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끔힐끔 너를 보다

by 나타날 현


지난 주말 동안 드라마 하나를 정주행 했다.

은중과 상연.

'선망과 원망 사이'라는 부제도 좋았고, 'You and Everything Else'라는 영어 제목도 끌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김고은 배우가 주연으로 출연하길래 망설임 없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가 주말이 순식간에 지나가버리고 말았다.

드라마 제목 그대로, 은중과 상연이라는 두 친구가 10대부터 20대, 30대를 지나 40대까지 얽히고설키는 이야기였다. 어릴 적부터 서로를 동경하고, 사랑하다, 질투하고, 시기도 했다가 결국엔 미워하는 감정으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멀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상연이의 마지막을 은중이가 배웅하는 이야기였다.

어찌 보면 뻔하지만, 뻔한 만큼 감정이입도 쉬웠다. 그 덕분에 극이 전개되는 동안 10대부터 지금까지 내 곁에 있었던 친구들을 돌이켜 볼 수 있었다.

사실, '친구들'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색하도록 나는 지금껏 마음을 나눈 친구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힌다. 아니, 손에 꼽고도 손가락이 남는 정도다. 상연이에게는 끝내 은중이밖에 없었던 것처럼, 나에게도 시기에 따라 딱 한 명씩 단짝 친구가 있었다.

어릴 때부터 팔짱 끼고 다닐 단 한 명의 친구만 있으면 더 이상의 친구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둘이서 노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고, 누군가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면 그때부터 인생이 복잡해지는 거였다. 하지만 그 한 명을 사귀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친구에 대한 기준이 쓸데없이 높았던 탓이었다. 그렇다 보니 학창 시절이 전반적으로 외로웠다. 외롭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친구 하고 싶지는 않아서 고르고 고르다가 결국 혼자 남아 있던 적도 더러 있었다. 그러다 마음이 맞는 친구가 나타나면 나는 온 마음을 다 주곤 했다. 널 위해서 지금껏 아껴놨다는 듯이 애정을 마구 쏟아부었다.

그 마음을 귀하게 여겨주고 오늘날까지 내 곁에 남아준 친구.
그 귀한 친구에 대해서 오늘은 무어라도 꼭 쓰고 싶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네가 생각났노라고, 드라마를 핑계 삼아 연애편지 같은 고백을 늘어놓으려고 한다.



...



때는 2005년,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반 배정을 받고 처음 3학년 4반 교실에 들어가서 번호 순대로 정해진 자리에 앉았다. 김 씨인 나는 10번이었고 내 옆엔 또 다른 김 씨 성을 가진 9번 친구가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이름이 솔지였다. 솔지에게서 옅은 비누 냄새가 났는데 그 냄새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자몽 향 같기도 하면서 오이 향도 얼핏 섞인 독특한 향이었다. 솔지가 움직일 때마다 무슨 향일까 궁금해서 티 나지 않게 계속 킁킁거렸던 것 같다. 낯을 가리느라 인사도 나누지 않은 상태로 나는 솔지에게서 나는 향을 맡으며 옆눈으로는 힐끔힐끔 솔지를 관찰했다. 교복 자켓에는 보라색 꼬리빗이 꽂혀 있었고, 책상에 놓인 필통도 보라색이었다.

그게 솔지와의 첫 만남이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수업을 들으며 선생님 말씀 중에 같은 포인트에서 같이 웃음이 터지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는 마주 보고 웃기 시작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솔지에게는 다른 반 친구들이 몰려왔다. 그 모습을 나는 어색하게 지켜보는 일이 많았다. 쉬는 시간에 나를 찾아와 주는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2 때 사귄 친구는 우리 교실로 나를 보러 와줄 만큼 나와 친하지 않았다. 2학년 때 급식을 같이 먹고, 체육시간에 같이 운동장에 나가는 정도로만 가까이 지냈고 반이 달라지면서 서로 만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쉬는 시간 종이 칠 때마다 친구들이 놀러 와주는 솔지가 내심 부러우면서도 어쩐지 나는 쓸쓸해지곤 했다. 이후에 솔지랑 가까워지는 동안 나는 그 친구들이 우리 교실로 오지 않기를 바라기도 했다.

나한테 솔지밖에 없듯이, 솔지도 나만의 친구이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내 욕심일 뿐, 솔지가 가끔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그 친구들을 만나러 나갈 때면 나는 덩그러니 혼자 남게 되었다. 나랑 같이 있어주면 좋을 텐데. 그 마음을 내비치면 부담스러워하며 나를 멀리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고 애를 썼던 기억이 난다. 그래, 뭐, 쟤네랑은 더 오래 친했는데 내가 뭐라고.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순 없으니 나는 책상 서랍 속에 항상 영어 단어장이나 암기노트 같은 것들을 넣어두었다. 솔지가 나가면 꺼내어 보려고.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나는 공부를 꽤 잘했고, 공부 잘하는 애들은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어울리지 않고 책을 펴고서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어도 나름 괜찮아 보일 거라고 생각해 낸 대안이었다.

솔지의 친구들이 놀러 오지 않는 시간이면 그 틈을 타서 나는 솔지와 가까워지려고 나름의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중에 하나가 편지였다. 학창 시절 내내 나는 하교 후에 시립도서관으로 향했고 공부하기 싫은 날이면 열람실에서 편지를 썼다. 처음엔 그냥 장난 같은 쪽지를 써서 솔지에게 건넸다. 그런데 다음날, 솔지가 답장을 주었다. 하이테크 펜으로 쓴 동글동글한 글씨였고 예상했던 것보다 꽤나 긴 답장이었다. 나도 정성을 들여 다시 답장을 썼고 그 이후로 우리 사이에 편지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떤 날에는 암기노트 한 장을 북 찢어서 급하게 쓸 때도 있었고, 미리 모닝글로리에서 편지지 세트를 여러 개 사두었다가 신경 써서 편지를 적을 때도 있었다. 그 시절, 작은 파동 하나에도 크게 일렁이던 마음들이 편지로 오갔다. 솔지도 나도 사춘기를 글로 담았다. 우리를 지금껏 애틋하게 만든 지점이 바로 그 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열여섯 살의 내밀했던 속마음을 네가 알고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 너를 앓게 했던 것들과 나를 시달리게 했던 것들을 세상에 우리 둘만 알고 있었다.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우리의 편지는 더욱 애틋해졌다. 당시에 나는 핸드폰이 없어서 솔지와 편지로밖에 소통할 길이 없었던 것도 한몫했다. 도서관에서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길이면 항상 아파트 우편함을 먼저 확인했다. 솔지가 보낸 색색깔의 봉투가 우편함 입구에 삐쭉 보이면 그게 그렇게 반가웠다. 그때 주고받은 편지가 상자로 한가득 남았다.

얼마 전 솔지를 만났을 때, 그 시절에 내가 썼던 편지를 솔지가 가지고 나온 적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편지지가 어찌나 길던지 내 키의 반만 한 편지지에 글씨가 빼곡하게 쓰여 있었다. 그걸 보는데 순간 헉했다. 내가 이 정도로 솔지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가. 뒤늦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솔지는 고등학교에 가서도 여러 친구를 사귀었던 반면 나는 여전히 솔지밖에 없었고, 외롭고 고된 수험생활을 솔지에게 일방적으로 편지에 담아 와락 쏟아냈던 것이다. "야, 이 정도면 내가 진짜 그때 너한테 다 준거야. 내 마음 다 줬네 다 줬어." 웃으며 얘기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저밖에 없다고 소유욕을 그대로 내비치는 친구가 어느 날은 부담스러웠으리란 것을. 고맙게도 그 마음을 받아준 솔지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 3년을 잘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대학을 갔고 솔지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잠시, 우리는 멀어졌다. 일 년에 두어 번 만나서 밥을 먹고 카페에 가서 그간의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전처럼 애틋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에서 다른 단짝 친구를 사귀느라 바빴고 솔지도 직장 생활을 하며 정신없던 때였다. 딱 한 번, 내가 다니던 대학교 캠퍼스에 솔지가 놀러 온 적이 있었다. 4년의 대학 생활 동안 고작 한 번이었다. 내가 수업을 듣는 건물에 데리고 들어가서 강의실과 과방을 보여주었고, 동아리 활동도 자랑했다. 학교 앞 막걸리집에서 들뜬 목소리로 동아리 공연 준비 때문에 바빴던 이야기, 미팅 소개팅을 하러 신촌과 강남으로 쏘다녔던 이야기들을 쉬지도 않고 늘어놓을 때, 솔지가 엄마처럼 나를 뿌듯하게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내가 솔지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솔지는 나보다 3개월 일찍 태어났는데, 3년은 더 언니 같았다. 속 좁고 열등감 덩어리인 나는 못 가졌을 그런 마음들. 그게 이제 와 느껴진다. 내가 솔지를 더 좋아했다고 생각하며 억울한 적도 많았는데 사실은 솔지가 나를 더 좋아해 주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제야 든다. 그래서 나를 봐준 걸지도 모른다고...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기간제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학생 때보다 오히려 시간이 많아져서 우리는 전보다 자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솔지가 청첩장을 들고 나왔다. 결혼을 한다고 했다. 그때 우리 나이가 겨우 스물다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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