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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숙 Jul 22. 2021

명의를 만나다

하마터면 영구치 한개 잃을 뻔 했다.

옛말에 인간의 이(齒)가 오복 중에 하나라고 하였다. 오복을 말하는 홍범편이나, 통속편에 '인간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다섯 가지 복'에 대한 기록이 전하는데 여기에 齒는 없다. 다만 건강을 의미하는 강녕이 들어있어 건강하려면 이가 튼튼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齒) 오복 중에 하나라고 구전되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나는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30대에 뺀 사랑니 2개 말고는 잃어버린 치아가 없다. 건강한 영구치가 대체로 가지런하게 배열되어있어 치아에 복이 들어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정기적으로 하는 스케일링이 아니면 치과에 갈 일이 없었다. 유전적으로 건강한 치아를 물려받은 데다, 무엇을 먹고 나면 반드시 양치질을 해야 하는 성격 탓에 충치 하나 없이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그런데 한 달 전쯤 앞니 1개가 갑자기 아팠다. 거울을 보면서 건드려보니 약간 흔들림도 있었다. 어디에 다친 기억도 없고 딱딱한 것을 깨뜨린 적도 없는데 왜 아픈지 모르겠다며 남편에게 이야기하니, 젊어서부터 치아 때문에 많은 고생을 하고도 자기 이를 지키지 못하고 인공의 치아를 몇 개나 가지고 사는 남편은 자신이 처음에 아플 때 참다가 병을 키워서 그렇다며 얼른 병원에 가자고 하였다. 이유 없는 통증에 나이 탓을 하며 병원을 찾았다.


평소 스케일링을 할 때 치아관리 잘했다는 칭찬을 해주던 병원으로 예약을 하고 갔다. 두 번의 엑스레이를 찍은 후 진료실로 들어가니 신경이 죽어서 뿌리 쪽에 염증이 생겼다고 한다. 치료 방법을 물으니 결국은 뽑아야 할 것 같으니 치료과정을 거치면서 고생하지 말고 그냥 뽑고 임플란트를 하자고 하였다. 덜썩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반평생을 넘게 내 얼굴의 미관을 지켜주고 무엇을 먹어도 다 잘라주고 부숴주어 음식 먹는 즐거움을 주었던 치아를 조금 아프다고 단번에 뽑아버리자니 내 치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뽑더라도 지킬 수 있는 마지막까지 지켜주고 싶었다. 뽑는 것 말고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냐 다시 물었더니 일단 신경치료를 하고 그 과정에서 상처 난 치아에 크라운을 씌워서(50 만원) 사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염증이 재발하면 이를 빼고 임플란트(150만 원)를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은 몇 개월이 걸린다고 했다.


진료대에 앉아서 욱신거리는 치아 때문에 안 그래도 표정이 좋지 못한데 치료과정을 들으니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염증이 왜 생겼는지 설명도 해주지 않으면서 결국은 뽑아야 될 것이니 신경 치료하며 시간 끌지 말고 지금 당장 뽑고 가라는 뉘앙스로 말하는 의사에게 정말이지 치료를 맡기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무어라 결정을 못하고 있는 내게, 우선 통증을 잡기 위한 신경치료 라도 받고 가라는 의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절대로 내 치아에 손을 대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굳었다.


그래서 "제가 원래 염증이 온몸을 돌면서 잘생기는 체질인데요. 이번에는 치아로 온 것 같아요. 그러니 염증약을 처방해주시면 먹어보고 그래도 아프면 신경 치료할게요"라고 말했다. 의사도 자신을 믿지 못하는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그럼 그렇게 하라면서 간호사에게 약 처방에 대한 지시를 하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약은 3일 치를 받아왔다. 남편은 다른 치과로 가보자고 했다. 일단 약을 받아왔으니 약부터 먹겠다고 했다. 처방대로 약을 먹으니 하루 만에 통증은 사라졌다. 그러나 약간의 흔들림은 그대로 이면서 치아의 색깔도 나란히 있는 옆 치아와 다른 듯이 보였다. 문제가 생기긴 한 것이 분명했다. 어딘가 잘 보는 치과를 찾아보기로 마음을 먹고 3일간 받아 온 약을 다 먹었다.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양치질이나 음식을 먹는데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남편에게 의사 말대로 치료한다고 건드렸으면 영구치 하나 잃을 뻔 했다며 전혀 아프지 않다 했더니 남편도 다행이라며 치과 이야기는 하지 않게 되었다.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난 며칠 전 친정오빠와 함께 복날이라고 부모님께 가서 점심을 먹게 되었는데 반주로 술을 2잔마셨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중에 다시 치통이 느껴져서 식구들 있는데서 이가 아파 병원에 갔던 이야기를 하며  아무래도 이제 이도 지쳐서 나를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으니 뽑고 인공 이를 심어야 할 듯한데 너무 서운하고 무섭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들은 친정오빠는 오빠가 다니는 치과를 소개하며 그 치과를 다닌후로는 치과 가는 것이 무섭지 않다고 했다.


그분은 연세가 70도 넘으셨고 지금의 위치에서 치과 개업을 하신지 35년도 넘으셨다고 했다. 치아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신다는 느낌에 헛되게 고통을 느끼지 않으면서, 그 유행이라는 임플란트에 대해서도 권하기보다는 "임플란트나 옛날 방식의 이나 어차피 내 이는 아닌데, 먹는데 불편하지 않고, 한번 심어 20~30년 쓰는 것도 같으니 굳이 비싼 임플란트 하지 말고 옛날 방식대로 심어서 써봐"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의사의 말대로 그렇게 치료받은 오빠는 벌써 10여 년째 전혀 불편 없이 살고 있다며 "돈과 유행을 따르기보다는 환자의 비용을 줄여주면서 불편을 해소시켜주는 그런 의사가 명의 아니냐?"는 반문으로 그 치과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치료를 할 생각이라면 그곳으로 한 번 가보라고 했다. 진료 과정에서 마음에 안 들면 다시 알아봐도 되니 한번 가보고 결정하라고 했다.

 

사람마다 병과 의사가 서로 맞아야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말은 흔하게 쓰는 말이다. 오빠의 말만 듣고 그분을 판단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피붙이인 오빠에게 맞는 분이라면 내게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작은 믿음만 가지고 바로 전화를 걸어 예약을 잡았다. 그리고 어제 치과를 다녀왔다. 지금 내이는 전혀 아프지 않고 그 병원의 원장님을 '명의'라고 말했던 오빠 말에 동감하게 되었다. 병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면.....


"안녕하세요?"

"네, 어서 오세요, 예약하셨나요? 우리 병원 처음이신가요?"

"네"

"그럼 이거 한 장 작성해 주세요" 하며 작은 종이조각을 주며 인적사항을 적으라고 했다.

잠시 후....

"들어오세요"하는 간호사의 부름에 진료실로 들어가니 정말 연세가 지긋하신 분이 진료 준비를 하고 계셨다.

"어디가 아파요?" " 네 여기 앞니 1개요""언제부터 아팠어요?" "한 달 전쯤에 아팠다가 괜찮은듯 하더니 엊그제 술두잔마셨는데 아프네요" "

잠시 이를 살펴보던 의사는 간호사에게 엑스레이 촬영을 하라고 하였다. 촬영 후, 의사는 엑스레이 사진을 설명하면서 신경이 죽어가고 있고, 뿌리 쪽에 염증이 생겨서 아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염증이 있을때는 술먹으면 더 아파요"라는 말도 했다.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설명을 듣고 있으니, "오래전부터 조금씩 진행되어 온 것인데 혹시 20여 년 전에 크게 다친 적 있어요?" 하고 묻는다. 처음에는 기억이 나지 않아 머뭇거리다 "그렇게 오래전에 다친 것이 지금 아파요?"하고 물었다. "믿기지 않겠지만 그런 경우가 종종 있어요. 20년은 넘은 것 같은데..."라고 하였다.


그때 생각이 났다. 정확히 20년 전 일이었다. 서산에서 장사할 때, 방갈로에서 식사하는 손님들 음식을 날라주고 오다가 작은 돌에 걸려 넘어지면서 들고 있는 쟁반에 얼굴을 맞은 적이 있었다. 그때 이에서 피가 나고 조금 흔들렸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치료를 미루다가 통증이 멎어서 그대로 잊고 살았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의사가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그리 오래된 상처를 지금의 상태만 보고 알 수 있다는 말인지 정말 깜짝 놀랐다.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며 어떻게 아셨냐고 물으니 나는 분별조차도 힘든 치아의 색깔과 신경의 굵기가 다른 치아하고 다른 부분을 설명해 주시면서 그것이 갑자기 진행된 것이 아니라고 하였다.


그 정도의 실력이면 어떤 처방을 주셔도 수긍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겼다. 그리고 마음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내게 의사는 말한다. "이를 살리고 싶으시죠? 일단은 신경치료로 살릴 수 있을 때까지 치료 한번 해 봅시다" 뽑고 새로 해 넣자고 해도 하나도 서운 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의사는 내 영구치를 할 수 있는데 까지 해서 살려 보겠다고 한다. 너무나 감사했다. 그리고 치료를 하는데 "돈 많이 나오는 것 아니고 하나도 아프지 않게 해 줄 거니까 아무 걱정 말아요" 하면서 무언가 처치를 하였다.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신경이 이미 죽어있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잠시 후 양치하라는 간호사의 말에 물을 한 모금 가글을 하는데 이를 뚫어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약한 불소 냄새 같은 것이 났다. "이에 구멍을 내셨나 봐요?" 하니 "구멍을 뚫어야 신경치료를 할 수 있어요. 오늘 치료는 끝났고요. 약을 3일 치 줄테니까 심하게 아프면 먹고 안 아프면 안 먹어도 돼요. 그리고 며칠 있다 한번 더 나오세요"라고 하였다.


이전 병원에서 엑스레이 2번 찍고 진료 후 39.000원을 내었으니 이곳에서는 2번의 엑스레이와 진료, 처치까지 받았으니 그때보다는 조금 더 나올 거라는 생각을 하며 지갑을 준비하는데, 15.800원이라고 한다. 잘못 들었나 다시 확인하니 그 금액이 맞다. 오빠가 "진료비도 안 비싸~"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정확한 진단으로 원인을 찾아내고, 편안한 치료를 받고, 영구치를 살려낼 수 있다는 안도감에, 아플 것에 대비해 약 처방까지 내려주신 그 모든 비용이 15.800원이라니, 이건 완전히 자원봉사의 차원이다 싶었다. 그렇다고 더 받으라고 할 것도 아니니 계산을 하고 돌아오면서, 저런 분이 과연 진정한 '의사이고 명의'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음 주 월요일에 예약을 잡고 돌아와 혹시 모르니 항생제가 들어있는 약을 하루 동안 먹었다. 혹시라도 아프기 전에 먹어두자는 마음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전혀 통증이 없다. 그리고 전혀 불편하지 않다. 아직 흔들림은 느껴지지만 곧 자리를 잡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고, 덕분에 다시 얼마 동안은 내 오복(五福)을 지켜준 이齒를 떠나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벅찬 감사함을 이렇게 글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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