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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무의식에 쌓인 감정들을 마주하

by 세이지SEIJI

우리가 인생에서 놓치고 있는 것

오랫동안 감정은 이성에 비해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약함의 표현으로 오해하곤 했다.

하지만 감정은 단순히 숨기거나 다스려야 할 불편한 것이 아니다. 우리 삶을 움직이는 강력한 에너지다.

사실 우리 삶의 중요한 선택들, 그리고 심지어 생각까지도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드라마나 노래가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유도, 그것이 감상하는 사람에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결혼할 상대를 고를 때도 마찬가지다. 표면적으로는 여러 조건을 따져 최고의 선택을 하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를 기분 좋게 하고 좋은 느낌을 주는 사람을 선택하게 된다.

이렇게 감정은 우리 삶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감정은 에너지다

그런데 감정은 순간적으로 생겼다가 연기처럼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 덩어리'에 가깝다.

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처럼, 한번 만들어진 감정 에너지는 사라지지 않고 그저 형태를 바꾸며 우리 내면에 계속 머문다. 그 감정을 제대로 해소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즉, 감정 에너지가 제대로 해소되지 않으면 무의식 속에 억압된 채로 머물게 된다.

에너지는 어떻게 해서든 변환되어 이동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그 억압된 감정 에너지는 무의식 속에 가만히 있지 않는다. 우리 삶에 반복되는 갈등, 불안, 건강 문제 등으로 나타나게 된다.




반복되는 패턴의 비밀

특히, 억눌린 감정이 오랜 시간 쌓이면 인간의 내면은 결국 그 감정을 마주하게 하는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종종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 속에서 자란 사람이 결혼해서도 다시 배우자에게 비슷한 폭력을 당하며 사는 경우를 목격하게 된다.

유년시절의 기억된 감정은 정말 강렬하다. 생애 처음 형성된 감정들이니까. 하지만 너무 어리기에 그런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고, 그저 그 감정을 자기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다.

감정을 숨기거나, 외면하거나, 부인하는 것들이 바로 감정을 억압하는 모습이다.

그런 억압된 감정은 어떻게 해서든 해소되려 하기 때문에, 그 감정이 생겼을 때와 비슷한 현실을 눈앞에 자꾸 만들어낸다. 우리는 그렇게 꼭꼭 숨겨놓은 감정을 마주하기 두려워하기 때문에 또다시 외면하거나 부인하거나 도망치면, 해소될 때까지 비슷한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인생은 내게 왜 이러는 거야? 나보고 살지 말라는 거야?"

세상이 날 골탕먹이는 것 같아 분노하게 되고, 절망하기도 한다.




치매와 억압된 감정

나이가 들면 치매에 걸리는 분들이 많아진다. 치매에 걸린 분들은 조금 전의 일이나 최근의 일들은 대부분 잊어버리지만, 먼 과거의 기억은 또렷이 기억하고 그게 마치 현재인 것마냥 여긴다. 또는 어떤 감정 상태가 맥락 없이 휙휙 바뀌기도 한다.

그런 모습들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치매의 증상들 중에 무의식 속 억압된 감정이 터져나오는 현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 말이다.

약간 감정을 의인화시켜보자면, 감정에너지도 남은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서둘러 감정이 해소되길 바라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것이다. 시간이 많았을 때는 살아가는 삶의 맥락에 맞게 현실에 나타나지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는 상태에서는 그럴 여유가 없기에 맥락 없이 모드 전환하듯이 불쑥 나타나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억압된 감정이 '서운했던 감정'이었다면, 다시 그 감정을 느끼고 마주하기 위해 현실을 바꾸는 대신 자신이 그렇게 느끼도록 환각을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기를 모함한다던지, 자기 것을 빼앗아가려 한다던지, 모두가 자기를 버렸다던지 이런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감정 해소와 감정 분출의 차이

그럼 감정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소해야 하는 걸까?

우선 솔직해지는 것이다. 올라오는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고, 그 감정이 분노든 공포든 좌절이든 버림받은 기분이든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왜 그런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 잘 생각해보는 것이다.

'아, 세상에서 가장 날 사랑해줘야 하는 부모가 오히려 날 이토록 위태롭게 만들고, 소중히 여기지 않다니 너무 외롭고, 무섭고, 화가 나는구나. 내 마음이 그렇구나...'라고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이다.

진심으로 나의 이런 감정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 앞에서 솔직히 털어놓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면 정말 좋지만, 설사 그런 상대가 없더라도 내 자신이 본인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어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잠깐 감정과 마주했는데 너무 서둘러서 그 감정을 치우고 뭔가 긍정적이고 희망찬 모습으로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런 감정에 젖은 자신의 모습이 싫어서 어서 털어버리고, 당차고 씩씩하게 살아가는 자신만 보고 싶어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그 감정은 제대로 해소되지 못하고 다시 무의식에 남아있게 된다.

사실, 내가 그랬다. 어떤 감정과 마주할 여유가 없다고 느끼며, 서둘러 그 감정들을 다시 덮고,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했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감정 해소와 감정 분출은 다르다는 사실이다. 감정 분출은 그 감정을 제대로 마주하는 행위가 아니라 외부로 시선을 돌리는, 어떻게 보면 그것도 회피하는 행동 중 하나다. 그래서 남에게 버럭 화를 내거나 험담을 하거나 그냥 아무나 붙잡고 자기의 감정을 쏟아내는 행위는 감정 해소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감정 해소와 감정 분출을 잘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감정을 마주하는 방법들

일기장에든, 노트북 컴퓨터든 어떤 언어로서 풀어내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저 수다떨듯 감정을 쏟아내는 그런 만남 말고, 진지하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나의 솔직한 토로를 지켜봐줄 수 있는, 그리고 나도 상대방에게 그래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있다면 더욱 좋다.

명상이 편하면 명상으로 해도 되고, 혼자 운동하면서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게 좋으면 또 그렇게 해도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을 바라보고, 인정하고 알아주는 것이다. 그럼 감정은 서서히 다른 형태로 변환되며 이동할 것이다. 그리고 날 힘들게 하던 무의식적 에너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 중요한 것은 . . .

삶에서 자꾸만 반복되는 문제가 있다고 느껴질 때, 우리는 그것을 해결하려고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어쩌면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 글이 그에 대한 완전한 답이 되어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한번쯤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일지도 모르겠다.

감정을 마주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론 불편하고, 거북하고,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걸음 용기 내어 마주하는 순간, 생각보다 '덜 불편하고, 덜 두렵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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