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닮은 질경이

질경이 신봉자가 되었다.

by 강현숙

질경이는 이름처럼 생명력이 강한 풀이다.

내가 질경이의 실체를 알게 된 것은 류머티즘을 앓을 때였다. 류머티즘의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하던 내게 누군가 "질경이 한번 먹어봐 염증에 좋대"라고 말해주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흘려들었다. "요즘 약을 얼마나 잘 만드는데..." 그러나 정말 견디기 힘든 통증에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는 심정으로 질경이를 먹게 되었다. 얼마 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통증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물론 대학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정성껏 먹기도 했지만 질경이의 효험이 분명히 있었을 것으로 믿는다. 병원에서는 처음부터 낫는 병이 아니라고 했다. 죽을 때까지 친구처럼 생각하고 사이좋게 잘 다스려가며 살자고 하였다.


의사의 말도 믿음이 있어서 의사의 처방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니 어지간한 통증은 견뎌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질경이가 자꾸만 생각이 났다. 그 중요한 정보를 주신 그분이 정확히 어느 분인지 기억도 안 날정도로 흘려들은 그 말이 약 먹을 시간이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통증을 느낄 때마다 생각이 났다.


어느 날은 드디어 질경이에 대해서 알아보게 되었다.

인터넷 공간에 떠도는 질경이의 효능은 대단했다. 몸안의 모든 염증을 소멸시켜 준다고 했다. 암과 성인병에도 좋다고 하였다. 그리고 질경이를 약으로 쓰게 된 이야기도 접할 수 있었다.


중국 한나라에 ‘마무’라는 장수가 군사를 이끌고 전쟁터로 갔다. 산 넘고 강 건너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사막을 지나게 되었다. 사람도 지쳤고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많은 병사들이 죽어갔다. 병사들은 아랫배가 붓고 눈이 쑥 들어가고 피오줌을 누는 '습열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말도 피오줌을 누면서 하나 둘 쓰러졌다. 그런데 사막을 지나 풀이 자라는 곳에 도착하여 머무는 사이에 말 한 마리가 생기를 되찾고 맑은 오줌을 누더라는 것이다. 자세히 보니 말은 마차 앞에 있는 돼지 귀처럼 생긴 풀을 열심히 뜯어먹고 있었다. 그 풀이 피오줌을 멎게 하였다는 것을 알아챈 병사는 곧 그 풀을 뜯어서 국을 끓여 모두에게 먹였다. 오줌이 맑아지고 퉁퉁 부었던 아랫배도 본래 모습을 찾으며 병사들과 말이 모두 회복되었다. 그 후 그 풀은 약으로 사용되었고 그 효과가 유명해지면서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데, 수레바퀴 앞에서 말이 처음 먹었다고 이름을 '차전초'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약방 이름으로는 '차전초'라고 부르고 있다.


내가 알아낸 정보를 남편에게 말하니 남편은 질경이를 캐러 가자고 하였다. 그때만 해도 독한 제초제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던 시기여서 길가 어디에나 있는 질경이를 함부로 캘 수가 없었다. 불안해하는 내게 남편은 친구가 몇 년 묵힌 복숭아 밭이 있는데 농사를 안 지으니 제초제 뿌릴 필요도 없어서 그대로 풀들이 자라게 둔 곳이 있다고 하였다. 믿을만한 친구니 그곳에 한번 가보자며 채비를 하였다. 얼마나 많이 캐려고 마음을 먹었던지 커다란 마대자루와 100리터짜리 비닐봉지, 호미 2개까지 챙겼다.


남편을 따라간 그곳에는 오래전에 경운기가 지나간 자리마다 질경이가 흐드러지게 자라고 있었다. 벌레에 뜯겨 군데군데 상처를 입고도 단단한 뿌리가 흔들리지 않도록 딱딱한 흙속에 야무지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호미를 사용해 캐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8월의 모기떼들이 오랜만에 만난 신선한 피에 달려드는 바람에 그 고통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도 눈에 보이는 것들을 거의 다 캘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


결국 커다란 마대자루에 꾹꾹 눌러 채우고서는 멈추었다.

집에 와서 쏟으니 베란다 한 칸을 다 채울 정도였다. 뿌리에 묻은 흙이 쉽게 떨어지지 않아 씻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마저도 남편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 해 주었다. 나는 남편이 씻는 옆에 앉아 연한 것을 골랐다. 피클처럼 간단한 질경이 장아찌를 만들 생각이었고 데쳐서 나물로도 무쳐먹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은 직사광선이 들지 않는 곳을 골라가며 며칠 동안 말렸다. 그리고 질경이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커다란 주전자에 한주전자를 끓이면 2~3일 마실수 있었다. 떨어지지 않도록 끓여서 병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했다가 수시로 마셨다. 목이 마를 때도 약 먹을 때도 내가 마시는 물은 모두 질경이를 끓인 물이었다. 몇 시간 외출할 때도 질경이 물을 담아가지고 다녔다.


고기 먹을 때는 질경이 장아찌에 싸 먹었고, 등산이라도 가다가 연한 질경이를 만나면 조금씩 캐와서 삶아 무쳐 먹었다. 질경이 무침은 참기름 맛 아니면 씹는데 질기다는 느낌뿐이다. 몸에는 좋지만 맛은 없다는 이야기다.


그렇게도 약과 질경이 물을 잘 챙겨 먹던 3년쯤 된 것 같다. 어느 날은 약 먹은걸 잊고 있을 정도로 통증을 느끼지 못했다. 처음에는 깜짝 놀라 약을 먹었는데 나중에는 얼마 동안이나 퉁증이 생기지 않는지 보자며 의도적으로 약을 먹지 않았다. 일주일이었다. 일주일이 지나도 심한 통증이라기보다는 약을 먹지 않으면 느끼던 통증의 느낌만 전해진다는 것을 알았다. 얼마 후 병원 예약 날짜가 되어 내원하여 그간의 경과를 이야기하니 검사 한번 해보자 하셨다. 그리고 결과는 완치였다. 그러나 혹시 다시 발병할 수도 있으니 남은 약을 가지고 있다가 아프면 먹으라고 하였다. 그때 남은 약은 그 후로 2년 동안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를 살렸다고 믿어지는 풀이 질경이다.

그 질경이를 완도 집 주변에서 만났다. 농사를 짓지 않는 한적한 땅에 드문드문 자라고 있었다. 해풍을 맞으며 자라는 건강한 질경이가 반가웠다. 주변의 풀들을 뽑으며 질경이만 잘 자라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질경이는 다른 풀이 없거나 고운 흙으로 주변을 정리해 주면 잘 자라지 않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지 보살핌을 받은 질경이들은 오히려 병해를 입었다. 씨앗이라도 번져서 번식하라고 기다렸는데 풀 속에 있는 것들은 잘 자라고 주변을 정리해준 것은 병이 나거나 시름시름 말랐다. 아무래도 내 돌봄이 오히려 독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부터는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과연 생각대로 떨어진 씨앗에서 새싹이 나오더니 주변의 풀들과 어울리며 저절로 잘 자랐다. 잡풀이 신경 쓰여 풀 뽑기를 하다가 질경이만 따로 모았다. 발효액을 담그기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햇볕이 좋아 말려보았다. 바짝 말려서 물을 끓이면 연한 보리차처럼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다.




살다 보면 원인이 그것일 거라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 경우가 있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어서 질경이의 성분을 수치로 밝히고 어떤 물질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연관관계를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한건 질경이가 내 몸을 건강하게 하는 내 몸의 반응을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나는 질경이 신봉자가 되었다.


질경이처럼 경쟁자가 있을 때, 척박한 환경일 때 더 빛을 발하며 살아온 내 삶이다. 그런 나를 질병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준 질경이 어찌 받들어 모시지 않을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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