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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저 사람처럼 될 수 없을까

타고난 기본값을 인정하기

by 세이지SEIJI

"우리 할머니는 평생 커피를 하루에 다섯 잔씩 마시며 사셨는데, 지금 아흔 살인데도 꽤 건강하세요."

건강에 관한 영상 아래 댓글에서 자주 보이는 반박이다. 커피가 몸에 해롭다는 정보에 대한 개인의 경험담으로 맞서는 것이다. 이런 댓글을 볼 때마다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정보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될 거라고 은연중에 믿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담배 이야기를 해보자.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상식이다. 그런데 담배를 평생 피워도 팔십 대까지 건강하게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흡연을 하지 않았는데도 간접흡연으로 인해 일찍 폐암에 걸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은 담배의 해로움에 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펼치며 논쟁한다.

내 생각에는 담배가 인체에 해로운 것은 분명하다. 다만, 어떤 사람은 최대 수명 120살로 태어났는데 평생 흡연으로 35년을 깎아먹어 85살에 생을 마감한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최대 수명이 80살이었지만 건강한 생활습관으로 5년을 연장해 85살까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은 것일지도 모른다.


500리터 물탱크와 50리터 유리병

우리 각자는 서로 다른 신체 조건과 감정 민감도, 사고의 깊이와 회복 탄력성을 갖고 태어난다. 비유하자면 누구는 500리터짜리 물탱크를 가지고 태어나고, 누구는 50리터짜리 유리병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인간이 모두 똑같은 물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착각하여 "왜 나는 저 사람만큼 물을 많이 담지 못하는가" 하며 속상해한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다른 또래에 비해 허벅지가 두꺼웠다.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다니며 자연스럽게 또래들과 비교가 되면서 깨달았다. 내 허벅지는 다른 친구들보다 굵다는 것을. 그것이 늘 마음 한편에 신경 쓰이는 것이 되어 평생 남들보다 굵은 허벅지를 의식하며 살아왔다.

예전에는 허벅지를 얇게 만들려고 다리가 날씬해진다는 운동을 따라해보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다리가 날씬해 보이는 옷을 입으려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보다 허벅지가 두꺼운 것은 바뀌지 않았다. 오래 콤플렉스처럼 달고 다닌 허벅지 둘레를 이제는 그냥 그렇게 타고났다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것이 내 허벅지의 기본값이다.


80억 개의 서로 다른 기본값

결국 사람은 각자 저마다의 기본값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 같다. 타고난 기본값은 바꾸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최대로 클 수 있는 키가 150센티미터대이고 기본적으로 통통한 체형으로 태어난 사람이 장원영처럼 키 170센티미터가 넘는 길쭉한 체형을 이상으로 삼고 그것을 추구한다면, 불가능한 꿈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체형의 기본값이 다르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80억 인구가 있다면 80억 개의 서로 다른 기본값이 존재한다. 그런데 우리는 획일적인 기준의 폭격을 사회로부터 받으며 자신도 모르게 고정된 기준을 마음에 심어둔다. 우리는 자꾸 기본값이 전혀 다른 타인과 나를 나란히 놓고 그 사이에서 열등감 혹은 우월감의 줄다리기를 한다. 그런 비교에서 나오는 것은 자존감도, 성장도 아닌 그저 착각된 감정일 뿐이다. 결국 우리를 더욱 지치게 만들 뿐이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중요한 것은 '타인과의 비교'가 아니라 '내 안에서의 변화'를 보는 일이다.

비교는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유용할 수 있다. 다만 전제가 분명해야 한다. 비교는 동일한 기본값 안에서, 같은 범주의 변화 안에서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운동을 석 달 열심히 했는데 남들만큼 허벅지 둘레는 줄지 않았지만 탄력이 생기고 걸음이 좀 더 가벼워졌다면, 그것은 '효과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나만의 기준 안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타인의 변화 그래프에 나의 눈금을 맞추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는 계속해서 "왜 나는 안 되지?" 라는 자기 비난의 늪에 빠지게 된다.

사람마다 타고난 기본값이 마치 하드웨어처럼 설정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하드웨어에 맞는 소프트웨어, 즉 삶의 방식이나 환경, 태도 같은 것들을 맞춰야 한다고 본다. 나의 기본값을 무시한 채 타인의 기준으로 계속 프로그램을 설치하다 보면 결국 오류가 나지 않을까.


어제의 나와의 비교

그러니까 오늘 당신이 누군가와 비교하고 있다면 이 질문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내가 가진 기본값 안에서 나는 얼마나 변했을까?"

비교는 가능하되,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하는 비교일 때 우리는 비로소 진짜 변화의 감각을 얻을 수 있다.

당신의 그릇이 어떤 모양이든, 그 그릇 안에 채워지는 따뜻한 무언가가 있기를. 그리고 당신만의 기본값으로 충분히 아름다운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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