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26
이사는 갑작스러웠다. 오랜 애인이 집을 구하자고 했다. 우리는 손을 잡고 은행과 부동산을 다녔다. 대출을 받고 마음에 드는 집을 구하기까지 채 2주가 걸리지 않았다. 계약서를 써보는 건 처음이었다. 중개인은 입주가 3주 뒤라고 말했다. 다 해도 한 달여 만에 생긴 일이었다.
함께 사는 일이 대단히 어려운 일일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그렇지 않았다. 욕심을 많이 걷어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새 집을 구하고 새 생활을 시작하는 일은 새 것을 얻는 일인 동시에 포기할 것들을 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포기와 단념에는 점점 익숙해졌다. 다만 애인이 자신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모습은 잘 익숙해지지 않는다.
부모님의 반응은 꽤 무덤덤했다. 예고 없던 일이어서 당황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았다. 아버지는 집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휴대전화에는 부동산 앱에 게시된 사진이 저장되어 있었다. 가전과 가구가 없이 텅 빈 사진이었지만 그래서 집이 더 정돈되어 보였다. 아버지는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셨다. 별 다른 말씀은 없었다. 참견하지 않으려 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상견레를 하기 전까지 집에 찾아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의아했다. 애인과 내가 구한 집은 부모님이 사는 곳에서 아주 가까웠다. 바람 쐴 겸 들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함께 사는 애인의 입장을 생각한 것 같았다. 조금은 내게 정을 떼려고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말은 없었지만 내가 나가서 살게 된 일에 내심 서운한 듯이 보였다. 새 집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머니는 가끔씩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두 분은 내게 미안한 마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더는 내가 옛 집에 살지 않는다고 말한 일만으로도 부모님과 나 사이의 관계는 예와 조금 달라진 기분이었다. 전에 없던 거리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문득 그 거리감이라는 것이 새로 생긴 감각은 아닐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나와 부모 사이에 있던 간격이 아닐까. 다만 보이지 않았던 것일 수 있다. 그러니까 보이지 않던 것이 보여지는 순간이 있다.
새 집은 공실이었다. 흰 벽지가 칠해진 집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지어진 집이라고 했다. 막상 텅 빈 집 안에서는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애인과 나는 빈집을 살피며 어떤 가구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상상했다. 고작 며칠만에 우리는 집에 들일 가구를 전부 골랐다. 수십 수백만원이 뭉텅이로 빠져나갔다. 거의 모든 가구는 이사날에 맞추어 배달됐다. 빈집의 고요가 금세 사라졌다.
한동안 집 안에는 새 가구 특유의 풀냄새 같은 것이 진동했다. 새 것에서 나는 냄새는 어딘가 화학적이고 건강에 해롭다는 느낌을 주지만 또 새 것이란 점에서 청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애인은 새로 들인 가구들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우리는 종종 새 의자에 앉아 새 식탁에서 식사하며 처음 이 집을 찾았던 날을 떠올렸다. 텅 비어있던 곳이 온갖 물건들로 가득 차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러니 나는 나아가 십 수년 뒤를 상상해보기도 했다. 이 많은 물건들이 우리가 집을 옮길 때에 또 거짓말처럼 사라지겠지. 그럼 다시 집은 고요해질 것이다.
어째선지 새 집이 생긴 후로 나는 집이 사라진 기분이 들었다. 애초에 내 집이라는 게 있을까. 요새는 이런 고민을 한다.
대부분의 고민이 그렇듯 이건 우리의 가난과 엮여 있기도 할 것이다. 아무래도 가구를 사는 데에 돈을 너무 많이 쓴 것일지 몰랐다. 애인과 나는 서로의 통장잔고를 셈해보며 불안한 기분에 휩싸이기도 했다. 난 수 개월 전에 지웠던 가계부 어플을 다시 설치했고, 우리는 장을 보러 갈 때면 인근 마트의 시세를 알아보는 노력을 들이게 되었다. 그렇지만 평일 저녁에 펜던트 조명의 노란 불빛만 켜둔 채 애인과 맥주를 나누어 마시는 행복도 있었다. 맥주를 살 때는 더 저렴한 가격을 찾았고 결코 필라이트에는 손이 가지 않았다. 봉준호의 영화 때문이었다.
내 노동에 대한 값을 받고 그 값으로 음식과 필요한 물건을 사는 일이 삶의 전부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애인과 함께 살며 나는 살림살이라는 말을 자주 떠올리게 되었다. 살림은 중요하다. 살림은 삶의 행복과 불안을 정리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집을 정리하고 낡은 물건을 고치고 가계부를 쓰는 일은 뜻 깊다.
최근에는 화분을 들였다. 홍콩야자라는 종이었다. 이미 내 앉은 키만큼 자란 큰 화초였다.
내가 아닌 생물을 키우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알아보니 홍콩야자에는 깍지벌레라는 해충이 자주 생긴다고 했다. 잎아래를 살피며 혹시라도 벌레가 붙어있는지 확인했다. 물을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도 잘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화분 아래 물통에 물이 고일 정도만 주면 된다고 했다. 그게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물을 조금 주고서 무릎을 꿇고 화분 아래를 쳐다보다가 다시 물을 주기를 반복해야 했다. 물통은 잘 보이지 않아서 볼이 바닥에 닿을 정도로 몸을 숙여야 했다. 바닥에 엎드려본 것이 새삼 오랜만이었다.
여전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낯설 때가 있다. 불이 꺼진 계단층에 들어서고 현관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누르는 동안에도 나의 집으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지 않을 때. 종종 헷갈린다. 집을 나가기로 부모님께 말씀드렸을 때, 처음 느낀 어색함 같은 거. 오랫동안 비어 있던 집의 공허함. 살림을 꾸려가는 일의 불안. 그리고 불안에 얇게 겹친 소중한 순간들. 어쩐지 나는 반 개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화분을 키우는 일과 같다. 결국 나는 홍콩야자에게 물을 듬뿍 주기로 했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언젠가 쓴 소설에서는 화분에 관하여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천천히 자라고 있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세상에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고, 그게 문득 눈에 드는 순간이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단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그 받아 들이기란 때때로 꽤 좋은 태도가 되기도 할 것이다. 화분을 키우는 내 모습이 나는 썩 마음에 들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