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베어나오고, 겉에 베어나오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2014년 영화 '역린'에서 들었던 중용23장의 구절이다. 동물권이라는 말조차 낯설었던 시절, 혼자서 이 길을 걸어가는 내게 큰 위안이 되었던 메시지였다.
"언제부터 그렇게 동물에게 관심을 갖게 됐나요?"
가끔 받는 질문이다. 첫사랑이 언제냐고 묻는 것만큼 애매하지만, 굳이 시점을 정하자면 1992년 여름이라고 하고 싶다. 초등학교 4학년이던 나는 피아노학원 가는 길에서 '이쁜이'라는 누렁이를 만났다.
아파트 단지 상가 앞에 묶여 있던 이쁜이에게 나는 매일 사료와 개껌을 주며 우정을 쌓아갔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 뜨거웠다. 이쁜이가 물 한 모금 없이 더위와 사투를 벌이는 모습을 본 나는 슈퍼마켓에서 비닐봉지를 얻어 수돗물을 받아다 주곤 했다.
여름이 끝날 무렵, 이쁜이가 갑자기 사라졌다. 우연히 들은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이쁜이가 보신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 순간이 아마도 내가 처음으로 이 땅의 동물이 처한 현실을 직시한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아픈 기억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는 무려 20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학업과 사랑, 취업이라는 인생의 굵직한 주제들로 바쁘던 20대를 보내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결심했다. 92년 내 마음에 묻어둔 세상의 또 다른 '이쁜이들'을 위해 뭔가 해야겠다고.
2006년, 심적으로 힘든 시기에 우연히 동물보호단체 홈페이지에 들어갔다가 모피 제작 영상을 보게 되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한동안 다시 그런 영상을 볼 수 없을 정도였다.
2010년이 되어서야 정기후원부터 시작해서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작은 행동이 시작되자 내 활동 영역도 자연스럽게 확장되어갔다.
동물보호단체들이 지난 수십 년간 이룬 성과는 분명 한국 동물권 역사에 큰 물주기가 되었다. 1988년 올림픽을 기점으로 동물보호법이 제정되고, 인터넷 시대와 함께 시민들의 의식도 점차 변화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중요한 시점이다. 동물보호단체의 메시지가 실제 변화로 이어지려면 결국 시민들의 공감과 지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나 같은 개인의 작은 정성이 모여야 대중이 변화하고, 결국 동물을 대하는 사회의 모습도 바뀔 수 있다.
이 연재를 통해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단순히 동물을 보호하자는 메시지를 넘어선다. 우리가 언제부터 동물과 이렇게 멀어졌는지, 그 잃어버린 연결을 어떻게 되찾을 수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다.
동물과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기도 하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우리는 어떤 존재인지, 다른 생명체들과 어떻게 공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들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미 마음 어딘가에 생명에 대한 애정과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이런 제목의 글을 클릭하지 않았을 테니까.
중용23장이 가르쳐주듯이, 평범한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이 되고, 그 정성은 누군가를 감동시키며, 그 감동이 모이면 세상이 변한다.
우리 함께 그 첫걸음을 내디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