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도망

by 나타날 현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보면 주인공이 어느 한 시절의 기억을 지우고 싶어서 전문 업체에 의뢰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 역시 영화 속 주인공처럼 기억을 지우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그 기억들 때문에 내가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 같아서 차라리 통째로 들어내 버리고 싶었다. 지울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Delete 버튼을 주저 없이 누를 참이었다. 그때를 글감으로 삼아 그땐 그랬지, 하며 주절주절 적어 내려가고 있는 오늘로써는 영화에서처럼 그때를 삭제했으면 어쩔 뻔했나 싶다. 그랬더라면 나는 어쩌면 똑같은 실수를 다른 때에 또다시 반복하며 지냈을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겪고 지나가야 하는 한때가 누구에게나 온다는 것을 참 오랜 시간에 걸쳐 깨달았다. 그 시절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오늘도 힘차게 써볼란다.


...


술김에 칼을 빼내어 들었지만 막상 그걸로 나를 해치려고 보니 내 왼쪽 손목은 너무 가늘고 너무 하얗고 너무 고왔다. 맙소사. 내가 대체 뭘 하려고 했던 건가. 그 어둠 속에서 허옇게 빛나고 있는 내 손목을 어이없이 쳐다보다가 그 자리에 엎어져서 통곡을 했다. 그 집에서 참고 참았던 울음이 둑이 무너지듯 쏟아져 나왔다. 내가 짐승처럼 울고 있었다. 부엌에서 큰 소리가 들리자 카노가 내 곁으로 달려왔고 이어서 남편이 주방으로 내려왔다. 그런 모습을 들킨 것이 치욕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론 안심이 됐다. 나는 그가 봐주기를 내심 기다렸는지도 몰랐다. 부엌칼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고 그 옆에서 울고 있는 나를 보면서 그가 물었다. 왜 그래. 왜 그러는 거야. 왜 그랬어... 놀란 건지 화가 난 건지 우는 건지 모를 목소리였다.

나 도저히 못 살겠어. 살고 싶지가 않아. 그냥 죽어버리고 싶은데 이마저도 나는 못하네 시발.

울다가 헛웃음이 나왔다. 칼은 도저히 안 되겠고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바닥에 엎드려 있는 나를 남편이 부축해서 안방으로 데려갔다. 이불을 덮어주고는 그가 방을 나갔다. 서재로 들어가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한숨을 내리쉬는 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다음날 어김없이 아침이 밝았다. 남편의 제안으로 심리 상담을 신청해서 일주일에 한 번씩 줌으로 상담을 받기로 했다. 신경정신과 진료를 받고 우울증 약도 처방받았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혼하고 싶다고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엄마랑 아빠는 괜찮으니 엄마가 나보고 한국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그 말을 믿었는데... 이번엔 엄마가 무너졌다. 반신마비가 와서 응급실로 실려 갔다고 했다. 아빠가 전화로, 너 엄마를 죽일 셈이냐고 소리를 질렀다. 다들 참고 사는 거지. 결혼이 그렇게 우스운 건 줄 알았냐. 더 이상 듣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내게 돌아갈 곳이 없었다.

그 후 일 년 동안 계속 약을 복용했고 상담을 받았다. 매일같이 하도 울어대서 얼굴은 점점 더 푸석해지고 이상하리만큼 몸이 붓기 시작했다. 거울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만큼 망가지고 있는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밖에 나갈 때면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싶지가 않았다. 세상 모든 것들이 원망스러웠다. 처음엔 제일 만만한 내 엄마를 탓했다가 나를 미국에 눌러앉힌 남편을 미워했다가 결국엔 이 모든 선택을 한 나를 증오했다.

나아지는 것이 없어서 환경을 바꾸고자 산호세로 갔다. 시부모님이 한국에 가 있는 동안 그 집에서 3개월을 살면서 시아버지가 운영하던 카페를 내가 잠시 맡았다. 새벽에 베이커리에 가서 빵을 픽업해 오고 샌드위치를 만들 재료를 준비해서 카페에 가져다 놓고 저녁이 되면 마감을 하면서 꾸역꾸역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버텼다. 내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모두가 고생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추슬러지지가 않았다.

어느 날은 엄마가 정목 스님의 백팔배 유튜브 링크를 보내왔다. 백팔배는 무슨 백팔배. 코웃음을 치다가 남들이 하는덴 이유가 다 있겠지 싶어서 난생처음으로 백팔배를 올렸다. 무릎을 굽히고 바닥에 엎드리자 또 울음이 나왔다. 이놈의 눈물은 어째서 마르지도 않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시댁에서 지내는 3개월 동안 매일같이 절을 올렸다. 몸을 낮추고 납작 엎드려서 잘못했다고 빌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하루에 백 번이 넘도록 잘못했다고 빌었다. 나 때문에 온몸에 통증을 앓게 된 엄마에게 빌었고 나에게 실망한 아빠에게 빌었고 변해버린 내 마음으로 힘들어하는 남편에게 빌었고 그의 가족에게 미안하다고 빌었다.

그리고 샌디에고를 떠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기로 결정했다. 이사 가기 전날, 카노를 데리고 마지막으로 동네 산책에 나섰던 순간이 기억난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아쉬울 줄 알았는데 막상 동네를 돌아보니 아쉬울 것이 없었다. 오히려 곳곳이 아픈 기억뿐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카노를 데리고 나와서 걷다가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던 곳들. 세상에 나 혼자 카노와 남겨진듯한 기분으로 꺼이꺼이 울었던 기억이 거리마다 남아 있었다. 남자 하나 믿고 발을 붙여보겠다고 미국살이를 시작했던 그 동네가 어찌나 꼴 보기가 싫던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나는 샌디에고를 벗어났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에서 반년쯤 살았을까. 결국 나는 남편에게 이혼을 고했다. 내가 시들어가는 걸 알면서도 방치했던 그에게 잔인하고 매몰차게 헤어짐을 통보했다.

다 너 때문이야.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후회할 말을 쏟아놓고 미국을 도망치듯 떠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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