진이의 그림들이 작은 집을 환하게 만들어주었다. 크레파스로 그린 무지개, 색연필로 그린 나비, 물감으로 그린 해바라기들이 낡은 벽지를 덮고 있었다. "엄마, 나중에 커서 화가가 되어서 엄마한테 예쁜 집 사줄 거야"라고 말하던 딸의 모습이 박영희 씨의 눈앞에 선했다.
"선생님, 제발 우리 수진이를 살려 주세요. 제가 뭐든지 할 게요. 제 목숨을 대신 가져가셔도 돼요."
박영희 씨가 이정민 과장의 옷깃을 붙잡고 애원했다. 그녀의 손톱은 청소 일 때문에 거칠어져 있었지만,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강인함이 담겨 있었다. 그녀의 절박함이 응급실 전체에 전해졌지만, 그 감정적 호소가 오히려 의료진에게는 부담이 되었다. 합리적 판단을 흐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철호 씨는 대기업에서 30년간 성실하게 일해온 모범적인 직장인이었다.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서 부장까지 올라온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회사에서도 인정받는 인재였고, 후배들에게는 존경받는 선배였다. 가정에서도 자상한 아버지이자 든든한 남편이었다. 주말이면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가거나 아내와 영화를 보러 가는 것이 그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그에게는 대학생 아들과 고등학생 딸이 있었다. 아들은 의대를 준비하고 있었고, 딸은 피아노를 전공하고 싶어 했다. 두 아이 모두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고, 박철호 씨도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했다. 퇴직 후에는 아내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젊은 시절 함께하지 못한 시간을 보상하려는 계획도 세워두었다. 유럽 여행 팸플릿을 모아두며 "은퇴하면 한 달씩 천천히 돌아보자"라고 아내와 약속했었다.
김미숙 씨는 남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간호사 출신인 그녀는 의료진을 원망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환자들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30년 부부생활을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는 간절함이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의 맥박을 확인하며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했다.
"여보, 괜찮을 거야. 우리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잖아."
그녀는 남편에게 속삭였지만, 정작 자신이 더 위로받고 싶었다. 아이들의 결혼도 봐야 하고, 손자 손녀들도 돌봐야 하는데, 이렇게 먼저 갈 수는 없다고 마음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그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였지만, 남편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최민수 씨는 지방 농촌 출신의 성실한 청년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더 나은 기회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건설 현장에서 3년간 일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위험한 고소 작업도 마다하지 않았고, 야근과 특근도 자청해서 했다. 목표는 명확했다. 충분히 돈을 모아서 안전한 직장으로 옮기고,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었다.
약혼자 김민지 씨와는 5년간 사귀었다. 그녀는 작은 회사의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민수의 성실함과 따뜻한 마음에 반해 교제를 시작했다. 두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서로를 격려하며 미래를 준비해 왔다. 내년 봄 결혼을 앞두고 작은 전셋집도 구해놓았고, 가구도 하나씩 장만해 가고 있었다. 지난 주말에는 함께 혼수용 이불을 사러 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김민지 씨는 회사에서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급히 달려오는 중이었다. 지하철 안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다. 핸드폰을 꽉 쥐고 있는 손이 떨렸다.
"민수 씨, 제발 아무 일 없어야 해. 우리 약속했잖아. 행복하게 살기로 했잖아."
그들에게는 이제 막 행복이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결혼 준비물 목록이 적힌 노트가 그녀의 가방 안에 들어있었다.
이정민 과장은 15년간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수많은 가족의 절망과 희망을 봐왔다. 그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모든 환자 뒤에는 그들만의 애절한 이야기가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의학적 판단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렸다. 정미영 수간호사는 개인적 경험 때문에 김수진 양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수진이는 아직 인생을 시작하지도 못했어요. 앞으로 살날이 70년도 넘게 남았는데, 이렇게 죽게 놔둘 수는 없어요. 그 아이가 자라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세요."
김희진 간호사는 반대 의견이었다.
"하지만 수술 성공률을 보면 박철호 씨가 80%로 가장 높아요. 의학적으로 가장 확실한 선택을 해야 하지 않을까요? 감정에 휘둘려서 더 나쁜 결과가 나올 수도 있어요. 확실한 한 명을 살리는 것이 더 윤리적이에요."
마취과 의사도 의견을 개진했다.
"최민수 씨도 70% 생존율이니까 나쁘지 않은 편이에요. 그리고 30세라는 나이를 고려하면 회복 속도도 빠를 거고요. 젊은 생명을 우선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앞으로 40년은 더 살 수 있는 나이잖아요."
응급실 레지던트는 현실적 관점을 제시했다. 그러나 목소리를 낮추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박철호 씨는 VIP 환자잖아요. 병원으로서도 고려해야 할 부분이 있고…… 게다가 수술 시간도 가장 짧아서 다른 환자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어요."
이런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 동안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세 환자의 상태는 점점 악화하고 있었다. 김수진 양의 뇌압이 더 올라가고 있었고, 박철호 씨의 부정맥이 심해지고 있었으며, 최민수 씨의 혈압은 위험 수준까지 떨어졌다. 각각의 모니터에서 울리는 경보음들이 응급실을 더욱 긴박하게 만들었다.
병원 경영진에서는 조용히 압력을 넣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박철호 씨를 우선 치료하는 것이 병원에 유리하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그의 회사와의 관계, 그동안의 기부금, 앞으로의 협력 관계를 고려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정민 과장은 그런 압력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의사로서의 양심과 윤리가 그를 지배하고 있었다.
"과장님, 정말 빨리 결정하셔야 해요!"
간호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김수진 양의 동공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뇌압이 더 올라간 증거였다. 몇 분 이내에 뇌사 상태에 빠질 위험이 커졌다. 어린아이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다.
동시에 박철호 씨의 심전도에서도 위험 신호가 나타났다. 심실세동이 시작될 조짐이 보였다. 최민수 씨는 의식마저 잃어가고 있었다. 세 명의 생명이 동시에 벼랑 끝에 내몰린 순간이었다. 응급실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이정민 과장은 깊게 숨을 내쉬었다. 15년간 쌓아온 경험과 의학적 지식,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모두 동원해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었다. 응급실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세 환자의 기록을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 3.
오전 8시 50분, 이정민 과장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응급실 전체가 숨죽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김수진 양의 어머니는 두 손을 모으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고, 박철호 씨의 아내는 남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최민수 씨는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도 약혼자의 이름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응급실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박철호 씨부터 수술하겠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응급실에 흘렀다. 이정민 과장은 의학적 근거를 신속하게 제시했다. 그의 목소리는 떨리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다.
"심근경색 환자의 수술 성공률이 80%로 가장 높고, 수술 시간도 2시간 정도로 비교적 짧습니다. 수술이 빨리 끝나면 나머지 두 환자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박영희 씨가 무너져 내렸다. 무릎이 바닥에 닿으며 절규했다.
"안 돼요! 우리 수진이가 먼저예요! 아이가 더 급하다고요!"
그녀는 의료진의 옷을 붙잡고 울부짖었다. 손톱자국이 하얀 가운에 자국을 남겼다.
"제발요, 다시 생각해 보세요. 우리 수진이는 아직 8살밖에 안 됐어요. 살날이 너무 많이 남았다고요!"
다른 간호사들이 박영희 씨를 말리려 했지만, 어머니의 절규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이정민 과장의 마음도 흔들렸다. 정말 이 결정이 옳은 걸까? 8세 아이를 포기하는 것이 의사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일까? 그는 잠깐 눈을 감고 숨을 들이마셨다.
박철호 씨가 수술실로 이송되기 시작했다. 침대의 바퀴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김미숙 씨는 남편의 손을 마지막으로 꽉 잡으며 말했다.
"여보, 꼭 살아서 나와. 우리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어."
박철호 씨는 의식이 흐릿한 상태에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입술이 작게 움직였다. "미안해"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수술실 문이 닫히자, 응급실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이제 김수진 양과 최민수 씨는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둘 다 2시간을 버틸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았다. 이정민 과장은 최대한 빨리 응급처치를 지시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수술뿐이었다.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수액을 교체하고 모니터를 확인했다.
오전 9시 10분, 김수진 양의 상태가 더욱 심각해졌다. 뇌압이 위험 수준까지 올라가면서 동공 반응이 거의 사라져갔다. 모니터의 경보음이 더욱 빨라졌다. 박영희 씨는 다시 의료진에게 매달렸다.
"제발요, 다른 분 수술은 중단하고 우리 수진이를 구해주세요. 아이가 죽어가고 있어요!"
하지만 이미 시작된 수술을 중단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되면 박철호 씨도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이정민 과장은 깊은 딜레마에 빠졌다. 지금이라도 결정을 바꿔야 할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두 명 다 잃을 수도 있었다.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렀다.
정미영 수간호사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과장님,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는 건 어떨까요? 인근 대학병원에 연락해 보니 수술실이 비어 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이송 과정에서 환자가 더 위험해질 수도 있었다. 특히 김수진 양 같은 뇌 손상 환자는 이송 중 사망할 위험이 컸다. 구급차의 진동과 이동 시간이 치명적일 수 있었다.
오전 9시 30분, 최민수 씨의 약혼자 김민지 씨가 병원에 도착했다. 숨을 헐떡이며 응급실로 뛰어온 그녀는 연인의 상태를 확인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얼굴이 창백해지고 혈압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으며, 의식도 거의 없는 상태였다. 그녀의 손이 떨렸다.
"민수 씨, 정신 차려! 우리 결혼 준비도 다 끝났잖아!"
김민지 씨가 민수의 손을 잡고 간절히 말했지만, 반응이 없었다. 그의 손은 차갑고 축축했다. 그녀는 의료진에게 빨리 수술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지금 다른 환자 수술 중이라 순서를 기다려야 한다"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순서라니요? 그 순서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김민지 씨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5년을 사귀면서 이렇게 힘들게 결혼을 준비했는데, 이제 와서 이럴 수는 없어요! 저희도 살 권리가 있잖아요!"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의료 자원의 한계 앞에서 개인의 절박함은 무력했다. 간호사들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응급실에는 세 가족의 서로 다른 절망이 공존하고 있었다. 박철호 씨의 가족은 수술이 잘 되기를 기도하고 있었고, 김수진 양과 최민수 씨의 가족은 기다림의 고통을 겪고 있었다. 모두가 피해자였지만, 동시에 서로에게는 경쟁자이기도 했다.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오전 10시, 드디어 심장외과 의사가 출근했다. 박철호 씨 수술에 투입되면서 수술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1시간은 더 걸릴 예정이었다. 김수진 양과 최민수 씨가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이정민 과장은 시계를 보며 불안해했다.
이정민 과장은 새로운 결정을 내렸다. 김수진 양을 다른 병원으로 이송하기로 한 것이었다. "8세 아이를 더 이상 위험에 방치할 수는 없다"라는 판단이었다. 인근 대학병원에 다시 연락해 보니 신경외과 전문의가 대기하고 있다고 했다.
구급차가 다시 준비되었고, 김수진 양이 이송되었다. 박영희 씨도 함께 갔다. 떠나면서 그녀는 의료진을 원망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그 시선이 모두의 가슴을 찔렀다.
"처음부터 우리 수진이를 먼저 수술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예요. 만약 우리 수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남은 사람은 최민수 씨뿐이었다. 그의 상태는 계속 악화하고 있었다. 혈압이 70/40까지 떨어졌고, 맥박도 약해지고 있었다. 김민지 씨는 절망적인 표정으로 민수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은 그의 손을 놓지 않았다.
"민수 씨, 포기하면 안 돼. 우리 약속했잖아. 할머니 할아버지 되어서도 함께 있기로 했잖아."
오전 10시 30분, 박철호 씨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 막힌 혈관이 뚫리면서 심장 기능이 회복되었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김미숙 씨와 자녀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복도에서 서로 껴안으며 울었다.
"아빠, 정말 다행이에요. 우리 모두 아빠가 필요해요."
하지만 같은 시간, 최민수 씨는 의식을 완전히 잃었다. 출혈량이 너무 많아서 수혈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상태였다. 이정민 과장이 급히 수술실로 이송을 지시했지만, 이미 늦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수술이 시작되었지만, 최민수 씨의 상태는 계속 나빠졌다. 복부를 열어보니 간, 비장, 신장에 모두 손상이 있었고, 출혈량이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수술진이 최선을 다했지만, 30분 후 심장이 멈췄다. 응급처치를 계속했지만 소생하지 못했다. 수술실 안의 긴장감이 절망으로 바뀌었다.
오전 11시 15분, 최민수 씨가 사망했다. 30세의 젊은 생명이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김민지 씨의 절규가 병원 전체에 울려 퍼졌다.
"민수 씨! 민수 씨! 제발 일어나!"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그녀는 민수의 시신에 엎드려 오열했다.
# 4.
오후 2시, 대학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김수진 양의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소식이었다. 뇌출혈은 멈췄고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했다. 다만 우뇌 일부 손상으로 인해 왼쪽 팔과 다리에 가벼운 마비가 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재활 치료를 받으면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박영희 씨는 눈물을 흘리며 의료진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 수진이가 살았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씁쓸함도 있었다. 만약 처음부터 수진이를 먼저 수술했다면 후유증 없이 완전히 회복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들었다. 의료진에게는 감사했지만, 그 지연된 시간이 딸에게 남긴 상처를 생각하면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정민 과장도 마찬가지였다. 김수진 양이 살았다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최민수 씨의 죽음에 대한 책임감이 무거웠다. 만약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최민수 씨를 먼저 수술했다면 둘 다 살 수 있었을까?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후회는 계속 남았다. 그는 자신의 판단이 한 사람의 목숨을 좌우했다는 무게감을 깊게 느꼈다.
박철호 씨는 중환자실에서 안정을 찾고 있었다. 수술이 성공적이어서 2~3일 후면 일반 병실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김미숙 씨는 남편의 손을 잡고 말했다. 그의 손에 다시 따뜻함이 돌아온 것이 느껴졌다.
"여보, 정말 다행이야. 아이들도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하지만 그들도 다른 환자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착잡한 기분이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김민지 씨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을 수가 없었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 다른 분이 돌아가신 건 아니겠죠?"
김미숙 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정민 과장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가족들의 죄책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자신들의 행복이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세워진 것 같은 무거운 느낌이었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도 유독 무거워 보였다.
최민수 씨의 부모님이 시골에서 올라왔다. 농사 일을 하던 중 급히 연락을 받고 서둘러 상경한 것이었다. 낡은 옷차림에 흙이 묻은 손으로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어제까지만 해도 전화해서 잘 지낸다고 했는데…… 결혼 준비한다고 그렇게 기뻐했는데……"
어머니가 오열했다.
김민지 씨는 영안실에서 민수의 주검을 지키고 있었다. 차가워진 그의 손을 잡고 계속 말을 걸었다. 그의 손가락에 있던 반지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민수 씨, 우리 신혼집과 가구까지 다 준비했잖아. 제발 일어나."
장례식은 소박하게 치러졌다. 시골에서 올라온 부모님과 약혼자, 그리고 건설 현장 동료들만 참석했다. 동료들은 작업복을 벗고 검은 정장을 입고 왔지만, 어색한 모습이었다. 김민지 씨는 관 앞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민수 씨, 미안해. 내가 더 좋은 병원에 데려갔어야 하는 건데…… 내가 더 빨리 왔어야 하는 건데……"
하지만 그녀가 더 빨리 왔어도, 더 좋은 병원을 찾았어도 결과는 같았을 것이다. 선택의 기준은 가족의 절박함이나 병원의 등급이 아니라 의학적 판단과 현실적 제약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민지 씨는 자신을 탓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이정민 과장은 그날 밤에 잠들 수가 없었다. 15년 의사 생활에서 가장 힘든 하루였다. 의학적으로는 제일 나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인간적으로는 찜찜함이 남았다. 30세 청년의 죽음에 대한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침실 천장을 바라보며 몇 번이고 뒤척였다.
"내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하지만 가정법은 의미가 없었다. 그 순간에는 그것이 최선의 판단이었다. 의학적 성공률, 수술 시간, 연쇄 효과를 모두 고려한 결과였다. 다시 같은 상황이 와도 비슷한 선택을 할 것 같았다. 그것이 의사로서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다.
정미영 수간호사도 마찬가지였다. 김수진 양이 살았다는 소식에 안도했지만, 최민수 씨의 죽음은 마음에 걸렸다. 자신이 8세 아이를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결과적으로는 30세 청년이 희생되었다. 집에 돌아가서 자신의 8살 딸을 바라보며 더욱 복잡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옳은 선택이었을까?
김희진 간호사는 현실적인 결과로 받아들였다.
"의료진이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는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해."
하지만 동시에 의료 시스템의 한계도 느꼈다. 수술실이 더 많았다면, 의료진이 더 충분했다면 이런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녀는 의료진 개인의 결정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하려 했다.
병원 경영진은 이번 사건을 조용히 처리하려 했다. 언론에 알려지면 병원 이미지에 좋지 않을 수 있었다. 다행히 유족들이 의료진을 원망하지 않아서 법적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런 상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응급실과 수술실을 늘려야 하지 않을까요?"
한 이사가 제안했다. 하지만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극한 상황이 얼마나 자주 오겠어요? 투자 대비 효율성을 생각하면……"
결국 근본적인 해결책보다는 매뉴얼 개선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현실의 벽은 높았다.
한 달 후, 김수진 양은 재활 치료를 받고 있었다. 왼쪽 팔에 약간의 마비가 있었지만, 꾸준한 치료로 호전되고 있었다. 물리치료실에서 열심히 운동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박영희 씨는 매일 병원에 와서 딸을 돌봤다.
"우리 수진이가 완전히 나으면 의료진 선생님들께 감사 인사를 드려야겠어."
박철호 씨는 완전히 회복해서 직장에 복귀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건강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가족과 보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여기게 되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살기 위해 다른 사람이 희생되었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다.
그는 최민수 씨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애도의 뜻을 표했다. 영정 사진 앞에서 깊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먼저 수술받는 바람에…… 정말 죄송합니다."
최민수 씨의 어머니는 그를 원망하지 않았다. 늙은 손으로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선생님도 살아야죠. 우리 아들 몫까지 건강하게 사세요."
김민지 씨는 연인을 잃은 슬픔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신혼집으로 준비했던 전셋집 계약을 포기했고, 함께 장만했던 가구들도 모두 처분했다. 모든 것이 민수와의 추억이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회사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결혼반지는 목걸이에 꿰어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정민 과장은 그 사건 이후로 더욱 신중해졌다. 비슷한 상황이 다시 오지 않기를 바랐지만, 응급실에서 일하는 한 언제든 같은 딜레마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완벽한 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그나마 더 나은 선택을 하려 노력할 뿐이었다. 그것이 의사로서 짊어져야 할 십자가라고 생각했다.
# 5.
6개월이 지난 어느 날, 성모병원 응급실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이번에는 두 대의 구급차가 동시에 도착했다. 하나는 임신 8개월 임산부의 교통사고, 다른 하나는 70세 할아버지의 급성 뇌경색이었다. 악몽 같은 상황이 다시 반복되었다.
임산부는 복부에 심각한 충격을 받았다. 태반 박리로 인해 태아와 산모 모두 위험한 상태였다. 즉시 응급 제왕절개를 하지 않으면 두 생명을 모두 잃을 수 있었다. 하지만 산과 수술은 복잡하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70세 할아버지는 뇌경색으로 뇌혈관이 막힌 상태였다. 1시간 이내에 혈전 제거술을 받지 못하면 반신불수나 식물인간이 될 위험이 컸다. 하지만 고령이라는 점에서 수술 위험도 상당했다.
이정민 과장은 6개월 전 그날을 떠올렸다. 최민수 씨의 죽음, 김수진 양의 후유증, 박철호 씨의 생환까지. 그때의 선택이 옳았는지 아직도 확신하지 못했다. 하지만 또다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왔다.
"과장님, 어떻게 하시겠어요?"
정미영 수간호사가 물었다. 그녀도 6개월 전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번에는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할까? 이정민 과장은 잠시 생각했다. 임산부는 두 생명이 걸려 있지만, 수술이 복잡했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많지만 비교적 간단한 시술이었다. 6개월 전과는 다른 양상의 딜레마였다.
"임산부부터 수술하겠습니다."
이번에는 다른 선택이었다. 두 생명을 동시에 구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희망을 걸었다. 하지만 여전히 확신은 없었다. 이 선택이 옳은지, 또 다른 후회를 남기지는 않을지 알 수 없었다.
임산부의 남편이 수술 동의서에 사인하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 아내와 아이 모두 살려주세요. 제발요."
이정민 과장은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한편, 70세 할아버지의 가족들은 기다림의 고통을 겪었다.
"할아버지, 조금만 더 참으세요. 곧 수술하실 거예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할아버지의 상태는 나빠졌다.
2시간 후, 임산부 수술이 끝났다. 산모와 아기 모두 무사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이미 골든타임을 놓쳐서 반신불수가 되었다. 가족들은 울었지만, 의료진을 원망하지는 않았다.
응급실에서는 계속 이런 선택들이 반복되었다. 생명의 가치를 저울질해야 하는 잔혹한 현실이었다. 의료진들은 매번 최선을 다했지만, 완벽한 답은 없었다. 다만 그 순간에 내릴 수 있는 최선의 판단을 할 뿐이었다.
이정민 과장은 또 다른 후회를 안게 되었다. 할아버지를 먼저 수술했다면 반신불수를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했다면 임산부와 아기가 위험했을 것이다. 어떤 선택을 해도 완벽할 수는 없었다. 그는 응급실에서 매일 생사를 가르는 결정을 내려야 했다. 때로는 모든 환자를 구할 수 있는 날도 있었고, 때로는 누군가를 포기해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선택의 무게를 느꼈다.
"완벽한 선택이란 없다"라는 것을 이제는 받아들였다. 다만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 후회를 최소화하는 것이 의사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선택의 무게는 평생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다.
어느 날 이정민 과장은 강의실에서 의대생들에게 말했다.
"의사가 되면 선택해야 하는 순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때마다 기억하세요. 우리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최선을 다할 수는 있다는 사실을."
응급실의 시계는 여전히 똑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매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생사를 가르는 시간이었다. 선택의 무게는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무게를 감당하는 것이 의료진의 숙명이었다.
오늘도 응급실에서는 누군가 선택하고, 누군가 희생되고, 누군가 살아간다. 이것이 현실이고, 이것이 인생이다. 완벽한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선택의 무게는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를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료진의 모습이 아닐까. 완벽하지 않아도, 후회가 남아도, 계속해서 생명을 구하려 노력하는 그것이 선택의 무게를 견뎌내는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