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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Sep 26. 2020

혼자 떠난 여행

남편이 그리워지던 시간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이 있는 완도에 간다. 매번 그러려니 하며 다니던 어느 날, 남편 혼자만 좋은 곳에서 즐기며 사는 것 같아 서운 하던 마음이 크게 반항을 하는 듯했다. 연락하지 말고 오는 전화도 받지 말고 애간장을 좀 태우리라는 생각에 혼자서 하룻밤을 묵어가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곳을 검색하여 내비게이션에 입력을 하고 달렸다.


도시를 벗어나고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비릿한 바다내음을 즐기며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곳까지 왔다. 주변에는 바다의 풍경을 조망할 수 있는 포인트가 몇 군데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코 시국이라는 말을 여행지에서 실감할 수 있을 줄이야... 캄캄한 주차장에 차를 세웠지만 내려가기가 무서웠다.  간신히 공중화장실을 다녀오고 차에 올라타 문을 잠갔다. 전망 좋은 곳에 숙소가 있다면 들어가 쉬어겠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갔다. 그러나 마땅한 곳이 없었다. 사업상 초저녁에 잠이 드는 버릇이 된 몸이 재워달라고 신호를 보내오는데 계속해서 운전을 하며 돌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며 한참을 가다 보니 매점을 운영하는 민가가 한 채 보이고 그 앞에는 공중화장실도 있고 넓은 주차장도 보였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잠깐만이라도 쉬기로 했다.


잠결에 차 소리가 나서 깨어보니 새벽6시나되었다. 지나는 길손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내차 옆에 차를 세운 것이다. 배부르고 피곤한 상태여서 잠깐만 쉬겠다는 것이 푹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일어나 보니 밤에 보이지 않던 바다가 보인다. 시원한 바다를 바라보며 기지개를 켰다. 집에서 맞이하는 아침과는 기분이 다르다.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부담도 없으니 좋아도 너무 좋다. 공중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밥을 데워 바다를 바라보며 아침을 먹었다. 바로 이맛이다.



식사 후 해안으로 정비된 길과 데크를 오가며 산책을 하였다. 해무가 천천히 흐르며 바다를 다 보여주지 않겠노라 말하는 듯했지만 해무가 있어 바다는 더욱 운치 있어 보였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니 '노을종'이라 명명한 사랑의 종탑이 있다. 종을 세 번 울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아직 더 이루어야 할 세속적인 사랑은 생각나지 않았지만 울려보고 싶었다. 내가 울려주는 종소리를 듣고 누군가는 사랑을 이룰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일이 될 거라 생각하서 힘껏 목을 당겼다 놓았다. 소리는 바다를 향해 쏟아졌다. 세 번을 울려주고 걸음을 옮겨 노을 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박물관은 휴관 중이었다. 바다는 여전히 잔잔한 파도소리로 노래하며 마음속의 모든 근심을 씻어주겠노라 하였다.




다시 차로 돌아온 나는 믹스커피 한잔을 서 마시고 이제 코스모스의 하늘거림 속으로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검색을 하였다. 아쉽게도 정확한 주소가 올라와있지 않아서 그냥 법성포로 내비를 찍고 나왔다. 법성포 해안가에는 부지런한 어부들이 막 잡아 온 해산물을 팔고 있었는데 대부분이 꽃게였다. 꽃게의 비릿하면도 구수한 냄새를 뒤로하고 코스모스를 찾았는데 생각했던 장소는 아니었다. 나름 길손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만한 장소에서 가을향기를 흩뿌리고 있는 코스모스의 가녀린 자태를 몇 컷 담고 완도로 길을 잡아 출발하였다.


 바쁠 것이 없으니 놀며 쉬며 가면 되었다. 광주로 한 큰길에 접어 드니 이정표에 불갑사가 보인다. 언뜻 불갑사도 상사화로 유명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비를 무시하고 불갑사 이정표를 따라갔다. 큰길에서 내려 마을길을 접어드니 잘 조성된 꽃무릇들이 활짝 피어 마음을 설레게 한다. 도착한 불갑사는 선운사와는 다르게 9시도 안 된 시간인데 벌써 주차장이 꽉 찼다. 울긋불긋 가을을 닮은 차림새의 사람들이 꽃무릇보다 더 붉은 표정들로 즐거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 역시 그들 무리 속에 섞여 열체크를 하고 일주문에 들어서니 또다시 천계에 온 듯 꽃들의 향연 속으로 빠져들었다. 선운사보다 꽃의 규모가 훨씬 넓게 분포되어있고 사람들도 훨씬 많았다.


꽃무릇이라 쓰고 상사화라 부르는 꽃은 꽃과 잎이 서로 만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꽃은 잎을 그리워하고 잎은 꽃을 그리워한다 하여 상사화가 되었다. 얼마나 그리웠으면 가슴에 피멍이 꽃이 되어 나타났을까. 상사화의 전설을 보면서 그런 사랑 한번 해보지 못한 나는 꽃보다 의미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불갑사 부처님은 그런 내 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인자한 미소로만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아쉬운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 길에도 상사화의 배웅은 큰길까지 이어졌다. 내비에 완도 목적지를 찍었다. 상사화의 기운이 마음을 채웠는지 기다리고 있을 남편이 그리워졌다. 서로 잎과 꽃이 되기 전에 얼른 가서 얼굴 보여줘야 한다는 마음에 갑자기 자동차 엑셀레이터를 밟은 발에 힘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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