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의 직업을 찾지 못한 이들을 위한 작은 위로
어릴 때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넌 커서 뭐가 될래?" "장래희망이 뭐니?" "꿈이 뭐야?"
그럼 우리는 "과학자요!" "가수요!" "변호사요!" 이렇게 직업명으로 대답했었다. 그러다가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질문도 조금씩 바뀌었다. "진로는 정했어?" "어떤 분야에 관심 있어?" "뭘 좋아해?"
아마 고등학생 쯤 되면... 어떤 직업인이 되겠다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서로 알기 때문에 그렇게 묻는 게 아닐까?
그런데 말이다... 왜 아무도 이런 질문은 해주지 않았던 걸까?
"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넌 삶을 어떻게 살아가는 사람이 될 거야?" "네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뭐니?"
정말 중요한 질문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지... 왜 아무도 물어봐주지 않았을까?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한 번도 직업에 만족한 적이 없었다.
회사원으로 있을 때도 "어떻게 하면 이 회사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만 했다. 프리랜서가 되었지만... 내가 하는 일이 크게 의미 있다고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인생의 중간 지점까지 오니까 '직업'이란 단어 자체가 나를 참 힘들게 하더라.
재밌는 건... 직업이 없어도 괴롭고, 직업에 만족하지 못해도 괴롭다. 실업자는 당장의 생계비 때문에 괴롭고, 직업이 있어도 하기 싫은 일이거나 너무 고된 일, 아니면 일의 의미를 찾지 못해서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미디어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그 분야에서 계속 성장해나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성공한 영화배우, 사업가, 정치인, 학자들... 그런 걸 보면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내 자신이 더 초라해 보인다.
나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런데 이쯤에서 한 번 던지고 싶은 근원적인 질문이 있다.
'직업이 뭔데?'
직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어떻게 설명할 건가? 직업은 어떻게 생겨나는 걸까?
어떤 행위를 했는데 돈이 안 생기면... 그건 직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 없을까? 그럼 직업은 바로 돈인 걸까?
'직업'이란 한자어다. '직'자는 직분의 직이고, '업'은 종사하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것 같다. 국어사전에는 뭐라고 나와 있냐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한 기간 동안 계속하여 종사하는 일'이라고 되어 있다.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는 말이 붙어있다. 그럼 생계를 유지할 필요가 없다면 직업은 갖지 않아도 되는 걸까?
최근에 '파이어족'이라는 말 들어봤을 것이다. Financial Independence and Retire Early... 앞글자를 딴 건데, 경제적 자립을 얻어서 일찍 은퇴하는 걸 목표로 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이 가치관을 보면... '일'을 한다는 것은 결국 '안할 수 있으면 안하는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경제적인 이유만 아니면 굳이 '일'을 갖지 않겠다, 그게 이상적인 상태라는 뜻이다.
조선시대 같은 옛날에는 어땠을까? 그때는 '커서 뭐가 될지'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지금의 우리처럼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을까?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야 나랏일 맡는 걸 꿈이라고 여겼을 것이고, 나머지는 그저 주어진 신분의 역할대로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어떤 양반 가문의 노비로 살았을 것이다.
"나는 내 인생 동안 내 적성과 능력으로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라고 질문을 던지고 괴로워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 같다. 그럴 여유가 있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을 테니까.
어쩌면 인류 탄생 이래 우리는 매우 특별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남녀, 신분을 따지지 않고 자기 직업을 고민하는 세상이라니... 전혀 당연하지 않은 고민을 어쩌면 우리는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직업'이란 건 결국'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 교환의 행위'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면 '직업'이 생기는 거고, 필요로 하는 것을 해줄 수 없으면 '실직'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직업이 곧 '나'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 것 같다. 직업을 가져야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인생의 의미와 나의 가치를 '직업'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실현해야 한다고 계속 주입받아 왔다.
그래서 멋진 직업을 찾지 못하면 인생이 실패한 것 같고, 뭔가 잘못된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에 갇혀 있게 된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직업은... 첫째, 생계유지를 위한 돈이 필요하고 둘째, 사회가 돌아가면서 생겨나는 필요를 충족시켜줘서 얻는 대가일 뿐이다.
사회 속 그 필요성이란 것도 매우 가변적이어서... 그 필요성이 평생 지속될 수도 있고, 몇 개월에 그칠 수도 있다. 우리는 그런 변화에서 '실직'이란 걸 경험한다.
사실 그건 내 잘못도 아니고, 그저 사회 속에서 그 필요성이 없어진 것뿐인데... 우리는 정체성마저 흔들리는 경험을 하게 된다.
우리 현대인들은 직업에 대해 너무 거창한 의미부여를 강요받은 게 아닐까?
직업은 그저 내가 생계유지를 위해서 필요할 때마다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해주고 그 대가를 받으면 그만인... 우리 인생에서 스쳐가는 것들 중 하나일 뿐인데 말이다.
직업이 곧 나 자신이라는 잘못된 공식대로 살아가며 괴로워하는 건 아닐까 싶다.
다시 맨 처음 했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어릴 적 자주 듣던 '커서 뭐가 될래?'라는 질문 말이다.
우리는 그 질문 대신에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야 하는 게 아닐까?
"나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사소한 것에도 기쁨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함께하는 사람이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탐구정신이 가득한 사람이 되고 싶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이라면 어떨까?
그럼 우리는 인생의 어떤 나이대에 속해 있건, 어떤 경제적 여건에 놓여 있건 '꿈'을 만들고 '꿈'을 실현하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인생을 '직업'이라는 것에 한정짓지 말고, '나란 사람' 그 자체로 확장한다면... 당신 앞에 놓인 삶은 어떻게 보일까?
지금까지 내가 한 이야기는... 사실 바로 나한테 해주는 이야기다.
꿈의 직업을 인생의 중간까지 와서도 찾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하고, 삶에서 뭔가 중요한 게 빠져 있는 허탈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겠어서... 그래서 너무나 괴로운 나이기에, 나를 이토록 괴롭히는 '직업'이란 걸 진지하게 파헤쳐보고 싶었다.
결국... 직업이 곧 나는 아닌데, 그럼 직업에서 만족을 찾지 못하더라도 삶에서 '나'를 이루는 요소는 많을 텐데...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고 나에게 건네는 위로였다.
나처럼 진로를 찾지 못하고, 현재 하는 일에 만족하지 못하고, 앞으로도 도대체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지 막막해서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이다음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