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싶단 말을 못해서

by 나타날 현


결국 때가 오고야 말았다. 솔지와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피하고 싶었던 부분. 우리의 관계가 최악에 다다랐을 때의 이야기다. 우리 사이가 안 좋기도 했지만 그 시기는 솔지와 나에게 각자의 이유로 고달팠던 때였다.

음.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어릴 때 이야기를 쓰면서는 신이 나서 우다다닥 써나갔는데 이 지점에 오고 나니 막막하다. 굳이 이제 와서 다시 그때를 억지로 떠올리려고 하니까 마음이 욱신거리고 머리는 지끈거린다. 숨기고픈 기억들이 너무 많다. 숨어버리고 싶은 순간들이 하도 너저분하게 있어서 그걸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솔지와 나의 관계에서 중요했던 시기인 만큼 공들여서 잘 써보고 싶은데... 그럴수록 내 글은 엉망진창이 된다는 걸 나는 알고 있다. 엉망이든 뭐든, 에라 모르겠다. 나 좋자고 쓰는 글인데 뭘 그리 신경 쓰고 있나. 우선 써볼란다.


...


"네 사정이 그러면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그 한 마디를 카톡으로 보내놓고 핸드폰을 신경질적으로 내려놨다. 솔지에게서 어떤 대답이 오든 보고 싶지 않았다. 궁금하지도 않았다. 분명 3주간 한국에 머물 예정이라고까지 얘기했는데 그중에 단 하루도 나를 만날 수 있는 날이 없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나쁜 지지배. 도대체 무슨 사정이길래. 아무리 생각해도 영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번에 미국으로 돌아가고 나면 언제 다시 올지도 모르는데. 그동안 하고픈 말들이 많았는데. 내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 솔지에게 닿지 못한 말들이 마음에 쌓여갔다. 그게 서운함이 되고 또 미움이 되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만약 그때와 똑같은 상황이 지금 벌어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생각할 필요도 없이 당연히 솔지에게 물어볼 것이다. 너 무슨 일 있느냐고. 그리고 말했겠지. 내가 갈게. 네가 보고 싶어.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안될 것 같다'는 솔지의 말에 '어쩔 수 없다'라고 대답을 했으니 내가 솔지를 밀어낸 것이었다. '내가 일 년 만에 돌아왔는데!'라는 프레임을 만들어놓고 나에게 기꺼이 맞춰주는 사람이 아니라면 한국에서 보내는 이 귀한 시간을 들일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속이 좁아도 어쩜 그렇게까지 좁았을까 나는. 어차피 미국으로 갈 건데 그래 너 어디 한번 잘 살아봐라. 끝 간 데를 모르고 미움이 커져갔다. 서운함이란 감정이 그 사람을 좋아했던 마음에 비례해서 곱절로 깊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샌디에고로 돌아가면서 솔지를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대차게 마음먹었으면 생각이라도 말지. 문득 솔지 생각이 나면 불쑥 화가 나서 심장이 마구 빨리 뛰었다. 관자놀이에서 맥박이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쁜 년. 아무리 그래도 연락 한 번을 안 하냐. 다른 생각으로 덮으려고 애를 썼지만 쉽지 않았다. 솔지가 볼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 인스타그램 피드를 업데이트하고, 블로그에 내 일상을 올렸다. 기가 막힌 풍경 속에서 나는 웃고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 솔지의 자리가 텅 비어있었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 자리가 자꾸만 나를 음울하게 만들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솔지를 처음 만났던 그 순간부터 솔지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친구들에게 훌쩍 가버린 솔지가 어서 내 옆자리로 돌아오기를. 내게 편지를 써주기를. 늘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네가 날 좀 기다려주지. 나보다 먼저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지가 먼저 앞서 걸어가 버렸으면서. 이번만큼은 내 상황을 이해해 주기를 바랐던 것뿐인데. 쳇. 나는 하는 수없이 또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어놓고는 또 기다리고 있는 꼴이라니.

마음은 복잡했지만 미국에서의 일상은 조용하게 흘러갔다. 그때 나는 한인타운에 위치한 어느 복사기 설치 업체에서 파트타임으로 하루에 네 시간씩 일을 하고 있었다. 일이라고 하기도 민망한 자잘한 업무들이었다. 영수증을 정리하고, 견적서를 쓰고, 영어가 서툰 한국인 사장님을 대신해서 이메일을 작성하고 전화를 받는 일. 하루 네 시간 중에 30분이면 끝날 일들이었다. 남은 시간을 어떻게든 채우려고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 보면 머리가 멍해졌다. 이러려고 미국에 온 게 아닌데 나 뭐 하고 있는 거지. 현타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매일같이 구인 공고를 확인했지만 내가 가진 경력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 보였다. 한국 고등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재직했던 경력이 미국에서 어디에 쓰일까. 내가 생각해도 매력이 없었다. 그리고 사실 영어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그 부분이 나를 작아지게 했고 한인 업체가 아니면 솔직히 자신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인 커뮤니티에서 유학원 구인 공고를 보았다. 이거다 싶었다. 교육과 관련된 업무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 인생 처음으로 영어로 이력서를 작성해서 지원했다. 며칠 후에 유학원 원장으로부터 면접을 보자는 전화를 받았고, 바로 다음 주에 면접을 보았다. 그리고 유학원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라는 타이틀로 풀타임 직원이 되었다. 출근하고 퇴근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빨래하고. 같은 일상이 매일 루틴 하게 돌아가면서 솔지에 대한 원망이 잦아들었다.

머리가 아플 만큼 화가 났던 마음은 이미 옅어지고 내 잘못만 또렷하게 남았다. 그렇게까지는 말하지 말걸. 나를 못 본다는 말에 네가 보고 싶다고나 할걸.

어느 날엔가, 솔지에게 전화를 걸면 아무렇지 않게 통화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서로 연락을 안 한 지 6개월이 지난 뒤였다. 카톡을 열어 솔지 프로필에 있는 보이스톡 버튼을 쳐다보면서 누를까 말까 잠깐 망설이다가, 그냥 눌렀다. 보이스톡 연결음이 재생되고 몇 초 후, 솔지가 전화를 받았다.

"야."

그 한 마디를 하고 나니 목이 메었다.

"뭐."

솔지 목소리였다. 반가웠다. 솔지도 그 한 마디를 하고는 꺽꺽 울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꺽꺽, 울기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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