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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란드 Jun 01. 2020

아빠의 육아휴직 하루 일과표

아이와 함께 크는 아빠

  초등 1학년인 아이에게도 시간표가 있듯이 육아휴직을 한 나에게도 하루 일과표가 있다. 아빠이자 남편인 내가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서 우리 가족의 일상은 그동안 맞벌이로 지내오던 우리 가족의 하루 일상과는 다르게 진행되었다. 그중에 가장 큰 변화는 당연히 나의 일상이다. 대부분의 가정주부의 일상과 같다고 보면 되므로 특별한 것도 없지만 처음 육아휴직을 하고 살림을 책임지는 엄마의 역할을 하게 되는 육아 휴직한 아빠들에게는 조금 익숙하지 않은 생소함이 있다.

  긴 사회생활을 멈추고 휴직을 하게 되면 가지게 되는 무한할 것 같은 자유의 시간과 의욕으로 처음에는 이것저것 시도하게 된다. 새로운 요리도 시도해보고, 아이와 여행도 꿈꾸고 집안을 싹 정리해 보려고도 한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시간이 지나면 의욕도 조금 줄어들고 하루의 시간도 무한하지 않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너무도 빨리 다가오고 아내의 퇴근 시간도 금방이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자기만의 생활 방식을 가지게 된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하는 일은 출근 준비하는 아내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아이를 위한 아침 식사를 준비한다. 맞벌이 때보다는 아침을 잘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좀 더 신경을 쓰지만 그리 나아지지는 않은 것 같다. 다만 맞벌이 때는 서로 바빠서 쫓기듯 했으나 내가 집에 있으므로 아내와 아이에게 초점을 맞춰줄 수 있어서 시간에 쫓겨서 서로 감정이 부딪히는 일이 없다.

  아내가 출근하고 나서 자고 있거나 놀고 있는 아이의 아침 식사를 도와주고 일기예보를 보고 날씨에 맞는 옷을 입히고 칫솔질시키고 학교 홈페이지에서 알림장을 보고 그날 준비물을 챙겨주고 학교를 등교시킨다. 휴직하고 거의 매일 교문 앞 신호 등 건너기 전까지 함께 갔는데, 1학년이 끝나가는 무렵이 되자 같은 아파트 사는 친구랑 함께 가고 싶어 하기도 하고 혼자 가고 싶어 하기도 했다. 아이도 점점 크고 있는 것이다. 1, 2년 지나면 부모랑도 같이 안 다니려고 한다더니 벌써 시작되었나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직 아빠랑 함께 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나면 9시가 된다. 등교를 시켜놓고 집안을 정리하고 나서 운동 삼아 집 근처 산에 올라간다. 육아휴직 후 망가진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 운동을 결심하고 수영하러 다녔는데 남자 주부로서 평일 수영은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평일 오전은 여성 전용 수영이 대부분이다, 하려면 직장인과 함께 새벽 수영을 해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등산으로 종목을 바꾸었다. 계절마다 바뀌는 산의 풍경을 느끼며 산행을 한다. 처음에는 한 시간 넘게 걸었으나 나중에는 대략 한 시간 정도만 걸었다. 비가 오는 날만 빼고 매일 하려고 하였다.


  10시경에 집에 돌아와서 씻고 본격적인 집안일을 한다. 아침 식사 설거지를 하고 이불을 개고 옷가지를 모아서 빨래 돌리고 어질러진 집안을 치우고 바닥 청소를 한다. 거북이 어항이나 물고기 어항도 시간을 내서 청소하고 쓰레기 분리수거도 한다. 이 시간에는 집안일하면서 인터넷으로 유명 강의를 듣는다. 지루하고 단순한 시간도 즐거운 시간이 되니 좋다. 음식 재료와 공산품 등 생필품을 사러 나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런 일들을 마치고 나면 대략 점심 식사 시간 전까지 조금 시간이 남게 된다. 이때가 혼자만의 휴식 시간이 된다. 책도 읽고 차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인터넷 검색도 하고 노래도 듣는다. 아주 짧은 시간이지만 소중한 시간이다.


  점심을 먹고 옷을 챙겨 입고 아이를 데리러 갈 시간이다. 초등학교 1학년은 점심 급식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교한다. 시간이 지나고 익숙해지면 혼자서도 집에 올 수 있지만 내가 휴직하는 동안에는 항상 교문 앞 횡단보도 건너서 그 앞에서 기다렸다. 아이는 아빠를 보고 미소를 짓고 신호가 바뀌면 전력 질주로 달려와서 안긴다.


  요즘 아이들은 학원을 많이 다닌다. 우리 아이도 학원을 몇 군데 다니는데 대부분 집 근처에 있다. 그러나 아직 혼자 걸어서 다니는 것은 불안해 보여서 데려다주고 데려온다. 학원 차가 있을 때는 학원 차를 이용하지만, 근거리 학원들은 태권도 학원 빼고는 학원 차가 없다. 아이를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고 하면서 만보계를 보면서 걷는 운동을 대신한다.


  학원을 다 마치고 집에 오면 아이의 그 날 알림장을 보고 다음 날 준비물을 챙기고 숙제도 한다. 시험은 없지만, 일주일에 한 번 받아쓰기 시험을 보니 집에서 연습을 시켜준다. 연습을 도와주니까 100점도 맞아 와서 자신감도 생기게 해 준다. 학원에서도 숙제를 내주는 데 어려워하는 숙제는 도와준다. 저녁 먹기 전에 씻는 것도 챙겨준다. 목욕시키기는 어렸을 때부터 내 담당이었다.


  아내가 돌아오면 저녁을 함께 먹고 그 후의 일상은 부부가 함께하는 맞벌이 때와 비슷하게 흘러간다. 다만, 내가 집에 있어서 저녁에 해야 하는 일-밀린 빨래, 설거지, 집 안 청소-이 없어서 아내도 아이도 바로 휴식을 취하고 책도 읽어주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이런 일상을 주말과 공휴일을 빼고 반복하고 주말과 공휴일에도 아무래도 직장을 나가지 않아 좀 더 체력적으로 여유가 있는 내가 집안일을 맞벌이 때보다는 더하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아이와 여행을 가거나 해서 의도치 않게 아내가 집에서 혼자 쉬게 해주기도 한다.


  2학년이 시작되기 전에 전 세계적으로 유행한 코로나바이러스 영향으로 학교 개학이 계속 연기가 되다가 온라인 개학이 실시되면서 나의 하루 일과표도 달라지게 되었다. 온라인 개학이 익숙하지 않은 아이를 위해 오전에는 아이의 학습을 보조해주는 일로 보내게 되었고 오후에는 코로나 여파로 학원을 가지 않는 날이 길어지면서 가정에서 나와 보내는 시간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학교를 아예 가지를 못하고 있었으니 역사상 초등학교 1, 2학년을 둔 육아휴직자 중에서 이 정도로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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